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끝에 온 인생 리바운드…“그저 농구할 수 있어 행복해”

일 프로농구 B3리그 쇼난
정희현

유망주였지만 프로 도전엔 실패
하승진·전태풍 ‘턴오버 프로젝트’
일본팀 진출 계기돼 성공적 데뷔
“이제 농구는 부담이 아닌 동반자”

정희현(24·203㎝)은 일본 프로농구 3부리그인 B3리그의 쇼난 소속 아시아쿼터 선수다. 두 차례 KBL 드래프트 실패 이후 일본에 진출했다.

정희현은 유소년기부터 큰 키와 운동 신경으로 주목받은 유망주였다. 휘문고 센터로 맹활약하고 한양대에 진학해 프로 선수의 꿈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발목을 다쳤고, 지독한 슬럼프가 같이 찾아왔다. 대학 1학년 1학기만을 마치고 정희현은 돌연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맨땅에 헤딩’ 같은 도전이었다. 지원자 중 최장신이라는 장점에도 정희현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정희현은 지난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일종의 도피였다”고 첫 드래프트를 회상했다. 그는 “같은 부위(발목)를 3~4번 다친 데다 피로 골절까지 심해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며 “계단도 못 오를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주야장천 운동을 하니 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희현은 “앞으로 선수 생활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바엔 드래프트에 도전해보고 깔끔하게 포기하자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정희현은 이후 일반인 신분으로 도전한 두 번째 드래프트에서 다시 낙방한 뒤 입대를 택했다. 농구를 다시 할 생각은 없었다. 군대에서도 운동은 축구만 했고 다른 진로를 찾기 위해 마케팅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턴오버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며 “딱 네가 들어가야 할 프로그램 아니냐”고 설득했다.

<턴오버 프로젝트>는 전직 농구선수 하승진과 전태풍(아래 사진)이 프로 진출에 실패한 젊은 선수들을 모아 다시 한번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웹예능이다. 정희현은 군 전역 후 곧바로 <턴오버 프로젝트>에 빅맨으로 합류했다.

그렇게 세 번째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쇼난으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가 왔다. 경기 기록이 전혀 없는 그에게는 <턴오버 프로젝트> 영상이 포트폴리오였다. 쇼난은 그 영상을 보고 제의해왔고 정희현은 합격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일본의 ‘아시아쿼터 빅맨’으로서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를 밟았다. 12월에는 18득점을 올리며 득점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선수 생활을 외국에서 시작하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국과는 다른 농구 스타일을 극복해야 했고, 언어 공부도 필요했다. 정희현은 “농구를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집에 오면 인터넷을 뒤지며 전술 공부를 하고 영어 통역사와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언어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프로농구 B3리그 쇼난에서 아시아쿼터 선수로 뛰고 있는 정희현(오른쪽)이 경기 중 코트를 바라보고 있다. 본인 제공

농구는 그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정희현은 “몸도 많이 아프고 드래프트에서 여러 번 떨어지며 많이 힘들었다”며 “후회하고 자책하고 나를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상황들이 나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농구 하며 생긴 수많은 상처는 단단한 마디가 됐다. 정희현은 “예전에는 농구가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라며 “이제는 농구 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고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1분밖에 못 뛰고 득점을 못해도 ‘엊그제까지 군대에서 삽질하고 있던 내가 이렇게 관중 앞에서 농구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B3리그 소속 팀은 플레이오프를 통해 2부인 B2리그로 승격될 수 있다. 정희현의 시즌 목표는 당연히 팀의 승격이다.

좀 더 먼 미래를 물었다. 정희현은 “실패한 경험도 많고 그 실패에서 회복한 경험도 많다. 이걸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꿈이 있다”고 답했다. KBL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최고의 무대는 KBL이라고 생각한다”며 “타지에서 농구를 하니 외로울 때가 있어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희현은 “지금껏 농구 인생에 부침이 많았다보니 앞으로는 잔잔하게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스타가 되기보다 그냥 행복하게 농구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