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질식'시키는 토종 산불지연제도 안통한 의성 산불

김소연 기자 2025. 3. 2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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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경기 포천에 위치한 국가산불실험센터에서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연구원들과 함께 산불 실증실험을 진행했다. 과학동아 제공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맹렬히 번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거리 곳곳을 뒤덮은 분홍색 가루, 산불지연제 '포스첵'이다. 상황이 급하니 뿌리긴 하지만 포스첵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물질이다. 미국에서도 '인간의 생명이나 공공 안전이 위협받을 때'만 사용하는 규정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한국에는 포스첵보다 소화 능력이 더 뛰어나고 친환경적인 산불지연제가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국가산불실험센터를 찾아 최신 산불 대응기술을 직접 보고 왔다.

"산불지연제 효과를 실험으로 보여드릴게요. 2월 7일 아침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출발하시죠."

권춘근 산불연구과 연구사의 반가운 말을 듣고 찾아간 서울 국립산림과학원 앞에는 낡은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검은 차 위에 달려있는 주황색 경광등이 눈길을 끈다. "차가 좀 더럽죠?" 권연구사는 머쓱해하며 "산불 현장을 다닐 때마다 타는 차"라고 설명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는 한국 산불 연구의 중심이다. 산불이 발생한 현장도, 산불을 미리 대비하는 연구에도, 산불이 난 곳을 복원하는 지역에도 빠지지 않는다. 이 차는 그 모든 현장에 연구자들과 동행한다.

"산불이 발생하면 경찰이 인근 도로를 통제해요. '산림과학원 직원이다. (우리 안전은) 책임질 테니까 들여보내 달라'고 하고는 불길을 뚫고 들어가요. 때로는 이 차로 임도(산길)를 타서 실제 불이 어디 있는지 어떤 식으로 확산되고 있는지 정보를 얻죠. 그렇게 현장지휘본부에 가면 정보를 분석하고 확산 예측 프로그램을 구동해 상황도를 그리고 진화 전략을 짜는 거예요."

"연기가 차 안으로 새어 들어오진 않느냐"는 질문에 권 연구사는 "연기뿐이겠어요? 열기가 느껴지기도 해요"라고 담담히 답했다. 

낡은 차가 새삼 위대해 보였다. 산불지연제 뿌린 낙엽, 직접 불 붙여보니 차를 타고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달려 경기 포천에 위치한 국가산불실험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은 대형 산불의 특성과 대응 방법을 연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산불 실험센터다.

낙엽을 태우고 바람을 일으키고 지연제를 뿌리는 등의 실험이 모두 국가산불실험센터에서 진행된다. 불을 끈다고 하면 흔히 물을 뿌리는 방식을 떠올린다. 불에 물을 뿌리면 온도가 발화점보다 낮아져 불이 꺼진다. 이런 방식을 '냉각 진화'라고 한다. 

한편 뜨거운 기름에 불이 붙을 경우엔 큰 냄비 뚜껑으로 덮으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산소 공급을 차단해 불을 끄는 방식은 '질식 진화'라고 부른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산불지연제를 살포하고 있다. 산불지연제는 원래 무색이나 살포한 곳을 구별하기 위해 분홍색, 붉은색 등 색소를 섞어 사용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의 진화 과정에서 사용된 산불지연제 '포스첵'이나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산불지연제 모두 질식 진화 방식에 속한다. 산불지연제가 가연성 물질의 표면에 묻으면 공기가 통과하지 못하는 얇은 막을 형성한다. 그러면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므로 물질이 타지 않는 원리다.

"산불지연제는 원래 무색이에요. 지연제가 어디에 투하되는지 알아야 하니까 색소를 섞는거죠. 미국의 지연제는 가루를 물에 풀어서 사용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고농축 원액 상태로 준비해 뒀다가 산불이 발생하면 물에 희석해 씁니다. 별도의 교반(섞는) 장치가 필요 없어서 더 활용성이 높아요."

국내에서 개발한 산불지연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적은 편이다. 포스첵의 경우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에는 미국 산림청의 전·현직 직원들이 모인 환경단체 'FSEEE'가 정부를 대상으로 포스첵이 물 생태계에 들어가면 어류 집단 폐사가 발생할 수 있으며 포스첵의 산불지연 효과 자체도 크지 않다며 소송을 건 적이 있다. 

이에 포스첵을 뿌릴 때는 가능한 하천이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지역 근처를 피한다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에 비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개발한 산불지연제는 씨앗의 발아에 영향이 없고 토양 생태계와 물 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물을 각각 대표하는 지렁이와 물벼룩에게도 영향이 없다는 게 권 연구사의 설명이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연구사가 산불지연제를 뿌린 영역을 손으로 표시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저희가 개발한 산불지연제는 인과 질소 화합물, 그리고 규소로 이뤄집니다. 나무 표면에 잘 흡착하면서 열을 잘 견뎌 기존 제품(포스첵)보다 산불을 지연하는 성능이 14.7% 더 높습니다. 현재는 민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한 단계입니다. 

물체를 코팅하는 원리이므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물질을 이용해서도 산불지연제를 개발할 수 있어요. 지금은 목재에서 나오는 고분자인 셀룰로오스를 이용해 산불지연제를 개발하려고 연구 중입니다. 보다 환경 친화적인 산불지연제가 되겠죠."

직접 개발한 산불지연제의 효과는 어떨까. 실험은 바싹 마른 침엽수 잎을 융단처럼 넓게 깐 다음 한쪽에 산불지연제를 뿌리는 식으로 진행됐다. 지연제를 뿌린 낙엽은 만져보니 살짝 촉촉한 정도였다. 산불의 중심 온도는 최대 1500℃까지 오르는데 과연 불길을 쉽게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런 마음이 앞섰다. 몇 분 뒤 권 연구사가 낙엽더미 한 귀퉁이에 불을 붙였다.

불은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산불지연제를 뿌려둔 곳까지 번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이 아무리 커져도 산불지연제가 묻은 낙엽은 불이 붙긴 커녕 연기조차 나지 않았다. 토치를 갖다 대고 불길을 쏘아도 겉이 그을릴 뿐이었다. 불을 붙인 지 10분이 지난 시점 산불지연제를 뿌린 낙엽을 다시 만져봤다. 서늘했다.

2022년 개발이 완료된 이 산불지연제는 같은 해 발생한 울진·삼척 대형 산불에서 큰 활약을 했다. 권 연구사는 "산불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해보니 2시간 뒤에 산불이 원자력발전소까지 도달한다는 결론이 나왔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급하게 지연제를 원전 앞에 뿌렸죠. 최근에는 50kg의 화물을 옮길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해 드론으로 산불지연제를 뿌리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한번 뿌리면 반경 7.5m 영역에 산불지연제가 묻어 그 부분은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요. 추후에는 드론이 편대 비행하며 뿌리도록해 더 큰 효과를 얻으려고 합니다."

손에 묻은 산불지연제는 강력접착제가 묻었을 때처럼 뽀득거리는 얇은 막을 형성하며 말랐다. 물에 손을 씻으니 쉽게 녹아 없어졌다. 실제로 비가 내리면 산불지연제는 물에 녹아 벗겨진다. 권 연구사는 "비가 오기 전까지는 산불지연 효과가 유지되기 때문에 산불 위험이 높은 시기에 미리 뿌려 두는 식으로도 활용된다"고 했다.

산불지연제 성능 실험 결과, 산불지연제를 뿌려 둔 곳(오른쪽 위)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과학동아 제공

● 이젠 안심할 수 있는 시기도, 지역도 없다

산림청이 발표한 산불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에선 연평균(2014~2023년 평균) 567건의 산불이 발생해 매해 4004ha(40.04km2)의 산림이 피해를 입는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인 데다가 산 바로 근처에 민가가 있어 특히나 산불에 취약한 국가다. 그런 한국에서 20여 년간 산불이 일어난 곳을 찾아다닌 권 연구사지만 최근발생하는 대형 산불은 유형부터 낯설다.

"1990년대에는 100일이 채 되지 않던 산불 위험기간이 2000년대 들어서 170일 가까이로 늘었습니다. 최근 5년간 수치를 보면 거의 200일이 돼요. 1년 365일 중 200일이 산불 위험 기간이라는 건 산불이 이미 일상이 됐다는 뜻입니다. 이를 산불의 연중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엔 2월부터 5월 사이 봄철을 산불 위험 기간으로 여겼다면 앞으로는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매일이 산불 위험 기간이라는 이야기다. 산불이 발생하는 지역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강원도 동해안에서 산불 피해가 잦았다. 

편서풍이 태백산맥을 타고 동해안으로 넘어가면서 푄 현상(수증기를 포함한 공기 덩어리가 산맥을 타고 올라가면서 비를 뿌린 후 산맥 반대편을 따라 내려갈 때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현상. 한국에서는 동해안에 부는 높새바람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샌타 애나 바람이 푄 현상의 결과물이다)이 발생한다. 

푄 현상에 따라 영동지방에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불며 산불을 퍼뜨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건조한 경남 내륙이나 충남 내륙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2023년만 보더라도 4월 2일부터 4일까지 충남 금산, 당진과 홍성, 보령, 전남함평 등 서부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산불에서 안전한 시기도 지역도 이제는 없다. 게다가 국립산림과학원에서 2월 7일 발표한 연구 자료를 보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분석했을 때 2100년경 한국의 산불 위험은 20세기(1971~2000년) 후반 대비 최대 15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에너지공간융합학과 교수는 1월 '2025 산림·임업 전망대회'에서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 위험이 커지는 이유는 강수가 특정 기간에 집중되고 그 외의 기간이 더욱 건조해지는 극단적인 기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강수가 집중되는 기간에 나무나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가뭄이 오면 이 식물은 고스란히 산불의 연료가 된다. 

산불은 무엇을 태우는지에 따라 땅속 뿌리를 태우는 지중화, 지표의 잡초와 낙엽을 태우는 지표화, 나무줄기를 태우는 수간화, 나뭇가지와 잎을 태우는 수관화와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화로 나뉜다. KBS 재난포털 제공

● AI로 예측하고 막는다, 산불 대응의 미래

산불의 '뉴 노멀' 앞에서 권 연구사는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삶 곳곳에 산불이 있었던 그라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더 잘 알았다.

"고향이 강원도예요. 2000년 동해 산불을 경험했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새벽 세 시경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빨리 공터로 가라. 다급하게 움직이는데 제 머리만 한 불똥이 4차선 도로를 뛰어넘는 걸 봤어요. 그때 산불을 알았죠."

지표화가 발생했을 때 활엽수림과 침엽수림 중 어느 곳이 더 위험한지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활엽수 낙엽(왼쪽)은 불을 붙인 지 2분 30초 만에 다 타버렸다. 침엽수 낙엽(오른쪽)은 7분이 지난 시점까지 잔불이 남아있었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2022년 3월 발생한 울진·삼척 대형 산불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산불이었다. 163km2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고 9085억 원의 재산 피해를 남긴 그 현장에 권 연구사도 있었다. 

"어차피 현장대책본부에 가면 쉬는 시간이 없어요. 계속 유관기관 회의, 브리핑 등이 이어지니 거의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렇게 2~3일을 보내는 게 보통이었어요. 그래서 속옷 한 장, 양말 한 장만 들고 갔죠. 그런데 (울진·삼척의 경우) 산불이 10일 가까이 지속되는 거예요. 더 체계적인 산불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습니다."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산불 대응 시스템 개발이 한창이다. 지역의 지형, 수종 분포, 바람, 날씨, 기온 등을 AI로 분석해 산불이 어떻게 확산할지 예측하는 식이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헬기나 특수진화대등 진화 자원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할지 판단할 수 있다. 산불이 발생하는 경향성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유연하게 전략을 짤 수 있게 된다.

비화 : 낙엽에 불을 붙인 뒤 사방에서 초속 7m의 바람을 일으켜 산불 발생 시 불기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실험했다. 불기둥은 약 4m 가까이 치솟았고 셔틀콕만한 불똥이 그 주위를 돌았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지역 주민이 자신이 위치한 지역이 산불 피해에 얼마나 취약한지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2월 12일 선보였다. 사용자가 주소를 입력하면 시설물과 주변 환경을 자동으로 분석해 고위험, 위험, 저위험 3가지 척도로 위험성 정도를 알려준다.

산불 고위험 지역 인근에는 수막시설 등을 설치해 산불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수막시설은 나무보다 높은 위치에서 360도로 회전하며 물을 분사하는 타워형 살수 장치다.

작은 불씨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등산객이 무심코 남긴 담뱃불이거나, 송전탑에서 발생한 스파크거나, 마을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잘못 튄 불티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는 이 불씨가 거대한 산불로 번질 확률을 높였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이렇게 발생한 산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다.

권 연구사는 산을 구성하는 나무 하나하나까지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하는 산불 예측 및 대응 프로그램이 더 널리 사용되도록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역 주민이 산불 관련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AI를 잘만 이용한다면 그리 먼 목표는 아니었다.

"산불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통합하고 AI를 이용해 시스템을 개편해서 누구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야 산불을 더 과학적으로 대비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우리 집이 안전한지 미리 알고 그 지역에 적합한 산불 대비 계획을 세우는 거죠."

○ 소나무 숲, 활엽수 숲보다 산불에 약하다? 산불 대책 팩트체크3

산불을 막는 방법은 간단한 듯 어렵다. 불을 끄면 된다. 가능한 불이 커지지 않게 막고 커진 불이 퍼지지 않게 막으면 된다. 하지만 사람, 날씨, 식물, 지형 다양한 조건이 얽히면서 산불 대책을 세우는 일은 복잡해진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말이 갈리는 부분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 쟁점을 팩트체크 해봤다.

산림청 제공

● 팩트체크 01.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끌 물이 부족하다

아님 - 산불 진화의 중요한 축 중 하나는 헬기다. 최대 1만 리터의 물을 한 번에 쏟아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산불의 앞부분을 진화한다. 산불의 머리를 누르는 것이다.

보통 산불 현장 인근의 강이나 저수지에서 물을 급수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 저수지의 저수율이 낮아지므로 산불 끌 물이 부족해질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발생하고 저수지의 저수율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는 참이다.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팀이 2019년 한국수자원학회논문집에 발표한 '저수지 가뭄지수와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이용한 우리나라 미래 농업가뭄 평가' 논문은 21세기 후반(2071~2099년) 한국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이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64.5~72.8%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이를 고려해 대비를 해두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연구사는 "담수지와 거리가 먼 지역들의 경우 취수가 가능한 사방댐을 설치하거나 간이 취수시설을 미리 마련해두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담수가 부족해 불을 끄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산림청은 1월 22일 '2025년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원활한 산불 진화용수 공급을 위해 77개였던 이동식 저수조를 89개로 확대 운영하고 다목적 사방댐을 3개소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팩트체크 02. 산에 난 길, 산불의 지름길 된다?

아님 - 임도는 산에 난 작은 오솔길을 말한다. 이 길이 산불이 지나가는 길이 된다는 의견과 산불을 차단하는 길이 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장은 2022년 밀양 산불 피해지역을 직접 찾은 뒤 2023년 KBS 공개토론에서 "바람이 임도가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하면서 산불이 임도를 따라 이동해 대형 산불을 만드는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패널로 함께 참석한 차두송 강원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는 "임도가 산불을 키운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한국산림기술인회와의 인터뷰에서 "산불 발생시 풍속과 풍향은 임도가 아닌 기상 및 지형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풍속이 강하면 아무리 넓은 임도가 있어도 바람 때문에 산불이 그 폭을 훌쩍 넘어버린다"고 했다.

한편 이란 테헤란대 연구팀은 2016년 학술지 '에코페르시아'에 이란 마자난드란 지역에서 2010년 발생한 산불 11건을 분석한 결과 산불이 발생한 지역과 임도 사이 거리는 산불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신 산불이 발생한 지역과 주요 도로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산불 피해 규모가 증가했다. (doi: 10.18869/modares.ecopersia.4.2.1331)

산림청은 산불 진화 차량이 쉽게 접근하도록 길을 마련할 목적으로 2024년 851km던 산불 진화 임도를 2025년 1351km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산림청 제공

● 팩트체크 03. 소나무 숲, 산불 키운다?

판단 보류- 소나무 등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잘 탄다. 이는 과학동아가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불실험센터에서 한 실험을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침엽수잎 더미와 활엽수 잎 더미에 동시에 불을 붙이자 활엽수 잎은 2분 30초 만에 다 타 재가 된 반면 침엽수잎은 실험 시작 후 7분이 지난 시점까지도 불씨가 남아있었다. 침엽수 잎은 가연성 물질인 송진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불씨는 산불 확산의 씨앗이 된다. 침엽수 잎을 태웠을 때 불의 높이가 활엽수보다 2배 가까이 더 높았다.

그러나 임주훈 해밀산림생태입지연구소 소장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1998년 한 산불 현장에 갔는데 활엽수림임에도 불구하고 소방호스로 물을 들이부어도 산불이 잘 잡히지 않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소나무류보다 참나무 류가 일단 나무 줄기에 불이 붙으면 화력이 더 세다"면서 "특히 한국의 경우 졸참나무나 갈참나무에서 속이 썩어 비어 있는 나무가 종종 관찰되고 이들의 경우 비어 있는 속에 붙은 불을 끄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과학동아가 진행한 실험 결과도 잎과 목재를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한국에서 소나무가 잘 자라는 백두대간 동쪽 경북 울진, 영덕, 경남 고성 등 지역은 기후가 건조한 지역입니다. 소나무는 그런 건조하고 강풍이 잘 부는 환경을 잘 견디는 나무예요."

소나무가 많아 그 지역에서 산불이 많이 나는 것인지 그 지역이 산불이 날 환경인 데다가 소나무도 잘 자라는 지역인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22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 44건을 지도에 표시한 뒤 한반도 소나무 분포도와 겹쳐 비교했다.

소나무가 많은 영동지역에서 산불이 많이 발생한 것은 참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었다. '산불=소나무 숲'이라는 공식을 만들기에는 연관성이 부족하다.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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