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모차르트에 스며들다... 전설은 이렇게 이어진다(여홍일 감성 클래식美학)

주진노 기자 2025. 4.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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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의 모차르트 연주가 풍부한 색채와 울림으로 가득!”
익숙한 곡 속 낯선 감동, 연주 순서로 담아낸 백건우의 해석
프로그램 II, 전국 17회 투어 중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5번째 무대

 

3월 27일(목) 저녁 7시 30분, SAC 콘서트홀

"아이들이 치기엔 쉽지만, 어른들이 치기엔 너무 어렵다"는 모차르트의 연주곡들. 이는 20세기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의 말이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순진무구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타건으로 시작한 2025년이다.

'2025 백건우와 모차르트 II'(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27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첫 연주곡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들으며, "아이들이 치기엔 쉽지만, 어른들이 치기엔 너무 어렵다"는 명제는 적어도 백건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2024~2025년에 걸쳐 총 3개 시리즈로 기획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모차르트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지난해(2024년) 전국 17회 이상의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2025년에는 '백건우와 모차르트 Program II'라는 타이틀로 다시 전국 17회 이상의 투어에 나섰다. 필자는 그중 지난 3월 27일(목)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모차르트 프로그램 II 투어의 다섯 번째 무대를 찾았다.

관객들과 사인회에 응하며 소통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공연기획사 판테온)

 

■ "유기적으로 연결해 연주하는 것,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백미!"

지난해(2024년) '백건우와 모차르트 Program I' 전국 17여 회 연주 중 필자는 6월 1일(토) 오후 5시,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모차르트 연주를 관람했다.

올해 무대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곡의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결해 연주했는데, 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특유의 백미(白眉)로 떠오른다.

'건반 위의 구도자, 순수함으로 돌아가다'라는 공연 문구가 순수의 세계에서 시작하는 백건우의 두 번째 발걸음을 비춰주는 듯했다.

이번 시즌 그의 모차르트 무대는, 우리에게 익숙한 피아노 소나타나 론도 위에 글라스 하모니카를 위한 아다지오, 작은 장례 행진곡 등 모차르트의 숨겨진 명곡들을 커플링해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커플링에 대해 재불(在佛) 음악평론가 김동준은 "우선 그의 선곡과 조합이 비범하다. 잘 알려진 모차르트 작품뿐 아니라, 원래 피아노곡이 아닌 편곡 작품과 소위 '모차르트 전문' 피아니스트조차 연주하지 않는 작품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고 평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과거 라벨이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할 때도 각 작품의 순서를 탁월하게 배열해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했던 점을 떠올리면, 이것이야말로 한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백건우의 음악적 식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한편, 지난해 Program I과 달리 올해 연주회의 전반부 마지막 곡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2번'은 1악장 Allegro assai가 빠르고 정열적인 악장으로 시작해, 특유의 에너지와 매력으로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 모차르트 Program II: 풍부한 색채와 울림이 전해지는 백건우의 연주

2악장 아다지오는 생동감 넘치는 첫 악장과 대조적으로 느리고 표현적이며, 마치 노래 같은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화성 진행이 돋보인다. 이어지는 3악장 프레스토는 에너지와 밝음의 물결로 소나타를 마무리하는데, 빠른 템포와 경쾌한 리듬이 이 악장을 더욱 흥미롭게 장식한다.

이날 백건우의 모차르트 연주는 풍부한 색채감과 깊은 울림으로 가득 차, 흔히 '평면적이고 건조하다'고 여겨지는 모차르트 해석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다. 후반부에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곡 중 중기 작품인 10번과 '환상곡 c단조 K. 475'가 비중 있게 연주됐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번(C장조 K.330)은 1악장의 우아하고 매력적인 주제가 인상적이며, 풍부한 선율과 화음이 모차르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2악장은 한층 깊이 있는 감성과 서정성을 품고, 3악장은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곡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환상곡 c단조 K.475'는 즉흥연주의 대가였던 모차르트 특유의 자유로움을 상기시켜주는 명곡이다. 특정 형식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흐르는 즉흥적 요소가 두드러지며, 모차르트의 즉흥곡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올해 두 번째로 이어진 '백건우와 모차르트' 무대를 통해, 한 작곡가의 작품에 깊이 천착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진면목이 다시금 빛났다고 본다.

임윤찬이나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 아이돌' 현상이 최근 클래식 무대에서 두드러지는 가운데, 백건우의 무대는 거장 선배 피아니스트로서 후배들에게 큰 동기부여이자 벤치마킹의 기회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올해(2025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초기 공연, 즉 3월 30일에 열렸던 파블로 페란데스 &선우예권 연주회와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피아노 리사이틀'을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관람했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정석이 글렌 굴드의 연주라고 하지만, 젊음의 해석으로 밀고 나가는 임윤찬의 해석 또한 흥미로웠다. 이렇게 이제 막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계 클래식 무대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들에게, 80을 바라보는 백건우의 행보는 충분히 '타산지석'이자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벤치마킹 자산'이 될 것이라고 본다.

모차르트 Program II 연주회후에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 한 작곡가에 천착하는 백건우의 행보

한 작곡가의 작품에 천착해온 백건우의 최근 행보를 떠올려보면, 2017년 가을(9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연주회'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2020년대 이후 가장 최근에 선보인 단일 작곡가 전곡 시리즈라면 2022년 M소나타 시리즈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를 들 수 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풀어낸 '고예스카스'는, 청중들이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스페인의 색채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열정, 사랑, 우아함 등 작품에 깃든 다채로운 상상력이 인터미션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는데, 그 덕분에 관객들은 백건우가 펼쳐낸 한 폭의 수채화를 한 시간 넘도록 오롯이 음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이전인 2020년 10월 9일(금) 저녁에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와 슈만' 역시, 클래식 애호가들이 슈만의 다양한 작품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무대였다.

앵콜곡 없이 진행되었지만, 충만한 만족감을 안고 돌아간 관객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객석 절반만 채워졌음에도, 긴장감과 높은 집중력이 더해진 분위기 속에서 백건우가 빚어낸 <세 개의 환상작품집>과 <새벽의 노래>, 그리고 꿈꾸듯 펼쳐지는 슈만의 세계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연주곡이었던 '유령 변주곡'은 많은 이들이 이날의 '백미'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 곡이 끝난 뒤 수십 초간 이어진 무거운 정적은, 마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의 말미에서 느껴지는 장엄한 침묵처럼, 슈만 인생의 마지막 장을 덮는 듯한 깊은 여운으로 다가왔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 편집 주 진노

사진=인터파크, 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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