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키웠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김은형 기자 2025. 3. 2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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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김은형의 너도 늙는다</span>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제공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마지막편, 4회를 또래 아들 키우는 엄마로 보는 건 고통스럽다.

평범이라는 말뜻의 예시로 등장할 만한 4인 가족에서 자란 열세살 아들이 왜 살인자가 됐을까? 부모는 곱씹고 또 곱씹는다. 관심이 덜했던 건가? 아이를 데리고 이런저런 유소년 운동모임에 열심히 나갔어. 아이가 원해서 컴퓨터를 방에 들여놓아 줬지. 밤 1시까지 방에 불이 켜있으면 일찍 자라고 아이에게 말했어. 아이는 불을 껐지. 아이가 안전한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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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방에 들어온 딸과 대화한다. 범죄자의 집이라고 식구들을 괴롭히는 동네의 십대 후반 남자아이들이 딸이 아는 애들이라는 걸 알게 된 부모는 이사를 할까 말한다. 딸은 말한다. 떠날 수 없고 떠나서는 안된다고. 어차피 떠나도 이 사실을 누군가는 알아낼 거라고. 그럼 더 힘들어질 거라고. 그리고 제이미(살인범으로 체포된 남동생)도 우리 가족이라고.

엄마 아빠도 벅차하는 일상을 부여잡기 위해 애를 쓰는 딸을 보면서 제이미의 아빠는 아내에게 말한다. “어떻게 저런 애를 우리가 키웠지?” 아내는 대답한다. “제이미랑 똑같은 방법으로.”

이래서 딸을 낳아야 한다는 건가? 농담이다. 여튼 ‘최근 수렁(극우 유튜브)에서 건진 내 아들’을 비롯해 평범한 부모들에게 열패감을 주는 자식 교육론에 지친 나에게 이 대사는 드라마 전체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나쁜 게 비교하는 거라는데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7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온 애한테 누구 집 애는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왔더라, 이런 것만 비교가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공개수업 갔던 때가 생각난다. 교실 티브이로 반 아이들이 엄마에게 한마디씩 하는 걸 녹화해 보여줬다. 맛있는 밥 해줘서 고맙다, 같이 놀이공원 가자 등등의 귀여운 말들을 들으며 우리 애는 얼마나 귀여운 말을 할까 설렜는데 아이의 말은 이랬다. “엄마 숙제 좀 많이 시키지 마세요.”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아 진짜, 다른 부모들처럼 학원 뺑뺑이라도 돌리면 억울하지나 않지, 영어학원 하나, 그것도 학원은 숙제가 많아 집 앞 공부방에 다니던 애가 이렇게 말하니, 나는 교탁에 나가 그날 참석한 학부모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들었던 마음은 솔직하게 ‘왜 우리 집 애만 이럴까’였다. 제발 중간이라도 가라는 심정으로 모든 기준을 중간에 맞춰놨는데 하나같이 엉망이 됐다. 남의 집 애들은 잘도 해가는 학원 숙제를 전혀 안 해가서 다녔던 거의 모든 학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공부를 안 하면 친구들과 운동이라도 하던가, 책이라도 읽던가, 하다못해 영화라도 보기를 바라는 기대도 어김없이 깨진다. 새벽 3~4시까지 스마트폰을 하다가 학교는 늘 지각이다.

밤 1시에 내일 학교 가야 하니 이제 자라고 했을 때 제이미의 방에는 불이 꺼졌다. 우리 애 방은 알았다는 말만 나올 뿐 불도 안 꺼진다. 젠장, 이런 비교까지 하다니.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도 늘 생각을 한다. 나도 모르게 애한테 강압적으로 대한 건가? 그럼 부모에게 주눅 들거나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나? 애는 피하는 구석도 없이 일일이 맞받아친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기가 낫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다”며 해가 뜨면 날이 밝고, 해가 지면 날이 어두워진다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데 “잠을 자는 것과 감기가 낫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학교를 지각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밤을 새우는 것이다”라고 진지하게 맞받아치는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지구를 떠나 어디 행성을 개척해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든다.

똑같이 키웠는데 누군가는 살인범이 되고 누군가는 부모보다 의젓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또래 문화의 공격적 성향에 둔하거나 무심한 아이들도 있고 제이미처럼 예민한 아이도 있다.

예전 같으면 많은 형제와 한정된 자원을 나눠야 하는 상황은 아이들의 예민함이 깎여 나가고 공격에 대한 맷집이 키워질 여건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아이 하나하나에 대한 부모의 역할은 훨씬 더 커졌는데 아이의 성장 환경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들은 전보다 생업에 더 바빠졌다. 노동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 드라마 속 레드필 이론처럼 ‘지구는 네모다’ 식 주장을 펼치는 아이와 대화를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자식에 대한 결국의 책임은 어떻게든 부모로서 져야 할 수밖에 없겠지만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아이뿐 아니라 현대를 사는 부모가 내지르는 비명이기도 하다. 이 곤경을 이야기하지 않고 내 아이 수렁에서 건지는 법 같은 지도편달은 공허하게 들린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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