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의대 편입 확대는 이공계 죽이기…화해·공존의 길 찾아야
한덕수 국무총리가 업무 복귀 후에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이번 주를 의대 교육 정상화로 가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를 넘기면 의대 휴학 사태가 재앙적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절박한 지적이다.
내년 의대생의 수가 2만5000명을 넘게 되는 것도 심각하지만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신규 의사의 배출이 중단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골든타임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온전하게 정부에 달려있다. 정부·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작정 강요하고 겁박한다고 해결될 일이 절대 아니다.
정부의 폭력적인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서 학교를 떠나버린 의대생 1만8000여 명의 조속한 복귀는 국민적 요청이다. 병원을 떠나버린 전공의 1만 명도 역시 하루빨리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단순히 의학 교육과 의료 현장의 정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젊은 의대생·전공의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물론 그 책임은 의료 현안에 대한 돌팔이 수준의 오진(誤診)과 엉터리 처방(處方)을 내놓았던 정부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 의대 편입 확대는 이공계 죽이기
상황이 도무지 만만치 않다. 교육부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의 3058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휴학을 고집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이주호 장관에게 3058명 방안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총장·학장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의대생을 향한 집단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교육부가 '백기투항' 했으니 무책임한 선배들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학교로 돌아와야 한다고 학생들을 질타한다. 마치 국민을 괴롭히는 의료 공백이 의대생 때문인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대학이 학칙에 따른 제적·유급도 모자라 이제는 편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의대의 편입 확대는 의대를 살리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이공계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대 증원으로 자연대·공대의 재학생이 적지 않게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엎친 데 덮친다고 의대 편입의 문까지 활짝 열어버리면 이공계 재학생의 이탈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의예과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의대의 편입은 이공계 저학년 재학생을 겨녕하게 된다. 의대를 이공계 교육을 무너뜨리는 블랙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집단 휴학'이라는 아리송한 이유로 학생들의 휴학원을 거부하고 '제적 예정 통보서'까지 발송하는 대학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칫하면 대학과 의대생이 낯 뜨거운 송사(訟事)를 벌이게 될 수도 있다.
교육부 장관이 작년에 주장하던 '동맹휴학'과 마찬가지로 총장·학장들이 들먹이는 '집단휴학'도 법령이나 학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임의적 용어일 뿐이다. 정부의 엉터리 정책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던 대학이 갑자기 학생들에게 '학칙 준수'를 요구하는 것도 황당하다. 자칫하면 총장·학장이 교육부 장관의 대리인이나 아바타로 변해버렸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학이 등록한 학생의 수를 두고 학생들과 치열한 기(氣)싸움을 하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합격증을 받기 위해 등록을 했지만 수강은 거부하고 있는 2025학번 학생을 이용해서 통계를 부풀리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등록했다고 과연 의대의 정상적인 강의가 가능할 것인지는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정부의 엉터리 의료 개혁에 반발해서 휴학을 선택했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명예롭게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3월 중에 복귀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4500명이 아니라 5058명을 선발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폭언은 명백한 겁박이고 "휴학은 의대생에게 권리가 아니다"라는 망언을 쏟아내던 작년의 발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의대의 모집인원이 교육부가 제멋대로 주무르는 것일 수는 없다. 더욱이 의대 재학생이 복학을 거부한다고 의대 모집인원을 최대한 늘이겠다는 주장은 마포에서 빰맞고 종로에서 화를 내는 격이다.
● 의대생·전공의의 악마화도 경계해야
의대생과 전공의가 적극적으로 반발했던 지난 1년 동안 정작 의대와 의료 현장을 책임지고 있던 전문의들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오히려 교수·봉직의·개원의 등으로 갈라져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느라 바빴을 뿐이다.
의사가 자신의 몫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협조를 얻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을 대신해서 정부에 쓴소리를 해주는 전문가를 우군(友軍)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의대생·전공의가 정부의 엉터리 의료 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대생·전공의가 아니었더라면 교육부의 의대 증원과 보건복지부의 의료 개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젊은 의대생·전공의의 목소리가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동료 학생들의 선택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동료나 선배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학을 선택한 학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올해 입학한 2025학번은 후배들이 올라올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비난을 받기고 한다. 의대 교수에 대해서 거친 언어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정부의 대화 요구를 무작정 거부하는 전공의의 언행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의대생·전공의가 활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의대생·전공의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악마화하는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대생에게 자신의 독자적인 자유의사를 따르라는 지적이나 설득력 있는 대안도 내놓지 않고 1년 동안 '탕핑'(躺平)했을 뿐이라는 지적은 의대생의 자존심에 상처 내는 지극히 모욕적인 것이다.
물론 의대생이 요구하는 8개항(필수의료패키지·의대 증원 백지화, 의정 동수의 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 정책 졸속 추진 사과, 의료사고 제도 개선, 수가체계 개선, 의료전달체계 개선, 수련환경 개선, 휴학계에 대한 공권력 남용 철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은 비난을 위한 비난일 뿐이다. 의대생·전공의의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해달라는 교육부의 요청도 지나친 것이다.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의정갈등으로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대생과 전공의가 감수했던 피해도 적지 않다. 의대생·전공의의 피해가 환자만큼 심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용납할 수 없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의사면허도 받지 못한 의대생에게 환자에게 고통을 준 의료공백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의 책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억지만 부리는 정부에게 있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대부분 의대 부속으로 운영되는 상급종합병원의 일차적인 사회적 책무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은 '일반의'를 고강도의 수련을 통해 '전문의'로 길러내는 것이다.
그런 상급종합병원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PA(진료지원) 간호사를 투입해서 무늬만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엉터리 개혁이다. 전공의 수련 기능을 상실한 상급종합병원의 운영을 의대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 자칫하면 시설·규모가 부족한 개원의에게 맡겨두게 될 전공의 수련 과정을 감독하는 보건복지부 관료의 수만 잔뜩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의대 교수가 의대생·전공의에게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지적에는 반드시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애정·관심이 가득해야 하고 지성인으로의 품격이 드러나는 언어가 필요하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핑계로 과도한 갑질이 허용되던 '도제식 교육'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지금은 의료계가 교수·전공의·학생으로 분열되어 서로 손가락질을 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에 의한 '의사의 악마화'가 의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붕괴해버렸듯이 '의대생·전공의 악마화'도 의학 교육과 의료 현장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료계가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24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 개혁이 국민의 생명권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깊이 성찰하고 열린 마음과 성숙한 자세로 대화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갈등을 넘어 화해와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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