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동네 슈퍼, 위기 가구 레이더 되다 [사람IN]

권은혜 수습기자 2025. 3. 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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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겨울, 경기도 부천시에 실직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를 집어들고 외상을 할 수 없겠냐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엘지슈퍼의 사장 부부 역시 이 제도를 이용해 외상을 요청한 청년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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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서 37년째 '엘지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백원선씨. ⓒ시사IN 박미소

2023년 겨울, 경기도 부천시에 실직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라면 한 봉지를 집어들고 외상을 할 수 없겠냐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슈퍼 주인은 청년에게 5만원어치의 생필품을 챙겨 주며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6개월 뒤, 다시 슈퍼에 나타난 청년은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사연은 최근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가 되었다.

청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주인공은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에서 37년째 ‘엘지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백원선(67·사진)·김형임씨(65) 부부다. 백씨는 당시 청년에게 받았던 봉투를 여전히 금고에 보관 중이다. 봉투 한 쪽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덕분에 살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6일 오후 백원선씨가 도움을 줬던 청년에게 받은 선물과 편지를 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한자리에서 오래 장사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려운 사정을 가진 이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배를 곯고 있다”라며 외상을 요청했다가 직장을 구한 뒤 돈을 갚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생필품을 챙겨 준 그 청년도 비슷했다. 슈퍼에서 작은 물건을 망설이다 사가는 모습을 부부가 평소 유심히 지켜본 덕분에 그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온정의 손길에는 제도적 지원도 한몫했다. 엘지슈퍼는 부천시 ‘온스토어’로 지정되어 있다. 온스토어는 2023년부터 부천시가 전개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 중 하나다. 사업을 신청한 약국, 슈퍼, 편의점 등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고 5만원 이내 생필품 등을 지원한다. 가게에 방문하는 시민 중 위기 상황이 의심되는 경우 가게가 우선 발굴해 도움을 주고, 연계된 동 행정복지센터가 추가 지원을 하는 형태다. 온스토어가 위기 이웃에게 생필품을 지원한 비용은 한 달 뒤 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돌려받는다. 엘지슈퍼의 사장 부부 역시 이 제도를 이용해 외상을 요청한 청년을 지원했다.

백원선씨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알게 된 뒤 온스토어를 신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건을 뉴스에서 접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슈퍼에서 뭔가 할 게 없을까 생각했어요. 마침 온스토어라는 좋은 제도가 있기에 지원했습니다.” 뉴스에 나온 청년 말고도 이 슈퍼에서만 100명 넘는 위기 이웃을 발굴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지금은 동네 위기 가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백씨는 위기 가구를 찾아내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을 강조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위기 가구 입장에서) 스스로 와서 도와달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하는 것 이상으로, (지역사회가) 위기 가구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권은혜 수습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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