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의 122구… 승리투수는 정말 가치있는 기록일까[이정철의 하드힛]

이정철 기자 2025. 3.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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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고졸 신인이 프로 무대 데뷔전에서 무려 122구를 던졌다. 승리투수 타이틀을 얻기 위해 5회말까지 던지게 한 결과다. 그런데 승리투수는 정말 가치 있는 기록일까. 메이저리그는 이미 15년 전, 승리투수 기록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했다.

정현우. ⓒ스포츠코리아

고졸 데뷔전 승리 기록 위해 122구 던진 정현우

정현우는 26일 오후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실점(4자책) 8피안타 7사사구 4탈삼진을 기록했다.

뛰어난 투구는 아니었지만 정현우는 타선의 도움을 받아 승리를 따냈다. 키움 타선은 이날 5회까지 무려 11점을 뽑아냈고 경기를 18-10으로 승리했다. KBO리그 역대 12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승리투수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경기 후 혹사 논란이 일었다. 정현우의 투구수 때문이었다. 정현우는 이날 무려 122구를 던졌다. 최근 KBO리그 선발투수들이 등판 때마다 100구 정도 던지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투구수였다.

물론 과거 수많은 선발투수들이 등판 때마다 120개가량 공을 던졌다.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즌 첫 등판에선 통상적으로 공 개수를 늘리는 과정이기에 100구 이하로 던진다는 점, 프로 첫 등판이기에 어느 때보다 긴장감 속에 던졌을 정현우의 상태를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투구수였다.

실제로 정현우의 이날 122구는 역대 고졸 신인의 데뷔전 최다 투구수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1991년 4월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현 두산)전에서 135구로 완투승을 거둔 롯데 좌완투수 김태형 외에는 정현우보다 데뷔전에서 많이 던진 고졸 신인이 없다.

키움도 이를 모를 리는 없다. 평소 홍원기 키움 감독은 신인 투수들의 투구수를 잘 관리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정현우에게 122구를 던지게 한 것은 5이닝을 채워 승리투수 기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류현진. ⓒ스포츠코리아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 기록의 가치는 15년 전에 재평가됐다

그런데 승리투수 기록이 과연 중요한 것일까. 야구가 탄생하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승리투수는 클래식 스탯으로 큰 가치를 지녔다. 모든 야구팬들이 다승왕을 최고의 투수로 평가했다. 선발투수들은 적어도 10승을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승리투수 기록이야말로 투수들의 능력과 관련이 없을 때가 많다. 지난 25일 류현진은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팀이 1점도 올리지 못하면서 승리를 올리지 못했다.

반면 정현우는 5이닝 동안 6실점을 기록하고도 승리를 따냈다. 2025시즌 1승의 정현우와 아직 무승의 류현진. 그렇다면 정현우가 류현진보다 더 나은 투수인가. 실점만 보더라도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류현진은 미국 진출 전 2012시즌 9승을 기록했다. 한국 최고의 투수인데 10승을 올리지 못했다. 장원삼은 당시 17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했다. 그런데 평균자책점,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은 류현진의 압승이었다. 이닝도 류현진이 더 많이 소화했다. 이처럼 승리투수 기록은 투수들의 실력과 가치를 온전하게 담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하는 지표다.

▶류현진, 장원삼의 2012시즌 주요 성적

류현진 182.2이닝 9승9패 평균자책점 2.66 피안타율 0.232 WHIP 1.09 FIP 2.16
장원삼 157이닝 17승6패 평균자책점 3.55 피안타율 0.242 WHIP 1.15 FIP 3.05

이미 메이저리그는 15년 전 승수와 관련해 패러다임을 바꿨다.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2010시즌 고작 13승을 획득한 채 사이영상을 획득했다. 21승의 C.C. 사바시아, 19승의 데이비스 프라이스를 제쳤다. 승수를 중요시하던 사이영상의 기준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에르난데스 이전 사이영상을 수상한 선발투수의 평균 승수는 21.4승인데, 에르난데스 이후는 17.8승(2020년 코로나19 단축 시즌 제외)이다.

펠릭스 에르난데스. ⓒAFPBBNews = News1

특히 제이컵 디그롬은 2018, 2019시즌 각각 10승과 11승으로 사이영상을 2연패를 거머쥐었다. 코빈 번스는 2021년 11승으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평균자책점, 탈삼진, WAR(평균 선수대비 승리기여도),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가 사이영상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 기록은 더 이상 투수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아직도 승리투수에 집착하는 KBO리그

KBO리그에서 최고의 투수에게 부여하는 상은 투수 골든글러브다. 지난해 KBO리그 투수 골든글러브 부문에서 다승왕(15승) 원태인은 81표를 얻어 골든글러브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원태인은 지난해 같은 소속팀 코너 시볼드에게도 대다수의 성적에서 밀렸다. 앞섰던 것은 승수뿐이었다. 같은 팀이었기에 홈경기, 팀 성적도 비교군이 될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삼성의 에이스는 코너였는데, 코너는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1표도 획득하지 못했다. 더 잘 던진 투수가 승수로 인해 외면받는 황당한 일이었다.

▶원태인, 코너의 2024시즌 주요 성적
원태인 159.2이닝 15승6패 평균자책점 3.66 피안타율 0.245 WHIP 1.20 FIP 4.55
코너 160이닝 11승6패 평균자책점 3.43 피안타율 0.226 WHIP 1.09 FIP 4.44

이처럼 아직도 한국은 승리투수 기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정현우의 122구 투구도 승리투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나온 결과다. 실제 고졸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내는 것이 엄청난 영광이기에 122구를 던질만했다는 여론도 크다.

정현우. ⓒ키움 히어로즈

그러나 승리투수 기록은 앞서 말했듯이 투수의 개인적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볼 수 없다. 2012시즌 9승의 류현진이 17승의 장원삼보다 뛰어난 투수였듯이 말이다. 그런데 승리투수를 위해 122구를 던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다.

누구나 특별한 기록 앞에서는 조금 더 무리를 할 수 있다.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을 눈앞에 뒀다면 자신의 한계 투구수보다 더 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5이닝을 채워 승리투수를 올리는 것은 현대야구에서 값진 결과라고 볼 수 없다. KBO리그의 낡은 관념일 뿐이다. 이번 정현우 혹사 사태를 계기로 승리투수 기록에 대한 가치를 다시 매겨야 할 때이다.

-이정철의 하드힛 : 최근 뜨거운 주제에 대해 기자의 시각이 담긴 칼럼. 하드힛 타구(시속 153km 이상 타구)처럼 빠르고 날카롭게 때로는 강하게 매력적인 주장을 펼치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2jch42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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