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첩 때문에 비상계엄? 이런 대통령 처음 봤다"

윤수현 기자 2025. 3. 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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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
"6·25 참전하고 4·19 혁명 집회 나선 화교인데, 한국에 실망 커"
"미디어의 중국 희화화, 화교에게도 영향 미쳐… 신중해야"
"나도 MBC청룡 어린이회원이었다...좋은 이웃으로 여겨줬으면"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지난 19일 인천화교역사문화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 사진=윤수현 기자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이다.” (지난해 12월12일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담화)

“언론은 화교에게 다 넘어갔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SNS에 공유한 글)

중국·화교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이 일상이 됐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각종 차별·혐오 표현이 쏟아진다. 화교가 각종 특혜를 받고 있다는 허위정보가 유포되고 있으며, 이름이 특이한 언론인·법조인을 두고 '화교'라는 공격도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선 비상계엄과는 상관없는 'CCP(중국 공산당) OUT'이라는 피켓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차별·혐오의 피해는 당사자에게로 돌아간다. 공산당과는 상관없는, 100년 넘게 한국에 터를 두고 살아 온 화교를 대상으로 한 공격도 이어진다. 부산화교학교 홈페이지에 협박 글이 게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며, 화교협회 사무실로 찾아가 “간첩이 우글대는 곳”이라는 혐오 발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지난 19일 인천화교역사문화관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의인터뷰에서 중국·화교에 대한 혐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윤 대통령 입에서 '중국 간첩' 이야기가 나온 후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적된 중국·화교 차별·혐오가 최근 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 부회장은 화교가 한국에 정착한 지 100년이 넘었고 항일운동과 6·25 전쟁에도 국군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며 차별을 거둬달라고 호소했다. 주 부회장은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화교 3세대다. 아래는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 간첩'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 간첩이 한국 사회에 침투했다는 주장이다.

“비상계엄의 이유 중 하나로 중국 간첩 문제를 제기했는데, 50년 넘게 한국 살면서 대통령이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주의적 발언을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동안 중국·화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윤 대통령이 '중국'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이후 정치인들도 비슷한 발언을 했는데,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그러는 것 아닐까. 대통령이나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인데, 조심해야 했다.”

- 대통령 발언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

“부산화교학교 홈페이지에 협박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화교협회 홈페이지에는 화교가 한국 사회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가짜뉴스 영상이 올라왔다. 최근 인천화교협회 복도에서 큰 소리로 '여기가 간첩이 우글대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다 듣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젊은 사람이 '진짜 중국 사람은 길에서 용변을 보느냐'며 비아냥대기도 하고. 태극기를 펴고 인천화교협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본인 땅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지, 솔직히 기분 안 좋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 대만대표부(대만 외교공관)에서 화교협회에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들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찾아와 '괜찮은가'라고 묻기도 했다. 차이나타운 순찰도 강화됐다. 이전에는 없었던 조치다.”

- 화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이어지고 있는데 서운하지 않은가.

“맞다. 실망도 크고 섭섭하다. 화교에 대한 역사적 이해 없이 단순히 '중국'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거다. 화교가 다 간첩인 줄 아는 것 같은데 화교는 현재 중국 본토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연관성이 없다. 화교의 시초는 조선 말기 한반도에 온 중국 무역상이다. 청일전쟁·중일전쟁·국공내전 등이 벌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이후 화교는 한국 사회에서 10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특히 화교는 한국과 협력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항일운동과 6·25 전쟁에 참여했으며, 4·19 혁명 당시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 사망했을 때는 조기를 걸었다. 1992년부터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이들과는 문화적으로 구분되지만, 이런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차별과 혐오가 이어지고 있다.”

- 청소년들에게도 피해가 갈까 걱정된다.

“화교학교에는 보통 화교 학생과 중국 본토에서 온 학생, 한국 학생 등 세 문화권이 함께 있다. 그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비상계엄 이후 각 문화권 사이 벽이 생겼다고 한다. 예민한 상황이니 학생들끼리 편하게 말도 못 하는 것이다. '중국 간첩' 등 이야기가 공론화됐으니 자칫 말을 함부로 하면 크게 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담이 생기고 있다.”

▲지난달 25일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영상 썸네일 갈무리. MBC 기자가 화교라는 허위사실을 담고 있다.

- 최근 이름이 특이하거나 외자인 언론인·법조인을 두고 '화교'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화교가 한국에서 각종 특혜를 받고 있다는 허위정보도 기승을 부린다.

“답답하다. 화교는 중립적 단어인데 갑자기 폄훼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 특히 최근 들어 화교가 중국인과 동일한 뜻이 됐는데, 역사적인 맥락을 모두 무시한 것이다. 화교, 중국인, 중국 동포 다 같은 사람인데 민족 차별주의적 억양과 의미의 발언에 너무 실망스럽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화교는 대부분 영주권을 갖고 있고 이에 준하는 정책을 적용받는다. 대학교를 쉽게 간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외국인 전형이 있지만 공부를 해야 대학에 갈 수 있다. 한국 의대를 가기 위해선 전교 1등을 해야 한다. 화교는 상속세를 안 낸다는 주장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금 똑같이 낸다. 휴대전화 통신비도 한국인들과 같은 요금제를 쓴다. 오히려 영주권자라는 지위 때문에 사회적 목소리를 못 내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때 부모님께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항상 듣고 자랐다. 당시 외국인을 추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시위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투표권은 있지만, 이는 모든 영주권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가짜뉴스를 유포하는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결론을 끼워 맞춘 것이라고 본다.”

- 화교·중국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맞다. 어렸을 땐 친구들이 화교라는 이유로 '쿵후해 봐'라고 하고, 대학생 때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말을 하면 다 나만 쳐다봤다. 화교는 맨날 짜장면만 먹고 사는 줄 아는지. 여자친구를 사귀면 주변에서 '너 짜장하고 사귀냐'고 말했다고 하더라. 화교보고 '왕서방'이라고 부르고, 모든 중국 사람들은 밀수업을 하는 줄 안다. 익숙한 일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혐오나 차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누적되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 미디어가 차별을 부추긴 측면도 있어 보인다.

“미디어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그 영향이 화교에게 미친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일부 언론은 '우한 코로나'라는 표현을 썼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는 건데 답답하다. 단순히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다는 건지. '우한 코로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졌고, 이게 고스란히 화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중국어를 흉내 내거나 보이스피싱을 묘사하면서 중국 동포 억양을 흉내 내는 것도 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중국'을 검색하면 다 부정적인 이야기뿐이지 않은가. 미디어가 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내면 이용자들은 자신들도 그래도 되는 줄 안다. 말의 무게를 알고 신중했으면 한다.”

▲1931년 만보산 사건 후 피난을 간 인천화교. 배화폭동에서 사망한 화교를 기리고 있다. 사진=인천화교협회

- 1931년 배화폭동, 평양화교 학살의 시작에도 조선일보의 만보산 사건 오보가 있다. 조선일보가 중국 만보산에서 중국인이 조선인을 죽였다는 오보를 냈고, 이후 화교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평양지역에서 많은 화교가 사망했고, 인천에도 소규모 폭동이 벌어져 화교가 군산으로 피난 갔다. 일본의 이간질에 조선인과 화교의 갈등이 불거진 것인데, 이간질로 갈등이 불거진 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본다.”

- 과거 박정희 정부의 화교 억압 정책도 있다.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법은 타격이 컸다. 화교에 1주택·1점포만 허용됐는데, 면적 제한도 있었다. 당시 거주지는 100평으로 제한됐는데 그 땅에서 농사를 어떻게 짓나. 그러니 농사를 포기하고 소규모 중국집을 운영하는 화교가 늘게 됐다. 지금도 화교 50% 가량은 요식업에 종사한다. 또 서울시는 1970년대 소공동 화교촌 재개발을 하면서 화교를 다른 지역으로 몰아냈다. 서울시가 화교에게 '소공동에 화교회관을 지어줄 테니 땅을 매매하라'고 했는데, 공사가 계속 지연되면서 화교가 밀려난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엔 호텔이 자리 잡았다.”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박물관 전경. 사진=윤수현 기자

- 화교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어렵다. 세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현재 화교 대부분은 3~5세대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젊은 세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스스로를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만 해도 축구 경기를 하면 조카들은 한국을, 부모 세대는 대만이나 중국을 응원한다.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는 혼란스럽다. 어렸을 때 MBC청룡 어린이 회원이었고,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경기를 보고 눈물 흘렸다. 화교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그냥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방인, 이게 현재 화교의 위치를 말해주는 단어 아닐까. 한국은 화교를 배척하고, 대만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영원한 이방인이다. 한국에 바라는 건 한가지다. 화교를 좋은 이웃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 중구 선린(善隣)동이 '좋은 이웃 국가의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그 뜻 그대로 화교를 바라봤으면 한다. 화교가 한국과 함께한 역사를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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