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탈선’ ‘싱크홀’ ‘화재’…시민 안전 붕괴된 최악의 일주일
투잡 뛰던 오토바이 운전자 싱크홀 사고로 사망…‘지반 붕괴 우려’ 민원만 2차례
전문가 “사건 전달 중심 객관적 보도 이뤄져야…과몰입 시청도 자제”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잇단 악재(惡材)로 대한민국이 혼란에 빠졌다.
22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시작된 화마는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번져 26일 현재도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23일엔 지하철 2호선 열차 탈선 사고로 서울시민의 발이 묶였다. 25일에는 서울 강동구에서 땅 꺼짐(싱크홀)이 발생해 도로를 지나가던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모든 사건 사고가 일주일도 채 안 된 시간에 발생했다.
일각에선 위 세 가지 사고 모두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기에 인재로 봐야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었기에 국가 행정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23일 오전 7시5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출고된 열차가 탈선해 2호선 외선 홍대입구역부터 서울대입구역 구간의 열차 운행이 9시간 넘게 전면 중지됐다. 공사는 정지신호를 위반해 탈선 사고를 낸 기관사 A씨를 직위해제했다. 기관사 등 3000여 명을 관리하는 승무본부장 B씨 역시 25일 직위해제 됐다.
이번 사고로 서울교통공사는 책임자 문책에 나서는 등 진상 규명에 나섰지만, 사전에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 중인 C씨는 "기관사가 직위해제됐지만, 내부에선 직원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점이 있다"며 "교통공사에서 이번과 같은 상황을 미리 대비해 운행 안전 교육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가장 역할 하던 성실한 아들, 싸늘한 주검으로
24일엔 서울 강동구 도로 한복판에서 직경 20m가량 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이곳을 지나던 30대 오토바이 운전자 D씨가 사고 발생 17시간 만인 25일 오전에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물과 토사가 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근 공사장 중장비가 엉켜 있어서 구조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D씨는 운영하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3년 전부터 부업으로 배달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인들은 D씨가 20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업을 물려받았다고도 전했다.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며 가장 역할을 한 D씨는 사고 당일에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퇴근한 뒤 저녁 배달 일을 위해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지점이 지하철 공사현장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9호선 공사와 싱크홀의 연관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지하수를 빼면 동공 현상이 일어난다"며 "원래 지하수가 있으면 땅이 주저앉지 않는데, 물이 빠지니까 도로 같이 계속 하중을 받는 곳에선 싱크홀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밑 상수도관이 먼저 새면서 지반이 약화되고 흙이 무거워져 터널이 무너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사고 직전 터널에서는 지하철 공사 중이던 5∼6명의 인부가 천장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현장 주변에서는 세종포천고속도로 지하구간의 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지하공사가 잇따르면서 이에 따른 충격이 가해지거나 물길이 바뀌면서 지반이 약화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터널 자체가 부실 설계됐을 가능성도 있다.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하철 공사에 참여했던 관계자가 '지반 붕괴'를 우려하는 민원을 서울시에 두 차례나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터널이 하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설계됐는지 지하철 9호선 공사의 영향, 고속도로 건설 영향 등을 다각도로 따져볼 예정"이라고 했다.
'괴물 산불' 피해 면적만 축구장 1만 개…경북 '아비규환'
22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시작해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 포항시까지 확산한 '괴물 산불'도 시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26일까지 발생한 사망자는 안동시(2명), 청송군(3명), 영양군(4명), 영덕군(6명) 등 4곳에서 모두 15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들은 도로, 주택 마당 등에서 발견됐다.
영덕군 사망자 일부는 실버타운 입소자로 전날 밤 9시 대피 도중 산불확산으로 타고 있던 차량이 폭발하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양군 사망자 4명 가운데 50·60대 남녀 3명은 일가족으로 함께 차를 타고 대피하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오후엔 의성 산불 현장에서 진화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추가로 발생했다. 산림청이 보유한 진화헬기는 모두 50대이지만, 이 중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어 운용이 멈췄다. 운용 중인 30여 대 마저도 일시 정비 등으로 진화 전력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괴물 산불이 추가로 확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치권은 사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추가적인 산불이 생기면 산불 진화를 위한 자원 등이 부족할 수 있다. 산불 방지에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산불의 주요 원인인 불법 소각 행위에 대한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피해복구, 재발방지를 위해 국가재난극복 여야정 협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도 "민주당은 이번 산불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후 대처 방안 마련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화답했다.
"정부 예산, 복지 예산보다 '재난 예산' 규모 작아"
전문가들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부재와 같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적 재난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문제라며, 이같은 사건 사고가 계속 발생할 경우 시민들에게 큰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정치권에서 재난 이슈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예산을 마련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이 화재, 싱크홀과 같은 사건에 대해 무신경한 태도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은 문제지만, 과몰입하는 것 역시 잘못된 자세"라며 "언론에서도 이같은 소식을 보도할 때,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사건 전달 중심의 객관적 보도를 해야 한다. 지나치게 생생한 보도를 할 경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까지 불안감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 예산안을 보면 복지 예산에 비해 재난 예산 규모가 작다.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행정기관에서 대응을 잘하면 재난의 규모와 피해를 줄일 수 있으므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의 생활과 심리를 안정시키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번과 같은 재난이 발생할 때, 심리적 동요가 커지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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