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산업의 뿌리 ‘제조업’…경인지역 제조업 선구자 발자취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이호준 기자 2025. 3.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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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국가 산업 발전 이끈 주역... 변화 발맞춰 지속가능 성장 계속
1945년 광복 후 생필품 생산부터 현재 반도체 중심 첨단 산업까지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3. ‘근면성실’ 경인 제조업… 대한민국 성장 ‘일등공신’
경기도와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지역으로, 광복 이후 산업 발전의 역사를 새겨왔다. 그중에서도 ‘제조업’은 경제의 근본적인 산업 중 하나로, 생산적 가치를 창출하고 고용을 증대시키는 주요 분야다. 폐허가 된 국토 위 한반도는 비약적인 경제 도약을 이루며 세계 10대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23년 기준 경기·인천 소재 제조업 사업체 수는 전국에서 42%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의 제조업 성장을 주도한 일등 공신으로 평가 받는다.

■ 정통 산업의 뿌리 ‘제조업’, 경인지역 경제를 이끌다

지난 80년 동안 근면 성실하게 대한민국 산업을 이끈 숙련된 기술인과 기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경인지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창출, 경제 성장, 산업 혁신 등 여러 측면에서 발전하며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해 왔다.

현재 안산에 본사를 둔 기업, 태양금속공업이 1955년 서울 연건동 공장 확대 당시를 기록한 사진. 태양금속공업 홈페이지


1945년 광복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격변기를 거친 시기, 경인지역의 제조업은 식량, 의류, 의약품 등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섬유, 식품, 화학 소규모 공장들이 주를 이루며 생필품 생산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이 시기 설립된 안양의 노루페인트는 페인트 산업에서, 수원의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은 화학 및 미용 제품을 생산하며 성장했고, 1946년 성남에 설립된 고려은단은 비타민과 건강기능식품을 제조했다. 1948년 설립된 인천 동화기업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며, 1956년 설립된 용인 삼화콘덴서공업은 전자기기 부품 제조로 시작해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장수 기업들이다.

중소기업 공장에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기록원 홈페이지


한국전쟁 10년 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경인 제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섬유, 전자,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출 주도형 산업이 발전하며 ‘한강의 기적’을 견인했다. 경기도에서는 동일제강(철강 산업), 성보화학(화학 산업), 대웅제약(제약 산업), 농협케미컬(화학 산업), 고려제지(제지 산업), 삼정펄프(펄프 및 제지 산업) 등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서는 동진쎄미켐(반도체 및 전자재료), 동신관유리공업(유리 제조), 태양금속공업(금속 제조) 등이 활약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기술 혁신과 고도화를 통해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경인 제조업이 성장했다. 경기도에서는 1941년 설립된 안산의 대한전선과 안양의 가온전선, 1944년 설립된 기아자동차, 1947년 설립된 LG화학 등이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성장을 이어갔으며 인천에서는 1953년 설립된 현대제철 등이 굴곡진 역사를 거치며 제조 산업 안에서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이뤘다.

2002년 1월에 촬영된 용인시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 게티이미지코리아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보통신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경인지역 제조업이 발전했다. 특히 경기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위치하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인천 또한 반도체 후공정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자리 잡았고 남동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이렇듯 지난 80년간 경인지역 제조업체들의 식지 않던 열정과 노력은 우리 삶은 물론, 산업의 역사와 발전에 한 획을 긋게 됐다.

■ 경인지역 제조업의 산 역사…기회의 도시 인천에 뿌리내린 ‘국일프레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산업의 집약체다. 70년 넘는 역사를 일궈내며 프레스 산업을 이끌어 온 ‘국일정공’은 작은 부품부터 최첨단 제품까지 모든 공정에 뜨거운 ‘장인 정신’을 새기며 제조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국일전공 전경. 국일정공 제공


1950년대 초,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기계 회사를 운영하던 신정섭 회장은 프레스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1954년 인천 미추홀구에 ‘국일프레스’를 설립했다. 인천은 항구 근처로 공장 유치에 유리한 넓은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후 영등포기계공단과 인천 기계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국일프레스는 더욱 활발하게 성장했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프레스 가공 시 제품 자동 이송 장치를 개발했고 1천t 크랭크 리스프레스와 너클 조인트 프레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프레스 업계에서는 ‘국일프레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새로운 제품, 공정, 기술 개발로 프레스 산업을 이끌었던 국일프레스는 신 회장의 노련함처럼 인천 프레스 산업의 터줏대감이 됐지만 신 회장은 더 큰 발전을 위해 1990년대 초 회사를 내려놓았다.

지난 1979년 12월29일 신문에 실린 국일프레스 광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 제2막의 시작…‘국일정공’이 개척한 프레스 산업

1995년, 국일프레스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며 제2막을 열었다. 강인덕 현 국일정공 회장은 1995년 국일프레스를 인수한 뒤 사명을 ‘국일정공’으로 변경했다. 국일정공은 밤늦도록 쉼 없이 가동됐다. 1996년 고속자동 프레스 신기술 등을 개발하며 국내 기계산업 발전을 앞당겼고 인도, 중국, 동남아 지역에 설비를 수출하며 국위선양에 기여했다.

승승장구하던 국일정공도 1997년 IMF 위기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수십억 원의 부도를 맞아 프레스 산업의 역사인 국일정공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직원들은 월급을 반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강 회장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내보였던 직원들의 진심을 되뇌며 경영 정상화에 몰두했고, 국일정공은 위기의 시절을 지나 2000년대 초 연 매출 200억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노사가 함께 위기를 극복한 국일정공은 뿌리산업의 중심이 됐다. 2010년대에는 품질 향상에 힘썼고 인수 20주년인 2015년에는 재도약의 해로 삼아 안전사고 방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4년 인천시 한국무역협회 인천지부 수출 100억불 달성 기념 무역인 초청간담회에서 강인덕 회장이 안상수 인천시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일정공 제공


경인지역의 제조업은 단순한 산업의 개념을 넘어, 지역경제와 함께 발전해 온 역사로 불린다. 그 일선에 있는 국일정공은 앞으로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다.

강 회장은 “회사를 키우기 위해 대표인 나를 비롯해 직원 모두가 열심히 일했다”며 “회사 소파에서 쪽잠을 자던 청춘이 지금 국일정공의 자양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프레스 산업의 발전과 영광을 함께한 국일정공은 장인정신으로 꾸준히 연구 개발에 집중하며 21세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격변의 80년,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한 경인 제조업

1945년, 일제강점기의 ‘남농북공(南農北工)’ 정책으로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형성, 산업 기반이 약했던 우리나라는 6·25 발발로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전쟁 후 지역 -경제의 재건을 꿈꾸던 이들은 ‘생산’을 중심으로 제조업 성장 기반을 마련하며 희망을 키워갔다.

광복 직후 격변의 시기를 겪던 당시에는 공식 경제 통계가 마련되진 않았지만 이후 통계청이 한국은행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과거 통계연감’을 통해 1946년부터 1960년까지의 주요 제조업 제품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명주실, 관영 소금, 시멘트, 보통벽돌, 약주 및 탁주 등 기초생필품과 전후 재건에 필요한 물품들이 주로 생산됐다.

1951년 9월9일 부산의 한 면사 공장에서 소녀들이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목화에서 실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제공


우리나라 제조업의 발전을 보여주는 ‘제조업체 수’는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로 확인할 수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1955년 당시 전국 광업과 제조업체 수는 9천93개였고 경기도에는 663개의 사업체가 있었다. 인천은 1981년부터 독립된 광역시로 재탄생하면서 사업체 수가 집계됐으며 그 수는 1천432개였다. 같은 해 경기도는 5천192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도별 제조업체 수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9년 전국 제조업체 수(10인 이상)는 4만7천485개였으며, 경기도는 1만4천59개, 인천은 4천129개였다.

이후 2006년 경기도 제조업체는 2만541개로 2만개를 넘었고, 인천은 4천770개로 집계됐다. 경인지역의 제조업체가 전국 제조업체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38.31%에서 2006년 42.96%로 증가했다.

그리고 꾸준한 발전을 거쳐 2023년 기준 경기도는 전국 제조업체 수 7만3천50개 중 35.55%에 달하는 2만5천970개의 제조사업체를 둔 제조업 1위 광역지자체가 됐다. 인천은 4천728개의 제조업체를 보유하며 경기도와 경남, 경북, 충남의 뒤를 이어 제조업체 수 전국 5위에 올랐다.

그래픽. 유동수화백


경인지역 제조업체 수가 늘며 제조업 종사자 수도 증가했다. 2023년 기준 경인지역 제조업 종사자는 111만6천742명으로 전국(297만4천315명)의 37.5%를 차지했다.

■ 부가가치도 생산량도 늘었다…경인지역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한 ‘제조업’

그래픽. 유동수화백


제조업이 갖는 지역 내 산업 경쟁력 지표인 통계청 ‘지역소득’에 따르면 경기도의 제조업 총부가가치는 1985년 4조1천억원에서 2022년 209조9천억원으로 약 50.6배 증가했다. 이는 전국 제조업 부가가치액(616조1천952억원)의 34%에 달한다. 제조업 지역내총생산도 4조1천531억원에서 178조6천75억원으로 증가하며 제조업의 양적 성장을 뒷받침했다.

인천의 제조업 총부가가치 역시 1985년 1조5천211억원에서 2022년 28조6천682억원으로 37년 새 약 16.8배 증가했으며 제조업 지역내총생산은 1조5천211억원에서 25조5천259억원으로 17배 늘었다.

제조업 성장의 기반이 된 지역별 핵심 산업도 있다. 1985년 경기도 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산업은 ‘전기, 전자 및 정밀기기 제조업’이었다. 이 산업은 지역내총부가가치 1조426억6천만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2022년에도 이 산업은 여전히 경기도 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109조7천395억8천만원의 총부가가치를 기록,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래픽. 유동수화백


반면 인천은 1985년 ‘기계, 운송장비 및 기타 제품 제조업’이 4천204억2천만원의 지역내총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2022년에는 ‘운수 및 창고업’이 12조6천19억4천만원으로 1위를 차지하며 산업 분포가 변화했다. 1위였던 ‘기계, 운송장비 및 기타 제품 제조업’은 부동산업(8조7천673억4천만원), 도매 및 소매업(8조4천18억3천만원)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인천이 항만을 중심으로 한 물류 산업의 성장과 함께 서비스업인 부동산업, 도소매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과거 제조업 중심에서 물류 및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됐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경기도와 인천의 제조업이 디지털 전환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경기연구원은 2023년 ‘경기도 제조업 현황과 제조 혁신을 위한 정책 연구 보고서’를 통해 경기도 제조업 혁신을 위한 ▲경기도형 제조 혁신 전략 수립 및 실행 ▲제조 혁신 전문가 양성 ▲디지털 제조 혁신 거점 권역별 설치 등 정책 기반 마련을 주장했다. 특히 반도체, 바이오, 미래 차 등 첨단 산업과 소재·부품·장비, 가구·섬유 등 특화 산업의 공정 및 제품 혁신, ICT(정보통신기술)·AI(인공지능)·데이터 기반 제조 혁신 생태계 고도화를 중요하게 다뤘다.

최태림 인천연구원 인천경제동향분석센터장은 2021년 ‘인천시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실태와 정책방향’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산업 특화 스마트공장 고도화, 맞춤형 보급 확산 정책, 재직 인력 업스킬 및 미래인력 양성, 공공서비스 전달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지능형 데이터 플랫폼 모델 개발 지원, 스마트공장 기반 일·학습 병행제, 지역 제조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제안하며 “AI 기반 데이터 플랫폼과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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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김샛별 기자 imfine@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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