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일 사람 다 엮여도 처벌 어렵다" 주택조합 허술한 법망 [추적+]
비전문가가 속한 주택조합
전문가인 업무대행사에 의존
이 사이에 연결고리 생긴다면
법적으로 동일인이라면 문제
하지만 친인척 관계는 못 막아
주택조합은 오랫동안 내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고려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조합 내에서 벌어지는 비리나 전문가·비전문가 간 정보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고질적 문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택조합에서 툭하면 발생하는 '이해충돌'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법도 있지만, 지나치게 느슨해서 효과가 별로 없다.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아파트를 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그만한 돈이 필요할 거다. 다음은 뭘까. 크게 두가지다. 이미 있는 아파트를 사거나, 빈 땅에 아파트를 만드는 거다. 첫번째 방법은 이미 있는 아파트의 값만 지불하면 된다. 두번째 방법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땅을 사들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문제는 재벌이 아니라면 개인이 아파트를 지을 땅을 혼자 사들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게 바로 '주택조합'이다.
주택조합은 사람들을 모아서 만든 '분담금'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땅을 사들인다. 그다음 건물을 만들기 위한 공사비를 충당한다. [※참고: 이 과정에선 조합은 통상 대출을 일으키는데, 이 이야기는 후술했다.]
높이 올려 지으면 일반분양으로 팔 수 있는 아파트도 늘어난다. 집값이 오름세일 땐 조합원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에 일반 분양할 수 있다. 그러면 사업비도 충당 가능하다. 문제는 속도다. 이미 자기가 갖고 있는 주택과 땅을 투입해 사업을 하는 '도시정비사업 조합'과는 사정이 달라서다.
토지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도시정비사업 조합과 비교하면 주택조합은 땅을 사는 비용(토지비)부터 끌어모아야 한다. 그 돈을 가져오는 데 드는 비용인 이자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주택조합사업은 최대한 빨리 분양까지 마치는 게 중요하다. 이 사업에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택조합엔 전문가가 없어서 시행사가 사업을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부동산 사업의 경우, 시행사는 자기자본과 은행 등에서 자금을 끌어와 땅을 사고 시공사를 찾아 분양한다.
주택조합의 시행사는 조금 다르다. 사업 초기에 조합원을 모으고 인허가 절차를 돕는다. 시행사뿐만이 아니다. 어떤 주택조합은 '업무대행업체'와 계약하기도 한다. 업무대행업체는 부동산 인허가 과정에 필요한 행정업무나 서류발급 등을 담당한다.
조합 업무를 다루는 업무대행업체의 한 직원은 "시행사는 조합원 모집 등 초기 업무를 도와주는 수준이어서 사업을 할 때는 조합이 모든 결정권을 갖는 게 원칙"이라면서 "그래서 업무대행을 맡을 전문가 집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주택조합의 위험 요인이 여기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주택조합과 시행사 또는 업무대행업체가 '짬짜미'를 꾀하면 사업이 비리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주택법 13조는 '조합의 임원이 될 수 없는 결격 사유'를 정해뒀다.
미성년자, 파산 상태인 사람, 집행 유예 만 2년 이하인 사람 등을 제외한 조건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당 주택조합의 공동사업주체인 등록사업자 혹은 업무대행사의 임직원은 조합의 임원이 될 수 없다."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사건사고는 언제나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든다. 서울시 '지역주택조합 피해사례집'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사고가 적시돼 있다. 사례를 보자. A주택조합의 조합장과 업무대행사 대표는 '고교 동창 관계'다.
둘은 사전 공모해 대행비나 용역비를 부풀려 수의계약을 체결하거나 대행비를 편법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익을 편취했다.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조합장과 대행사 대표가 '친구'란 점이 위험한 변수로 작용했다. 사례집에 기록돼 있진 않지만, '법망'을 유린하는 사건사고는 숱하다. 최근 경기도에서 문제를 일으킨 B조합의 사례를 보자(그림 참조).
여기엔 시행사, 주택조합, 행정용역업체가 등장한다. 먼저 시행사의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C씨다. 그는 주택조합이 업무대행을 맡긴 행정용역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C씨의 동생 D씨는 주택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조합 이사'가 됐고, 시행사 대표를 겸임했다(조합 이사 사퇴 후). 사실상 주택조합~시행사~행정용역업체의 연결고리가 생긴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이들이 '연결고리'를 악용해 사익을 편취하거나 조합원에게 피해를 입혀도 반드시 법적 처벌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무엇보다 시행사의 대표와 대주주는 성격이 다르다.
시행사 대주주 C씨가 업무대행을 맡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동생 D씨가 시행사 대표를 맡았지만, 조합의 임원을 사퇴한 후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조합 대표나 이사 등 임원이 사퇴한 후에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법적 사각지대를 시인한 셈이다.
이처럼 주택조합 사업에서 벌어지는 '이해충돌'을 막을 수 있는 법망은 느슨하고 허술하다. 주택조합에서 횡령, 배임 등의 사고가 숱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도 국회도 '법'을 개선할 뜻이 없는 듯하다. 주택조합의 허술한 법망,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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