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음을 인정하는 리더십에 대하여 [콘텐츠의 순간들]

매년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학생 희망 직업 조사 결과에서 대통령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엔 한 학급에서만 열댓 명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마저 대통령을 희망하지 않는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희망 직업 1순위는 운동선수였고, 중고등학생의 1순위는 교사였다. 나머지는 크리에이터, 경찰관, 배우, 가수, 약사, 군인 등이 고르게 차지했다.
왜 어린이들은 대통령을 꿈꾸지 않을까?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성이 달라서, 여러 직업군에 롤모델이 많아서···. 내가 자녀에게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선뜻 권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어쩐지 주저하게 된다. 좋은 리더가 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동시에 대통령이 좋은 리더이지 않으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마저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리더라면, 다시 어린이들의 꿈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좋은 리더’의 상은 모두 다를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나만 해도 리더에게 바라는 상이 시시각각 바뀐다. 이전에는 추진력 있게 일을 밀어붙이는 리더가 탁월해 보였으나, 최근엔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를 하나하나 검토하는 리더가 든든하게 여겨진다.
최근 접한 가장 이상적인 리더는 만화를 보던 중 홀연히 마음속에 들어왔다. 이 리더는 자신의 복수를 하겠다며 적에게 칼을 들이미는 아군 앞에 뛰어 들어가 그들을 막아선다. 적에게 등을 돌린 채로,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결연히 소리친다. 나의 복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의 삶을 살라고. 과거에서 벗어나 진실을 직면하고, 미움과 증오에 붙잡힐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라고 말이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바로 웹툰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의 등장인물 ‘루시펠라(에스텔)’이다.
웹툰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은 로맨스판타지 장르 작품이다. 대다수 로맨스판타지 웹툰은 왕족, 귀족, 평민 등 계급제가 존재하는 유럽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도 비슷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중에서도 주인공의 사연이 다소 복잡한 편이다. 주인공의 본래 이름은 ‘에스텔’로, 지금은 멸망한 국가 ‘얼샤’의 마지막 기사단장이었다. 에스텔은 얼샤의 기사단장으로서도 매우 상징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샤 역사상 최초의 평민·여성 기사단장이자 전쟁터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다. 많은 전투에서 적의 침공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전력이 압도적으로 열세한 전투에서 스스로 포로를 자처하며 적진에 태연히 들어가는 등 대범한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에스텔은 얼샤의 빛나는 희망이었다. 같은 기사단의 동료가 그를 배신하고 목을 베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료로부터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맞이한 에스텔은 이후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한다. 어떤 운명의 이끌림인지 얄궂게도 그가 깨어난 몸은 얼샤의 적국이었던 얀스가르 왕국의 귀족이다. 그것도 늘 코르셋과 드레스를 착용해야 하는 귀족 공녀 말이다. 여자였지만 한평생 바지를 입고 전쟁터에 나가 칼을 들고 싸우던 이전의 생과는 정반대다.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이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얼샤의 기사단장이었던 에스텔이 적국의 귀족 레이디 ‘루시펠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적국이었던 얀스가르 왕국에서 공녀 루시펠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게다가 루시펠라에게는 약혼자마저 있었는데, 하필 얼샤의 기사단장이었을 때 칼을 맞대고 싸우던 적국의 기사단장 하인트가 바로 그 상대다. 루시펠라는 하인트에게 강한 적대감을 내보이고, 하인트 역시 그런 루시펠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약혼을 깨려던 그들이지만, 요새의 로맨스는 ‘혐관(서로를 싫어하는 관계)’에서 불붙는 게 정석이지 않은가. 서로를 싫어하던 그들은 여러 사건을 계기로 차츰 사랑이 싹트게 된다.
“이제 그만하자, 얘들아”
동시에 루시펠라는 자신의 조국인 얼샤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선다. 기사단장이었을 때는 몰랐지만, 후일 알고 보니 에스텔이 목숨 바쳐 지켜내려 했던 조국 얼샤는 부조리한 권력의 성역과도 같았다. 백성들은 매일 가난에 허덕이는데 정작 왕과 귀족들은 호의호식하며 그런 백성들을 지키기는커녕 전쟁터로 내몰았다. 왕은 평민 출신의 여성 기사단장이라며 겉으로는 에스텔을 추켜세웠지만, 실은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언제든 에스텔을 적국에 넘겨버릴 심산이었다. 적국의 루시펠라로 눈뜬 덕택에 에스텔은 자신이 몸담아왔던 나라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고, 그로써 자신이 지켜내려 했던 것의 실체를 직면하게 된다. 에스텔은 얼샤를 지켜내는 것을 몹시 성스럽고 가치 있는 일로 여겼지만, 실은 한 권력자의 야욕을 수호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그건 에스텔만의 잘못은 아니다. 누구나 숲 안에 있으면 숲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숲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우선 숲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멀리서 조망했을 때라야 내가 속한 곳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발짝 떨어져 보았을 때, 여전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테다. 그러나 내가 수호하던 것이 실은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도리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에스텔이 목도한 것처럼.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누군가는 그런 진실을 부인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괴롭지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에스텔은 기꺼이 후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변화마저 종용한다. 루시펠라는 에스텔로서 부하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이제 그만하자, 얘들아(128화).” 나의 신념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괴롭다. 그러나 틀렸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분노를 떠넘기는 건 헛된 일”이다. 그래서 에스텔은 부하들에게 무의미한 복수를 중단하고 각자의 삶터로 나아가자고 설득한다.
누구나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틀렸다는 사실을 덮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고 분노를 전가하는 건 최악의 선택지다. 무엇보다 리더는 공동체를 갈등으로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리더라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니까. 지금 우리 사회도 이 만화가 그리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혼란스러운 시국 앞에 에스텔의 용기를 비추어본다. 지금 나의 신념은, 당신의 신념은 무엇을 수호하고 있는가? 우리에겐 지금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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