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의 봄, 평화의 의미는? [오늘, 세계]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지난달 29일, 이시바 시게루(石破 茂) 일본 총리가 이오지마(硫黄島: 지금은 이오토라 부름)를 찾았다. 이오지마는 행정구역 상, 도쿄도 오가사와라무라(小笠原村)에 속하며, 도쿄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250km 떨어져 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에는 약 1,1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1944년 소개령에 따라 징병된 이들을 제외하곤 본토로 이주하였다. 이듬해 2월 19일부터 3월 26일에 걸쳐 미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이오지마 전투"는 태평양 전쟁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곳이다. 당시 전투에서 일본군 2만1,000명은 포로가 된 일부 인원을 제외하곤 전멸하였는데, 끝까지 지하 갱도 등에 몸을 숨기며 극렬히 저항하여 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군 측 사망은 6,800여 명, 부상자는 2만 명가량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유일하게 공격군의 피해가 방어군 보다 컸던 사례로 꼽힌다.
큰 희생을 치른 이 전투로 미국은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 이오지마는 사이판과 도쿄 사이에 있어 수도 도쿄 방어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미군이 점령한 이후에는 미군의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공급하는 데 있어 전략적으로 유용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오지마 전투는 미국의 애국주의를 상징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이오지마에 미 해병대가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은 지금까지도 미국 애국주의의 표상으로 남았다. 워싱턴DC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미 해병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이 장면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귀환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2024년 7월 13일,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가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도중 총격 당했을 때 연단에서 일어나 성조기가 펄럭이는 앞에서 주먹을 들어 올리던 장면이 이오지마의 성조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결국 트럼프는 재취임에 성공했고 안보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취임 후 두 달이 지난 3월 20일에는 미 국방부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척결을 단행하다 이오지마 성조기 사진이 국방부 웹사이트에서 삭제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연방정부 효율화 추진과 함께 동맹국들에게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일미군 확장 계획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같은 날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주일미군 기능을 강화하고 일본 자위대와 지휘 통제를 연계하려 했던 것인데, 소식을 접한 일본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3월 24일, 계획대로 일본 육상·해상·항공 자위대를 종합적으로 지휘할 통합작전사령부는 결국 출범했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29일, 태평양 전쟁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며 이시바 총리가 나가타니 겐(中谷 元) 방위상,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미 국방장관과 나란히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오지마에서 열린 합동위령식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분위기는 반전된 듯하다. 위령식 다음 날인 30일, 도쿄에서 나카타니 방위상과 양자회담을 가진 헤그세스 장관은 "일본은 공산주의 중국의 군사적 침략을 억지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주일미군을 합동군사령부로 격상하는 1단계 작업을 시작했다며, "싸울 수 있는(war-fighting) 사령부로 개편한다"고 언급했다.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노르웨이 출신의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구분했다. 소극적 평화란 직접적인 폭력이 부재한 상태를 가리키며, 적극적 평화란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까지도 해소된 상태를 말한다. 미·일이 서로를 죽고 죽이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외친 "평화"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그 평화의 그림 속에 러시아, 중국,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광복 80주년, 대한민국의 전략적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임은정 국립공주대 국제학부 교수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0분 울먹인 김수현 "김새론과 5년 전 1년 교제... 유족 측에 120억 손배소" | 한국일보
- [단독] 최여진, '돌싱' 예비신랑과 6월 1일 결혼 | 한국일보
- '불바다' 천년고찰 목욕탕서 버텼다… 동료들에 극적 구조된 소방관 11명 | 한국일보
- 창원 NC파크 구조물 추락 사고, 20대 여성 관중 결국 사망 | 한국일보
- 화성 태행산 정상에 폐기름 뿌린 60대 자수... "캠핑족 막으려 했다" | 한국일보
- 300㎞ 달려 산불 현장으로... '흑백요리사' 안유성 명장, 전복죽 800인분 기부 | 한국일보
- "9년간 고통스런 시간"… '성폭행 혐의' 장제원 고소인, 동영상·감정 결과 증거 제출 | 한국일보
- 순대 6개에 2만5000원? 제주 벚꽃 축제 '바가지' 논란... "바로 시정했다" | 한국일보
- 경북 휩쓴 '최악의 산불'… 실화자 징역·손해배상 가능성은? | 한국일보
- "내가 작가 하나 못 잘라?" 본부장 호통에 '일 잘하는 나'는 바로 잘렸다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