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EO 역할 범주를 뛰어넘은 실용적 교육철학자였습니다[추모합니다]

2025. 3. 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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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나 유도 선수 출신인 줄 알았다.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체격, 큼직한 얼굴과 우람한 손.

안경 속 부드러운 눈매, 얼굴 가득 넘치는 순박한 미소, 예단과는 전혀 딴판인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

그렇게 '선한 선배'의 이미지로만 머무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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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합니다 - 고 박준구 우신켐텍 명예회장(1944∼2025) <상>
지난 2023년 8월 9일 박준구(왼쪽) 우신켐텍 회장이 고려대 문과대학 발전기금 및 철학연구소 연구기금 기부 약정식에서 김동원 고려대 총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고려대 제공

럭비나 유도 선수 출신인 줄 알았다.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체격, 큼직한 얼굴과 우람한 손. 2005년 봄,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으로 그가 취임하면서 각 학과 대표들과 상면하는 자리에서의 첫인상이 그랬다. 전통적으로(?) 유약한 ‘문과인(文科人)’ 이미지를 떠올리던 내게 그의 장대한 풍모는 다소 의외였던 것이다. 오늘(3월 26일) 발인식을 거쳐 영면에 드시는 박준구 선배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런 착시는 오래가지 않았다. 안경 속 부드러운 눈매, 얼굴 가득 넘치는 순박한 미소, 예단과는 전혀 딴판인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 더 나아가,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도 후배들에게 일절 하대하지 않는 언어 습관까지.

그뿐만 아니라,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함께 공감하려 하고, 누구든 애로사항을 말하면 예사로이 흘려듣지 않고 끝까지 도와주려 애쓰는 자상한 배려, 이타심까지.

때때로 크고 작은 모임에서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시나브로 감동하게 되는 그분의 진솔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선한 선배’의 이미지로만 머무는 줄 알았다.

주변에선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우려하기도 했다. 철학도인 그가 1974년에 무역회사를 창업했을 당시. 그것도 정밀화학이란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그러나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회사는 화학 분야 전문 무역상사로서의 독보적 입지는 물론, 개발과 생산라인을 갖춘 부품·소재 전문기업으로도 이미 관련 업계의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천부적 인품, 탁월한 역량, 불굴의 노력이 어우러져 그는 마침내 진정한 자수성가의 신화를 이뤄냈으니 한 단계 또 다른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2014년 회사 창립 40주년을 맞아 장학재단을 세우며 청소년 시절부터 품었던 평생의 포부를 펼치기 시작한다. 모교인 고려대에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인문융합 인재양성과 인문학총서 간행사업’을 지정해 바야흐로 인문학 르네상스의 봉화를 지펴 올린 것. 그에 따라 영문학과 뇌과학을 융합한 강좌가 개설됐고(2016년), 그의 이름을 딴 인문교양 총서가 간행되는가 하면 이어서 ‘삶/죽음/그리고 기억’이라는 독창적 주제로 의학/인문학 교수들이 아울러 융합 세미나를 여는 등 획기적인 탐구 어젠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21년 12월 하순, 그는 다시 고려대에 5억 원을 기부한다. 인문사회관 건립과 디지털 인문학 교육을 위한 용도다. 선천적인 겸손함과 수줍음의 그가 모처럼 취지를 밝혔다. “학문 간 융합으로 청년들이 쉽게 인문학을 접하고 내적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거시적 안목의 미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과연 어느 누가 착상하고 앞장서 내놓을 수 있었으랴. 어느덧 그는 선지자들의 교육 구국 정신을 계승한, 꿈꾸고 실천하는 ‘실용적 교육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CEO의 역할 범주를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과 집념이 만들어낸 값진 결실이라 하겠다.

후배 이강식(전 리얼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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