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빅테크에 AI 도전장 내민 이해진, "구글 맞서 25년 견뎌... 위기, 기회로 만들겠다"
8년 만에 이사회 의장 복귀
“1~2개 AI만 쓰는 건 슬퍼,
인터넷 다양성 기여가 사명”
빅테크 맞서 'AI 주권' 의지
"전 서비스에 AI 접목 계획"
전 세계가 한두 개 인공지능(AI)만 쓰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이사회 의장으로 8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26일 경기 성남시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막대한 자본력을 지닌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휘어잡은 AI 시장에서 다양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 '토종' 네이버의 AI 경쟁력을 끌어올려 국내에서 빅테크와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창업자는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그런 그가 이례적으로 취재진 앞에 서서 'AI 주권(소버린∙sovereign)'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끄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이 의장이 전면 등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네이버는 이날 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이 창업자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 의장은 AI 사업 계획과 관련해 "네이버의 새로운 움직임이 더 많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구글 등 빅테크에 맞선 25년"
네이버는 2024년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최초로 매출 10조 원을 돌파했다. 2018년 매출 5조 원을 넘긴 이후 6년 만이다. 본업인 서치 플랫폼(검색)뿐만 아니라 커머스∙핀테크∙클라우드 등 모든 부문이 고르게 성장한 결과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인 AI 분야는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2023년 공개한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는 성능 면에서 오픈AI '챗GPT', 구글 '제미나이' 등에 밀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발(發) 딥시크 쇼크 이후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네이버 내부에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날 주총에서도 "주변에 네이버 AI를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등 주주들의 날 선 질문이 쏟아졌다.
이 의장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진 네이버의 AI 전략을 묻는 질문에 "구글 등 빅테크에 맞서 25년 동안 견뎌온 회사"라며 "모바일 시대에서도 성과를 보였듯이 지금 상황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 PC 기반의 포털 서비스로 급성장한 네이버가 2010년대 들어 모바일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처럼 AI 또한 후발 주자지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인터넷 다양성에 기여하는 게 네이버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의 이날 발언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가 2년 만에 방한해 국내 기업 CEO들과 만나 AI 협력을 논의하는 와중에 나왔다. 국내에서 AI 영토를 점차 넓혀가는 빅테크에 맞서 이 의장이 '주권 AI(소버린 AI)'를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는 2024년 5월 'AI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극소수 AI가 현재를 지배하면 과거 역사, 문화에 대한 인식이 해당 AI의 답으로만 이뤄지고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각 지역의 문화적, 환경적 맥락을 이해하는 다양한 AI 모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K특화' AI 개발로 승부수
다만 현실적으로 거대 AI 모델 경쟁에서 네이버가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글로벌 빅테크를 제치긴 쉽지 않다. 이에 정면승부를 하기보다는 한국 시장에 특화한 AI 서비스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게 이 의장의 복안이다. 그는 지금까지 네이버의 성공 비결로 "더 큰 시장과 자본력을 가진 기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싸워온 투지"를 꼽기도 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쇼핑 등 서비스 영역에 접목하는 '온 서비스 AI'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27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AI 브리핑'이 대표적이다. 이는 키워드 검색 시 AI가 요약한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서비스다. 네티즌들이 작성한 블로그∙카페 게시글 등을 바탕으로 생활 밀착형 결과물을 제공하는 게 강점이다. 가령 '교토 여행'을 검색하면 구글의 'AI 오버뷰'는 결과물을 내놓지 않지만네이버 AI 브리핑은 블로그 등을 토대로 맛집, 인기 호텔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날 네이버 대표로 재선임된 최수연 대표는 "모든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AI 에이전트(비서)를 도입해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와 상황에 최적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빠르면 연내 출시를 목표하고 있다"고 했다.
성남=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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