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부터 김원훈까지, 현시점 가장 뜨거운 재능들의 별난 실험 '직장인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 여름 유튜브채널 <너덜트>는 일상 관찰형 스케치코미디라는 새로운 땅을 개척했다. 그들의 출현은 2020년 <개그콘서트>가 TV편성표에서 사라진 이후 광야로 내몰린 코미디언과 그 지망생 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혁명이었다. 이듬해 2022년 유튜브가 선정한 국내 최고 인기 크리에이터 톱 10위 중 1위를 차지한 <숏박스>를 포함해 3개 채널이 스케치코미디 채널일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에 안착했다.
이러한 한국형 스케치코미디의 시작은 한국 유튜브 예능의 중흥과 궤를 같이한다. <피식대학>, <싱글벙글>, <킥서비스>, <180초>, <별놈들>, <웃기시네> 등 수많은 스케치코미디 채널, 혹은 기반으로 하는 코미디 콘텐츠가 큰 사랑을 받았고, 무명에 가까웠던 문상훈, 임우일, 이창호, 나선욱, 이은지, 김해준, 박혜미, 김원훈 등의 여러 재능이 주목을 받으며, 코미디와 예능의 중심축을 유튜브 무대로 옮기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

이 한국형 스케치코미디의 특징은 흔히 현실을 그대로 포착해내는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별놈들>처럼 조폭, 일진, 유흥 등 특정 세계를 코믹하게 그리는 채널도 있지만, 보통은 저예산과 적은 인원으로 촬영해야 하는 만큼, 굉장히 현실적인 익숙한 미장센 안에서 디테일과 캐릭터가 알알이 살아 있는 현실고증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또래라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상, 직장, 군대, 연인, 친구 사이의 이야기 등등 왠지 주변에서 언젠가 직접 본 듯한, 겪은 듯한 상황을 세심하고 순도 높은 관찰력으로 포착해 짧은 이야기에 담는다.
공개코미디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며 가능해진 스토리텔링과 일방향의 재미 전달이 아닌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상이나 문화의 맥락을 비틀거나 그 속에서 작은 디테일을 잡아내서 재미를 만든다. 그 덕분에 한사랑 산악회부터 오늘날 이수지까지 잘 보여주고 있듯 하이퍼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완성도 높은 캐릭터들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일종의 팜시스템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스케치코미디를 주목하는 이유는 여러 트렌드, 채널, 인물이 흥하고 부침을 겪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스케치코미디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서서히 외연을 확장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 격인 콘텐츠가 지난주 첫 시즌을 마친 쿠팡플레이의 <직장인들>이다.
<SNL 코리아>의 코너 'MZ 오피스'의 스핀오프로서 그간 숱하게 사업 실패를 해왔던 신동엽이 연예인들의 이미지 쇄신을 돕는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는 설정하에 김민교, 이수지, 지예은, 김원훈 등의 SNL크루를 중심으로, 외모로 주목받는 배우 현봉식, 유튜브 스타로 발돋움 중인 카더가든, STAYC의 윤이 직원으로 합류해 직장인의 일상을 그려보는 콘텐츠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배우 고수가 헷갈려 했듯이 'MZ 오피스'의 확장판이 아니다. <직장인들>은 SNL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지만 대본이 없다는 점에서 대본연기를 하는 SNL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다. 오히려 상황과 캐릭터 위주로 설계하는 스케치코미디를 스케일업한 버전이자 실험에 가깝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 또한 스케치코미디씬을 이끌고 있는 김원훈을 중심으로 한 애드리브다. 콩트 관련 활동과 경험이 가장 많은 김원훈이 'MZ 오피스'의 감초 역할을 벗어나 주인공으로 급부상했고, 백지 상태에 가까운 카더가든이나 윤이 큰 활약을 하는 이유다.
엉뚱한 대답이나 전개에 연기자들이 웃음을 참는 상황을 묘사하는 이른바 '주전자 끓는 소리'는 함께 웃자는 지문과 같다. 콩트 연기, 19금 소재를 기반으로 하는 SNL 입장에서도 즉흥극의 리얼리티를 더해 신선함을 담보할 수 있고, 스케치코미디 차원에서도 신동엽, 현봉식 같은 제도권에서 일을 해온 예능인, 방송인과 함께하고, 숏폼의 기승전결 구도를 벗어났을 때의 가능성을 타진해본 실험이다.

물론, <직장인>들은 아직 다소 과도기적인 모습이 곳곳에 있다. 숏폼 형태를 벗어난 스케치코미디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필요하다. 직장인들의 애환과 상황을 담긴 했으나 스케치코미디의 장점인 스토리라인, 즉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본 요소인 이야기가 없다. 마지막 회인 6회 '녹즙 아줌마' 상황극 정도를 제외하면 게스트만 달라질 뿐 같은 틀을 반복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TV식 콩트 코미디다.
정해진 대본이 없다보니 상황에 따라 웃음의 질이라고 해야 할까. 코미디의 밀도가 아무래도 일정하지 않고 종종 늘어진다. 10여 년 전 <라디오스타>가 기존 예능의 혁신이 된 것처럼 게스트에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면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고 이를 받아주는 게스트가 새롭게 다가오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발달한 SNS와 갈등의 문화는 단순히 게스트를 놀리는 것을 넘어서는 보다 정밀한 코미디를 요한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의 시도는 훗날 더욱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수지, 김원훈, 지예은, 카더가든 등 오늘날 가장 신선하고 뜨거운 예능의 재능들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대와 가능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 예능이 예를 들어 미드 <오피스>처럼 정서적으로도 더욱 생생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관계망이 쌓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위에 올라가면 어떨까. 한국식 스케치코미디의 다음 영토로 새로운 버전의 시트콤으로 발전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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