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삼킨 아이 업고 응급실 5곳 ‘허탕’…지켜보던 의료재단 이사장의 결단은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2025. 3. 2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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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내달 소아청소년 24시간 진료
서울 구로·성북서 국내 첫 운영
공보의 때 폐렴·항암 투병 환아
3일간 돌보며 소아과의사 결심
수천만원 적자 예상에도 도전
성공해 사회 변화 이끌고 싶어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사진=우리아이들의료재단]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2024년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평소처럼 오전 9시에 진료를 시작했는데, 그날따라 대기실 풍경이 가슴에 박혔다. 밤새 아팠던 아이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제를 삼켰다는 한 아이는 더 이상 울 힘도 없다는 듯 기진맥진한 채 “배 아파”를 연발했다. 넋이 빠진 부모 등에는 식은땀을 흘린 흔적이 역력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밤새 응급실 4~5군데를 돌았는데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아들 둘을 둔 그 역시 겪었던 일이다. 의사 아빠도 아이가 아플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날 이후 정 이사장은 매일 아침 의사가 된 이유, 여러 전공 중에서도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우리아이들병원이 손해를 무릅쓰고 24시간 진료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다.

우리아이들병원이 다음달 1일부터 24시간 소아청소년 진료를 시작한다.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소아청소년 병원이 24시간 진료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 구로구와 성북구 병원에서 모두 24시간 진료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아이가 아플 때는 도와줄 사람이 절실한 법. 부모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친구 클리닉’이라고 지었다.

정 이사장은 “직원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매일 밤 70명 정도의 환자가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럼에도 매달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나와서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한국 의료계에 꼭 필요한 일”이라며 밀어붙였다. 심야시간 진료를 위해 병원마다 의사 3~4명과 간호사, 방사선사 등 30명씩을 추가로 채용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건 ‘소아긴급센터’ 개념”이라며 “소아응급의 약 60%가 경증·비응급 환자인데 우리가 분담하면 훨씬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를 묻자 정 이사장은 “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아픈 아이들은 갈 곳이 없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은 15년 전 그의 군 시절로 돌아간다. 정 이사장은 2010년 강원도 철원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인근에 군부대와 군인 가족이 많다보니 어린 환자도 많았다. 동네에서 친절한 의사로 유명했던 정 이사장은 하루에 100명도 넘는 환자를 진료해야 했다.

그러던 중 한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찾아왔다. 항암 치료를 받는 아이에게 갑자기 흡인성 폐렴이 온 것이다. 부모는 이혼한 지 오래, 홀로 손주를 돌보던 할아버지는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을 다 돌아도 입원시켜주는 곳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정 이사장은 자신이 일하던 병원 측에 부탁해 1인실 자리를 만들고 아이를 돌봤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사흘이었다. 정 이사장은 “세계 최고라고 칭송하는 우리 의료시스템이 고작 그 3일조차 아픈 아이를 품어줄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때 정 이사장은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원래 모교인 고려대로 돌아가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정 이사장은 “지도교수님이 만류하셨고, 주변에서는 다들 6개월 안에 망할 거라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우리아이들병원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2013년 구로에 본원을 열었고 2018년에는 성북에도 개원했다. 초창기 40명이던 직원은 50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까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국 유일의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이었다. 지금은 대전코젤병원(대전 유성구)과 코젤병원(대전 유성구), 서울아동병원(경남 거제시) 3곳이 추가 지정돼 총 5곳이 됐다.

정 이사장은 “우리아이들병원이 다시 한번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24시간 진료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줘야 다른 병원에서도 시도하고 정부에서도 후속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이유다. 24시간 진료를 결정한 우리아이들병원에 아직 별도의 정부 지원은 없다.

정 이사장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수가 조정을 말해야 하는데, 그것만 해도 한참 걸린다. 지금 아픈 아이들이 많은데 기다릴 시간이 없어 먼저 시작한다. 한밤중에 아픈 아이를 안고 혼비백산해 뛰는 부모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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