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법 개정에 드리운 머스크의 그림자 [마켓톡톡]
델라웨어주 상원 통과한
회사법 개정안 주요 내용
지배주주 범위 좁히고
소액주주 정보도 제한해
머스크 변호인 법안 초안 작성
통과되면 최소 34개 판결 기각
지난해 머스크 패소 사건 뒤집혀
일론 머스크의 뒤끝 때문에 델라웨어주州의 모범적인 회사법이 바뀔 위기에 처한 걸까. 델라웨어주 상원은 지난 3월 15일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은 SB21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주 하원의 문턱을 넘으면 법원이 지난 40년간 확정한 판결 중 최소 34개 판결이 기각될 위험에 놓인다. 문제는 이같은 회사법 개정 움직임의 뒤편에 머스크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 델라웨어주州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일론 머스크의 560억 달러어치 주식 성과급이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자신이 지배주주로 있는 회사 3곳의 본사 소재지를 델라웨어주에서 텍사스주와 네바다주로 이전했다.
그해 1월 델라웨어주 회사법 전문 상사법원이 테슬라 소액주주 리처드 토네티가 "일론 머스크에게 560억 달러 규모의 주식 성과급을 지급한 테슬라 이사회의 2018년 승인은 무효"라면서 이사회와 머스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테슬라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주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머스크는 판결 즉시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뒤끝 가득한 말을 남겼다. "절대 당신의 회사를 델라웨어주에서 창업하지 말라." 실제로 머스크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테슬라‧뉴럴링크‧보링컴퍼니의 서류상 본사 소재지를 델라웨어주에서 텍사스주와 네바다주로 이전했다. 텍사스는 최근 회사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법원을 설립하는 등 법인 본사를 모집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주다.
그 때문인지 델라웨어주 상원은 지난 3월 15일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은 SB21 법안을 통과시켜 하원으로 보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세가지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다.
첫째, 지배주주를 회사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했거나 전체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한 사내 이사로 제한해 해석한다. 둘째, 소액주주가 회사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좁혀서 회사의 주요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 원고 변호사의 소송 승리 수당을 제한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일론 머스크의 지난해 패소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일례로, 머스크의 테슬라 지분율은 13%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 등 대형 경제매체들도 SB21을 '회사들이 델라웨어주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으로 규정해 중요하게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WSJ은 지난 1월 31일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가 델라웨어를 떠나 텍사스 등으로 탈출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으로 게재했다. 메타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3월 26일 '블랙스톤과 KKR 등 주요 미국 사모펀드가 델라웨어주 회사법 개정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들이 있다. 얼마나 많은 기업이 델라웨어주를 탈출했기에 주 상원이 이례적으로 이 법안을 꺼내든 걸까. UCLA로스쿨의 스티븐 베인브리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Dexit 드라이브: 델라웨어주의 지배력이 위협에 처했을까'라는 논문에서 "델라웨어주를 떠나 다른 주로 본사를 이전한 경우는 2022년 5건, 2023년 9건, 2024년에는 2건에 불과하다(4건은 계류 중)"며 "델라웨어주를 탈출하는 기업의 수는 여전히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다. 과장된 위기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이 법안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이다. SB21이 확정되면 무효가 되는 판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앞서 언급한 머스크의 2018년 주식 성과급 무효 판결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 소송에서 머스크와 테슬라를 변호한 로펌 '리처드, 레이튼 & 핑거(RLF)' 소속 변호사가 SB21 초안을 작성한 사실이 밝혀졌다. 로펌 RLF는 지난 2월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해당 변호사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지난 40년간 나왔던 델라웨어주 확정 판결 34개를 뒤집어도 될 만큼 회사법 개정이 중요한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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