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여성이 직접 연기하는 비장애인과의 사랑과 자립

2025. 4.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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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연극 '젤리피쉬'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와 비장애인 남성 닐의 사랑을 그린다. 켈리 역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백지윤이 맡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옥상훈

켈리(백지윤)는 위트 있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닐(이휘종, 김바다)에게 먼저 키스하고 잘 했는지 귀엽게 묻는 주체적이고 솔직한 인물이다. 닐은 여자친구의 귀여운 도발에 부끄러워하는 친절하고 자상한 남자다. 켈리와 닐의 사랑 이야기는 분명 로맨스고 상황과 대사는 웃음을 짓게 하는 코미디인데, 이들이 주인공인 연극 '젤리피쉬'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켈리가 다운증후군이고 닐은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켈리의 엄마 아그네스(정수영)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온실 속 화초처럼 켈리를 보살핀다. 그런 아그네스에게 딸의 남자친구로 등장한 비장애인 닐은 켈리에게 아픔을 줄 잠재적 악당이다. 닐이 딸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그네스는 악당이 된다. 딸의 사랑을 방해하고 거부하며 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자친구로 저신장장애인 도미닉(김범진)을 소개해 준다. 세상의 부당한 편견에 맞서 딸을 지켜왔던 엄마는 딸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또 다른 편견 속에 딸을 스스로 가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극 '젤리피쉬'에는 선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삶에 주도적인 켈리와 그런 켈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닐, 딸을 지극히 아끼고 보호하는 아그네스, 이들 사이에 끼여 불편해하지만 위로와 충고, 고민을 나누는 도미닉은 모두 타인을 배려하는 인물이지만 서로 다른 경험의 차이로 상처를 준다.

연극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 배우 백지윤의 속도에 맞춰 프롬프터 역할을 하는 조력자가 무대에 함께 등장한다. 이들은 백지윤이 놓친 대사를 불러준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옥상훈

어려운 사랑을 이뤄가는 켈리와 닐 그리고 이를 말리려는 아그네스의 갈등이 극을 이끄는 중요한 힘이지만, 그 이면에는 장애에 대한 부당한 편견과 몰이해가 있다. 호텔 직원은 더블 침대 하나를 예약한 켈리와 닐이 부부일 리 없다고 단정해 트윈 베드 룸을 주고, 닐의 직장 동료는 다운증후군인 켈리가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닐을 소아성애자라고 괴롭힌다. 약국에서는 사후 피임약을 사러 온 켈리를 무시한다. 사후 피임약을 사지 못한 켈리는 임신한다.

세상은 장애에 대해 편협했고, 아그네스는 켈리를 키우면서 편협한 세상을 너무 많이 겪었다. 켈리와 닐이 당한 부당한 일은 직접적으로 재연되지 않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된다. 그래서 극에서 강조되는 것은 결혼을 하려는 켈리와 닐, 이를 말리는 아그네스의 갈등이지만 이 갈등의 본질적 원인은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협한 생각이다.

연극 '젤리피쉬'는 장애에 대한 시사적 질문을 던지지만 이를 표면에 드러내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연인,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상처에 집중한다. 특히 낙태를 권하는 엄마 아그네스와, 자신을 키우며 느꼈던 엄마의 감정을 헤아리는 켈리의 복잡한 심정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위트 있는 대사로 끊임없이 웃음을 주면서도 인물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서로의 속도 배려한 '프롬프터' 있는 연극

연극 '젤리피쉬'는 저신장장애가 있는 도미닉과 다운증후군이 있는 켈리 역에 당사자성을 반영해 김범진과 백지윤을 캐스팅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옥상훈

다운증후군 켈리 역과 저신장장애인 도미닉 역에는 당사자성을 반영해 백지윤과 김범진이 캐스팅됐다. 인지·감정 조절 속도가 다른 백지윤과 함께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 프로덕션에서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공연은 배우와 스태프 간 공개 워밍업으로 시작하며, 백지윤의 더딘 반응을 돕기 위해 프롬프터 역할을 하는 이가 무대 밖 공간에서 공연 내내 그를 따라다닌다. 백지윤이 놓친 대사를 불러주기 위해서다. 이런 비연극적 요소까지가 연극 '젤리피쉬'의 온전한 모습이다.

지난해 트라이아웃(시범) 공연을 거쳐 올해 본 공연에 나선 백지윤은 한결 성장한 모습으로 작품에 깊이 빠져들었다. 당사자성이 주는 울림이 큰 역할인데, 연기의 깊이까지 더해져 큰 감동을 준다. 김범진은 자존감은 약하지만 재치 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도미닉을 훌륭하게 형상화해 낸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기분 좋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살다 보면 사람들이 겁먹을 때가 있어. 대부분 잠깐 멈추고 숨을 쉬면 괜찮아져." 이런 충고를 해주는 도미닉이 있어 한결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로의 속도를 맞춰 가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연극을 만들어냈다.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면 함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해준 연극 '젤리피쉬'는 13일까지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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