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자산입니다”…‘지식 재무장’과 ‘추억배당금’으로 배우는 행복한 은퇴 [예은이]
금융 못지 않은 ‘비금융’ 영역 대비해야
일본 시니어의 삶을 통해 엿본 은퇴 후 삶 대비 방법
‘지식 재무장’과 ‘추억 배당금’ 강조
[헤럴드경제=정호원 기자]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OECD금융교육주간을 맞아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에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일본 시니어의 삶을 통해 보는 행복한 은퇴’ 강연에서 신미화(66)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 경학학과 교수는 이 질문을 화두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연을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신 교수는 실제 일본 고령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비금융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특히 ‘지식 재무장’과 ‘추억배당금’이라는 두 키워드는 강연의 핵심 화두였다.
이날 강연장에는 약 30여 명의 시니어 청중이 모여 2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강연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는 청중들이 수업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는 모습 속에서 현장의 몰입도가 전해졌다.
신 교수가 ‘행복한 노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불과 3년 전부터였다. 신 교수는 원래 글로벌 기업의 경영혁신을 주제로 연구해 왔지만, 일본 전역에서 시니어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 지역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연구 분야를 새롭게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신 교수는 일본에서 트렌드로 떠오르는 책·문화부터 일본 시니어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강연을 이끌어나갔다.
신 교수는 행복한 노후의 제1조건으로 ‘일’을 꼽았다. 신 교수는 “은퇴 이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있는가’, ‘갈 곳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삶의 활력이 생긴다”면서 “일본에서는 100세 이상 노인 중 현역에서 일하는 노인도 5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소개했다.
일본 노인이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법적 정년인 65세를 폐지한 기업 수는 전체의 3.9%에 해당하는 9247개사에 달한다. 또 70세까지는 사업자가 노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고용 노력 의무’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 퇴직자들이 준비하는 인기 자격증으로는 공인중개사, 재무설계사, 요양복지사, 케어 매니저가 꼽힌다. 특히 퇴직자의 연금 운용을 지원하는 재무설계사와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을 돕는 요양복지사, 케어매니저 등은 모두 ‘노인’과 밀접한 분야로, 고령자 본인의 경험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는 고령층 일자리 시장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과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열쇠로 ‘지식 재무장’을 강조했다. 그는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40~50년 전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던 시기, 모바일 활용법을 익히지 못한 많은 시니어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지식재무장’의 실제 사례로 세계 최고령 앱 개자인 와카미야 마사코(89)씨를 소개했다. 마사코씨는 80세에 처음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81세에 고령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을 직접 개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해 정년을 앞둔 58세에 처음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후 그는 애플 CEO와의 만남, 9권 넘는 저서 출간, 전국 순회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 교수는 일본 시니어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베스트셀러 ‘역전하는 법’(원제:DIE WITH ZERO)을 소개하며 “경험에 투자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질적 소유물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경험은 ‘추억 배당금’으로 남아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며 “젊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결국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노인의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덕질’을 언급했다. 일본 고령자들 사이에서는 아이돌, 스포츠 스타, 엔카 가수 등을 응원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활발하다. 예컨대 가고시마현 프로 배구팀 관중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30%를 넘는다. 고령자 팬덤 소비 시장은 82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같은 덕질 문화는 일본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야노경제연구소가 2023년 발표한 일본의 ‘덕질 시장’ 규모는 약 7조8000억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고령자의 문화 소비가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 교수는 “고령자들이 자신만의 취미와 덕질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고, 가족·세대 간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문화적 소비가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죽기 전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진심 어린 애정을 표현하며 살아가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기대가 아닌 ‘나의 행복’을 기준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연이 끝난 직후 강연자를 향한 참석자들의 박수갈채가 한동안 이어졌다. 참석한 김모씨(66)는 “은퇴 이후 노후 생활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는데,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듣고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면서 “특히 ‘덕질’이라는 개념이 기억에 남아 앞으로 남은 인생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며 보내는 것이 또 하나의 풍요로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열(83)씨는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지만 정작 일본 노인의 삶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웠는데, 직접 일본에서 공부하며 현장을 취재해 온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 영어 배우는 것을 즐겨 센터에서 영어강좌를 꾸준히 수강 중인데, 오늘 소개된 ‘지식재무장’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 은퇴한 뒤 복지관에서 ‘부자인문학’을 주제로 강사로 활동한다는 신동익(60)씨는 “은퇴 이후에도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단순한 수익 때문이 아니라,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과 보람 때문”이라면서 “가르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오늘 강연에서도 ‘계속 일하는 것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유흥수 영등포50플러스센터 금융교육지원단장은 “일본의 고령화는 곧 한국 모습이 될 수 있다”면서 “일본에서 직접 연구한 교수님이 생생한 현장의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해줘서 청중들에게도 많은 울림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강연은 OECD 금융교육주간을 맞아 영등포50플러스센터와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가 공동추진했으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주관 아래 서울 시민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강의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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