[우리 이웃] “꿀성대로 국산 벌꿀 우수성 널리 알릴게요” | 월간축산
이 기사는 성공 축산으로 이끄는 경영 전문지 ‘월간축산’4월호 기사입니다.
지난해 막을 내린 TV조선 ‘미스트롯3’에서 최종 4위를 차지한 가수 미스김(본명 김채린)의 첫 등장 장면. 20대라곤 믿기 어려운 구수한 사투리와 시원한 음색으로 ‘해남 처녀 양봉인’의 등장을 알렸다. 미스김은 첫 등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5t 트럭 타고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한 방울 한 방울 모은 귀한 꿀”이라며 직접 농사지은 벌꿀집을 갖고 나와 소개했다.

미스김은 방송 출연 전까지 양봉업에 종사하는 부모님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꿀을 따러 다녔다. 미스김의 아버지 김영식 씨는 30년 넘는 경력의 양봉인으로, 현재는 한국양봉협회 해남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지부장은 오랫동안 꿀 따는 양봉인으로 불렸지만, 최근엔 가수 미스김의 아버지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아버지는 10대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양봉을 시작했어요. 5월이면 운동회와 같은 학교 행사가 많잖아요. 꿀 따러 먼 길 떠난 부모님을 대신해 친척들이 와주곤 했죠. 철없던 때라 ‘부모님은 왜 양봉을 할까’ 원망하기도 했어요.”

어린 미스김에게 양봉장은 놀이터였다. 기저귀 찬 아이가 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해맑게 양봉장을 돌아다녔다. 그런 모습을 본 주변 어르신들은 ‘뭐가 돼도 되겠다!’며 입을 모았다. 김 지부장은 양봉을 하는 동안 염려되는 마음에 자녀들을 차에 두고 카세트테이프를 틀어줬다. 미스김은 부모님을 기다리며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외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재롱을 부리는 일도 일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스김의 장래 희망은 오로지 가수였다. 주변에선 “네가 가수면 다들 가수 하겠다!”며 핀잔을 줬다. 가족들도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떻겠냐?”며 만류했다. 결국 미스김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계열에 진학했다.
“사실 ‘곤충학과’로 진학해 양봉을 배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자가 하기에 양봉은 고되다’며 아버지가 말렸죠.”
성인이 된 미스김은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양봉을 도왔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양봉은 고단했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겼다.

“대학교에 갔는데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5t 트럭에 노트북을 싣고 강의를 들으며 양봉을 도왔죠. 몸소 느껴보니 일평생 이 일을 하며 전국을 오간 부모님이 대단하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가수에 대한 꿈은 접어지지 않았다. 해남의 들판을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 연습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해남에서 ‘KBS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나가보면 안 되겠냐”고 사정했다. 나가지 못하면 평생 한이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미스김은 2023년 6월 전국노래자랑 해남군 편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가수의 꿈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이를 계기로 현재의 소속사를 만나 ‘미스트롯3’에도 도전했다. 미스김은 ‘미스트롯3’ 1차 예선에서 벌꿀집을 한 손에 들고 자기소개를 했다.
미스김은 1차 예선에서 올하트를 받는 쾌거를 거뒀다. 결국 최종 4위까지 차지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단 몇 달 만에 처녀 농부 미스김이 트로트 가수 미스김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 미스김은 아버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후 트로트 가수로서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면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양봉장이 떠올랐다.

“시골 사람이 서울살이에 지친 거예요. 지난해 5월에는 연습을 하루 미루고 철원에 꿀 따러 온 부모님을 만나러 다녀온 적도 있었죠. 그땐 몰랐는데 부모님과 함께 양봉하러 다녔던 기억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더라고요.”
김 지부장 또한 딸과 함께 양봉장을 다니던 때가 자주 떠오른다.
“노래하기 전까지는 딸과 함께 벌도 보고 꿀도 따고 했었죠. 최근엔 딸이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가수 활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니 멀리서나마 응원할 뿐입니다.”
김 지부장은 해남에서 꿀과 로열젤리·프로폴리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에도 5월 아까시 철이 돌아오면 꿀 따는 여정에 나설 예정이다. 김 지부장은 최근 양봉업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아 안타깝다.
“기후변화, 외국산 꿀 수입 증가 등으로 국산 꿀 판매가 저조한 상황이에요. 이동하며 꿀을 따려면 인건비와 유지비 등이 계속 드는데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습니다. 양봉업 내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고요.”
“제가 직접 양봉을 해 봤기에 양봉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더운 날에도 긴 옷에 장화·모자까지 쓰고 작업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저도 일하다 쓰러진 적이 많았어요. 그만큼 힘든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미스김은 꿀성대의 비결로 ‘꿀’을 꼽는다. 가수 활동 중 목 상태가 안 좋은 날이면 꿀스틱·프로폴리스 등을 먹는다. 팬클럽이 운영하는 홍보차량 이름도 ‘꿀벌 카’라고 지었을 만큼 꿀에 진심이다.
“저처럼 꿀을 많이 먹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 경연 프로그램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양봉산물 덕분이에요. 더 많은 분들이 우리 몸에 좋은 꿀과 양봉산물을 접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미스김은 첫 싱글 앨범인 ‘될 놈’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양봉인이 저를 응원해 줬기에 그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요. 말 그대로 ‘될 놈’이 되기 위해서 전국을 벌처럼 날아다니며 방송·행사를 열심히 하고 싶어요. ‘꿀보이스’가 담긴 제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지는 날을 꿈꿔 봅니다!”
글 최민지 | 사진 이민희 | 사진제공 한국양봉협회, 미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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