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올해 성장률 2%→1% 조정…26조조 삭감 속 국방비 증액
영국 정부가 자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재무부는 복지를 중심으로 정부 지출은 총 140억파운드(약 26조원) 줄이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국방 지출은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무부가 예상하는 재정 여유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노동당을 중심으로 복지 지출 삭감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복지 중심의 지출 삭감
26일(현지시간)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은 봄 경제 전망과 재정 계획 발표에서 “세상이 우리의 눈앞에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계 경제에 불확실한 요인들이 많다는 점을 짚었다.
노동당 정부는 재정 규칙을 조정하거나 세금을 더 걷기보다는 공공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정난에 대응하기로 했다. 우선 여러 차례 예고한 대로 2030년까지 정부 부처의 행정 비용을 15% 절감할 방침이다. 약 36억파운드를 아낄 수 있다고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자발적 퇴직제도 등을 통해 공무원 1만명이 감원될 예정이다.
복지 부문도 지출을 줄인다. 건강 관련 보편적 복지 수당을 새로 신청하는 경우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2030년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자립지원금(PIP) 수령 요건은 강화한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2030년까지 복지 부문에서 48억파운드가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연금부 추산에 따르면 복지 삭감으로 320만명이 경제적으로 연평균 1720파운드(325만원) 복지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성년자 5만명을 포함해 약 25만명이 상대적 빈곤층 기준 아래로 떨어지게 될 수 있다.
해외 원조도 이전 발표대로 국민총소득(GNI)의 0.3%로 삭감됐다. 2030년까지 26억파운드(5조원) 줄어든다.
국방 부문 지출은 확대하기로 했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등 대서양 동맹 균열이 확대된 것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유럽 각국은 안보 위기를 느껴 ‘재무장’을 준비 중이다. 국방비는 2025∼2026회계연도에 전년 대비 22억파운드 증가해 GDP의 2.36%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지난달 2027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2.5% 수준으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한 것과 맞물린다.
리브스 장관은 “방위 장비 예산의 10%를 드론, 인공지능(AI) 중심의 신기술에 투입하고 신기술이 전선에 더 빨리 투입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군함과 군 복지, 군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릴 예정”이라며 “영국이 ‘방위 산업의 초강대국’이 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두운 경제 전망…감축 효과는?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영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1% 성장하는 것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 10월 가을 예산 발표 당시 전망치(2%)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더타임스는 생산성 저하, 세금 인상에 따른 기업 심리 위축, 그리고 영국은행(BOE)의 예상보다 적은 금리 인하 등으로 전망이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OBR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1.9%로, 2027년은 1.5%에서 1.8%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이날 리브스 장관은 지출 조정을 통해 99억 파운드 규모의 재정을 확보했고, 정부의 조치가 없었다면 적자가 41억파운드에 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정 여유분은 2010년 이후 세 번째로 적은 양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짚었다.
이러한 감축에도 재정 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OBR은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20% 관세를 부과하면 영국 GDP가 1% 줄어들고 재무부가 목표로 하는 99억 파운드의 재정적 여유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리브스 장관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확률이 50% 가까이 된다고도 경고했다. 리처드 휴스 OBR 의장은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거나 글로벌 무역 갈등이 심화할 경우 그 여유분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OBR 관측에 따르면 공공부문의 순 부채는 2029~2030 회계연도까지 계속 증가해 GDP 대비 95%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수준(89%)보다도 6%포인트 높다. 매튜 모건 주피터 자산운용 분석가는 “이번 성명은 문제를 뒤로 잠시 미루는 (임시적) 조치에 불과하다”며 “영국 재정 상태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재정의 핵심 변수인 생산성이 최근 2년간 예상보다 크게 부진했기 때문이다.
○여야 비판 이어져
재정 계획 발표 이후 제1야당 보수당은 물론이고, 노동당 일각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는 노동당 정부가 재정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예산안 발표 때 리브스 장관이 유리천장을 깨부수겠다더니, 이제 지붕이 우리 머리 위로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당의 데비 에이브럼스 하원의원은 “복지 삭감은 심각한 빈곤과 보건 악화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이날 의사당이 있는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는 휠체어를 타거나 ‘복지가 아닌 전쟁을 끝내라’, ‘PIP 삭감 반대’ 등 팻말을 든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폴 데일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리브스는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재정 정책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며 “이번 성명은 단순한 ‘미세 조정’ 수준이고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암시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했다.
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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