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 산책] 색채의 교향곡 칸딘스키 `구성 VII`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추상표현주의'를 연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다. 형상을 구분할 수 없는 추상화를 최초로 그린 화가다. 네덜란드의 피터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화의 두 거두로 꼽힌다.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경쾌하고 자유로우며 서정적인 반면(따뜻한 추상의 대가),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조직적이고 엄밀하며 논리적(차가운 추상의 대가)이다.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대전 이후, 1940년대에서 50년대 사이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조다. 그전까지 미술이 유럽 중심이었다면 추상표현주의가 전개되면서 미국이 서양 미술 사상 최초로 중심이 됐다.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는 미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알프레드 바가 칸딘스키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형태는 추상적이지만 표현주의의 사조를 이어간다'라는 뜻이다. 표현주의는 모네나 고흐 같은 인상파의 시대가 지나면서 독일에서 전개된 미술 사조로, 내면에 잠재된 인간의 감정과 표현 욕구를 작품에 담으려 했다. 뭉크나 에곤 실레 등이 대표적 작가다.
칸딘스키는 눈에 비친 대상을 모방하기 보다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다. 색채와 형태, 선, 질감 등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를 사용해 생소한 그림을 그렸다.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를 마치 악보를 구성하는 음표인 양 조화롭게 결합하면 오케스트라와 같은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구성 VII'는 칸딘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색채와 소리의 감각이 어울려 있다. 소리를 듣고 머리속에서 보이는 색채를 표현한 것이다. 원색의 색조를 조절해 오렌지, 바이올렛, 초록, 청록 색 등으로 변화시켰으며, 색채의 혼합으로 멋진 효과를 만들어냈다. 색채의 동시 대비의 법칙에 따라 빨간색이 다양한 초록색에 인접해 있으며, 오렌지색은 강렬한 파란색 옆에 있다. 흰색 밑칠 위에 불투명 물감과 투명 물감을 칠했고, 폭포처럼 자국이 그대로 보이도록 남겼다. 표면에 최초 형태를 그린 다음 특정한 부위에 색을 칠하고, 미세한 붓놀림으로 짙은 윤곽을 만들어냈다.
구상적인 부분도 남아 있다. 아래쪽에 보면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농민 의상을 입은 남녀가 선착장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감상자의 시선을 이곳에서 시작해 나머지 부분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네개의 노를 가진 배 두척도 선착장 옆에 정박해 있다. 형태와 사물과 형체들은 소용돌이치며 억제되지 않은 움직임에 휘말려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림의 구도는 대각선으로 인해 삼등분돼 보이는데 물길이 캔버스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중심에서는 원형의 곡선 형태가 소용돌이를 만든다. 왼쪽 맨위는 전나무의 실루엣이 산맥 가까이 있다. 어두운 사다리 같은 물체들은 물과 산과 하늘을 연결하는 모티브들로 협곡의 높이를 표현하는데 사용됐다. 칸딘스키는 약 30여년간 '구성' 시리즈를 총 10점 제작했다.
러시아 민속예술에서 출발한 칸딘스키는 신지학(神智學·신비주의적 사상 철학 체계)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렸다. 선구적인 추상과 추상화된 회화, 석판화와 목판화를 통해 영성과 신비주의를 탐구했다.
칸딘스키는 러시아 그레코프 오데사 미술학교 졸업 후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됐다. 1896년 독일 뮌헨의 미술학교에 입학한 후 안톤 아즈베, 프란츠 폰 슈투크로부터 미술 배웠다. 슈투크는 독일의 영향력 있는 상징주의자이자 아르 누보 양식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건축가다. 뮌헨에서 그는 팔랑크스(Phalanx)라는 작가 모임의 일원이 됐다.
칸딘스키는 1906년부터 1908년까지 유럽을 여행하며 강렬한 색채 대비와 재현적 요소를 왜곡하는 야수주의와 표현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러시아 전통 민속 예술과 동화, 모네의 회화 작품도 초기 그에게 영향을 줬다. 1896년 모스크바 전시회에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을 본 칸딘스키는 끊어진 붓놀림과 눈부신 색채 때문에 그림 앞에서 얼어붙였다. "나는 그 그림이 기억에서 지울 수 없도록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라고 당혹스러웠다"는 칸딘스키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슷한 시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공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겸 화가로 표현주의 음악의 거장인 아놀드 쇤베르크와 도 친구가 됐다. 칸딘스키는 아마추어 음악가라고 할 정도로 피아노와 첼로를 잘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과 색채가 알아볼 수 있는 주제를 묘사하지 않고도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1909년 가입한 신지학협회는 그의 작품에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칸딘스키가 보기엔 인상파를 포함한 19세기 미술은 "자연의 작은 조각이나 분홍 옷을 입은 부인의 초상화처럼 모두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쉬운 길을 걸었다. 현대 미술은 이런 사소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정신적 가치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각각의 형식이 외적으로는 다르게 보일지라도 동일한 목적에 종사한다. 그건 '인간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정화하는' 것이었다. 물질주의가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추상으로 전환함으로써 그 목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간다고 여겼다.
칸딘스키에게 회화는 색채와 선이 심포니를 이루는 음악과 같은 것이었다. 회화 이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1912년 출간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회화를 인상, 즉흥, 그리고 구성 세 종류로 정의했다. 인상은 외적인 현실에 기초하는 반면 즉흥과 구성은 무의식에서 기인한다. 1926년 펴낸 '점·선·면'에서도 현대 미술의 필연적인 추상화에 대한 주장을 전개했다.
칸딘스키와 러시아의 야수파 말레비치는 현대 추상미술 발전에서 중요한 위상 차지한다. 칸딘스키의 추상이 현실 대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말레비치의 추상은 현실 대상을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푸른 산'은 칸딘스키 추상회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즉흥 협곡'은 1909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에서 그린 35작의 '즉흥' 연작 중 하나다. '즉흥 연작'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즉흥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며,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사물을 보여준다. 완전한 추상은 아니며, 약간의 구성이 포함된다.
'즉흥(Improvisation) 28 (Second Version)'(1912)은 추상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표현적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의 조합으로 유명하다. 캔버스를 지배하는 중앙의 검은색 형태가 특징이며, 그 주위를 다채로운 색채와 활기찬 붓터치가 둘러싸고 있다. 예술이 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칸딘스키의 믿음과 색과 형태의 표현력에 대한 그의 헌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랑-빨강-청색(Yellow-Red-Blue)'(1925) 역시 칸딘스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원과 직사각형의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과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의 대담한 색상 블록이 특징이다.
칸딘스키는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갔다가 1921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 회화와 이론을 가르쳤다. 그래서 작품에선 건축적 구성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14년밖에 존속하지 않은 바우하우스는 1919년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가 세운 학교다. 초기에는 공예 학교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후 예술과 기술을 통일시키면서 건축과 디자인, 색채와 선에 대한 정의 등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정신적 교감을 중시했던 칸딘스키의 작품과 예술 이론들은 현대미술과 디자인, 사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에게 영향을 주며 현대 추상 표현주의의 초석이 됐다.
그는 "삼각형의 꼭지점과 원의 만남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의 손가락에 닿는 신의 손가락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미술작품을 창조하는 것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미술가는 자연의 악기이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고 했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색채와 선으로 이룬 심포니였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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