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부담 급증에…기업 ‘탈한전’ 본격화

김형욱 2025. 3. 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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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위, SK어드밴스드 ‘전력 직구’ 신청 승인
연이은 산업용만 요금인상에 각자도생 나서
자가용 발전소 건설 증가 이어 직접 구매까지
“남는 소비자 피해 우려…제도 보완 서둘러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급격히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에 기업의 ‘탈한전’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전력(015760)공사가 유례없는 재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핵심 고객인 기업 이탈이 본격화한다면 그 부담이 남은 소비자에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년 만에 기업 ‘전력 직구’ 허용

30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위원회는 지난 28일 제310차 전기위원회에서 SK어드밴스드의 전력 직접구매 신청에 따른 3만킬로볼트암페어(㎸A) 이상 대용량 소비자 전력 직접구매 규칙을 최종 승인했다. 전력 다소비 기업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기를 직접 사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기위의 승인으로 당장 31일부터 새 규칙이 적용된다.

(사진=게티이미지)
이 제도는 이미 2003년 시행됐으나 실제 활용되는 건 처음이다. 한전이 정부의 가격 통제 아래 제공하는 전기요금이 높지 않았기에, 굳이 직접 사서 쓸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용에 집중된 전기요금 인상이 상황을 바꿨다.

정부와 한전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등 발전 연료 급등 여파로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했는데, 산업용 전기 요금이 특히 많이 올랐다.

3년 누적 인상률 기준 산업용은 약 70%, 일반 가정·상업에 대한 주택·일반용은 약 40%다. 최근 2번 산업용만 따로 요금을 올린 데 따른 것이다. 이 여파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미국·중국 등 일부 국가보다 높아졌고, 급격히 늘어난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살 길을 찾아 나섰다.

SK그룹의 프로필렌 제조사인 SK어드밴스드는 모회사 격인 SK가스를 비롯해 SK(034730) E&S, SK이터닉스(475150) 등 여러 발전 계열사가 있는 만큼 전력을 직접 사올 여건이 있다. 한전에 내야 할 전력망 이용료를 고려하더라도 1킬로와트시(㎾h)당 20원 이상 비용 부담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의 올 1월 기준 전기 평균판매단가는 1㎾h당 172.5원이고, 1월 전력도매시장 내 판매단가(SMP)는 117.13원으로 약 55원가량 차이가 난다.

주요국 산업용·주택용 전기요금 현황. 단위=원/1㎾h. (제공=대한상공회의소)
탈한전 가속 전망…“제도 개선해야”

기업들의 전력 직접 구매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기업 한전이 오랜 기간 적자를 감수하고 전기를 판매한 탓에 총부채가 205조원까지 불어난 상황으로, 당분간 전기요금을 내리기는커녕 더 올려야 할 요인만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기업에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의 11.7%가 전력 직접구매나 자가발전소 건설을 통해 전기요금 부담을 낮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요금이 더 오르면 이를 추진하겠다는 응답(27.7%)을 포함하면 기업 열 중 넷이 ‘탈한전’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실제 많은 기업이 자체 발전소를 짓는 식으로 자체 비용부담 완화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와 현대제철(004020) 등이 발전소를 지었거나 짓고 있는 가운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자체 발전소 건설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에 기업 전력 직구가 허용된 가운데, 연내 분산에너지 특별구역 내 전기 직접거래도 가능할 예정으로 정부가 한전을 통해 통제해 왔던 전력 판매시장이 일제히 열리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탈한전 가속이 자칫 한전에 남은 대부분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제기되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한전 전기요금이 쌀 땐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사고 비싸지면 다른 곳에서 사는 식으로 옮겨간다면 한전에 남은 소비자가 이에 따른 비용적 부담을 안게 된다.

전기요금 고지서. (사진=연합뉴스)
전기위가 SK어드밴스드의 신청 이후 6개월간 고심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승인과 함께 전기 구매 계약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려 기업의 갈아타기 방지 조치를 했으나 이번 일의 파장을 고려했을 땐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전력 직접구매 총량에 한도를 정해놓고 매번 추첨 등을 통해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예전에 전기요금을 (원가 이하로) 할인받았던 고객은 ‘미수금’을 안고 있는 셈”이라며 “이런 고객이 가격이 오른다고 그냥 나가서 남은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지 않도록 기존 할인분 부담 의무를 지우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살 길을 찾아 나선 기업보다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렸던 정치권의 잘못이 더 크다”며 “산업용 외 다른 용도 요금도 원가 수준에 맞춤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전 재무구조가 더 악화하는 건 막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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