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죽은 자의 땅은 얼마만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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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나는 노란 수선화를 옆좌석에 태우고 양평으로 간다.
친구가 잠든 나무 앞에 수선화를 심는 것이 나만의 행사가 돼버린 지 벌써 10년째다.
볕 좋은 양평이지만 친구 나무가 있는 소나무 숲은 늘 바람이 많다.
거기를 지나면서 마냥 미안하고 긴장되던 그 마음은 아마도 거기가 죽은 자의 땅이라 여겼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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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는 제대로 돌려줘야
좁은 국토에 묘지 이용 최소화
다양한 장례 방식 염두에 둬야
3월이 되면 나는 노란 수선화를 옆좌석에 태우고 양평으로 간다. 친구가 잠든 나무 앞에 수선화를 심는 것이 나만의 행사가 돼버린 지 벌써 10년째다. 친구에게 얘기를 나누듯이 일곱 송이 수선화에게 계속 무어라 쫑알댄다. 볕 좋은 양평이지만 친구 나무가 있는 소나무 숲은 늘 바람이 많다. 응달이어서 눈도 아직 수북이 쌓여 있다. 이렇듯 그리운 친구가 있는 것도 내겐 큰 행운이다.

어릴 때 나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산속에 핀 나리꽃을 발견하는 기쁨이나 산딸기를 따 먹던 행복도 그때 알았다. 그런데 좁은 산길에서 무덤을 만났을 때 가장 난감했다. 꼭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우는 것 같아 쉬이 발길도 옮길 수 없었던 묘한 정적의 시간, 그 서먹한 대면의 시간을 ‘인기척’이라는 시로 써 본 적 있다.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처럼/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인기척이다 …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 염두에 없이/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 그때 이미 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쓰는 그 땅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를 지나면서 마냥 미안하고 긴장되던 그 마음은 아마도 거기가 죽은 자의 땅이라 여겼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땅은 얼마만큼일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후의 자리에 대해 고민할 때도 있다.
종가인 시댁의 선산은 경주에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소위 명당자리라는 좋은 기운의 땅에 꽤 넓은 평지를 차지하고 있다. 햇살이 좋은 날 그곳에 가면 왜 그런 자리를 찾는지 몸으로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워낙 집안이 넓다 보니 선산도 거의 다 봉분으로 가득 차서, 부부가 아직 생존하면 해당 항렬이어도 갈 곳이 없다. 그러면 노부부의 심기는 사뭇 불편해져서 누울 자리에 대한 고민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게 된다. 주변 과수원을 더 사들이자는 의견도 있지만 만만찮은 조건들이 있는 모양이다. 산 자가 죽음 이후를 이토록 걱정할 일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떠나는 일은 가벼울수록 좋은 게 아닌가. 그래서 여태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소박하고 합리적인 방식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은 여건에서는 토지 이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다양한 장례 방식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이 땅을 두루 밟고 쓰다가, 죽은 후에는 이 땅을 제대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첫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요즘은 여러모로 좀 더 보충하고 싶어진다.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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