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년 전 떨어진 운석이 만든 지형…한반도 최초이자 유일

최상원 기자 2025. 3.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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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운석충돌구’ 국가·세계 지질공원 지정 추진
경남 합천군 대암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합천 운석충돌구’ 모습. 대암산 등 높이 200~600m 산들이 타원형으로 둘러선 모습이 큰 세숫대야를 닮았다. 최상원 기자

지구로 날아오는 별똥별(유성)은 초속 수십㎞ 속도로 대기권을 통과하다가 불타서 사라지지만, 아주 간혹 거대한 별똥별은 다 타지 않고 일부가 남아서 지구 표면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운석이다. 운석이 떨어진 지표면에는 충돌 에너지 때문에 구덩이가 생기는데, 이를 ‘운석충돌구’라고 한다. 경남 합천군에서 발견된 ‘합천 운석충돌구’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인증받은 운석충돌구다.

‘합천 운석충돌구’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지난 9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 대암산을 찾았다. ‘운석충돌구 전망대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해발 591.1m 대암산 꼭대기에 올라가자 사방으로 뻥 뚫린 널찍한 공터에 산불 감시 망루가 세워져 있었다. 꼭대기 주변에는 초팔성(草八城)이라고 전하는 삼국시대 때 쌓은 석성의 흔적도 보였다. 꼭대기 공터에선 패러글라이딩 동호인 10여명이 줄을 서서 공터 끝 낭떠러지를 향해 힘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낭떠러지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 맞바람을 가득 안은 패러글라이더가 활짝 펴지며 둥실 떠올랐다.

낭떠러지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대암산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무월봉(607.6m), 태백산(578.6m), 천황산(687.6m), 미타산(662.9m), 옥두봉(253.2m), 단봉산(201.0m)이 타원형 형태로 줄지어 늘어서서 넓은 들판을 감싸고 있었다. 전체 모양이 큰 세숫대야 같았다. 운석충돌구인 것으로 밝혀진 ‘적중·초계 분지’였다.

‘합천 운석충돌구’는 대략 5만년 전 형성됐다. 당시 경남 합천에 쏟아져 내린 별똥별 중 하나가 다 타지 않고 지름 200m 이상의 운석이 되어 떨어졌다. 운석이 지표면에 닿을 때 충돌 에너지는 1400메가톤에 이르렀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8만7500배 위력이었다.

운석 충돌 부분의 지표면이 찢기고 밀려나면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와, 구덩이 가운데에 수심 70m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호수 바깥쪽으로는 높이 200~600m의 산이 생겼다. 산의 꼭대기와 꼭대기 사이 거리가 동서 6~8㎞, 남북 4㎞에 이르렀다. 타원 형태의 운석충돌구가 생긴 것이다.

이후 수만년 세월이 흐르며 운석충돌구 북동쪽에 있는 황강 쪽으로 틈이 생기면서 호수 물이 빠져나갔다. 호수는 퇴적토로 메워지면서 넓고 비옥한 농지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을 현재 동쪽은 적중면, 서쪽은 초계면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적중·초계 분지’라고 부른다. 지난달 말 현재 2090가구 2272명이 분지로 변한 운석충돌구 안에서 살고 있다.

‘합천 운석충돌구’ 탐방로 지도. 7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연결 도로를 포함해 전체 길이 33㎞에 이른다. 합천군 제공

‘적중·초계 분지’가 5만년 전 형성된 운석충돌구라는 사실은 2020년 12월8일 지질학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곤드와나 리서치’ 온라인판에 논문 ‘한반도 최초 운석충돌구 발견’이 실리면서 인증받게 됐다.

이 논문 제1저자인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하 142m까지 5개 시추공을 뚫어서 조사했다. 이를 통해 지하 130m 지점에서 운석 충돌로 생기는 원뿔형 암석 구조인 ‘충격원뿔암’을 발견했다. 충격원뿔암은 운석 충돌 때 발생하는 강한 충격파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운석 충돌의 대표적 증거로 꼽힌다.

또 지하 142m 지점에서 평면변형구조를 발견했다. 이는 석영 광물 입자가 충격파로 녹았다가 다시 굳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 역시 운석 충돌의 중요한 증거이다. 충격원뿔암과 평면변형구조가 모두 발견됨으로써, 적중·초계 분지가 운석충돌구로 확인된 것이다.

현재까지 관련 학계 인증을 받은 운석충돌구는 전세계에 202개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운석충돌구로 인증받은 것은 2010년 발견된 중국 랴오닝성의 슈옌 운석충돌구에 이어 합천 운석충돌구가 두번째이다. 규모는 지름 1.5㎞인 슈옌 운석충돌구보다 합천 운석충돌구가 훨씬 크다.

임재수 책임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만년 전에 형성된 합천 운석충돌구는 상당히 젊은 충돌구라고 할 수 있다. 충돌구 형성 당시 최소 반지름 100㎞ 이내 지역의 지형과 생태계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을 것이고, 한반도 남부지역 구석기인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관련 학계의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운석충돌구는 초고온·초고압으로 만들어진 지형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를 우주천문실험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도 합천 운석충돌구를 보존해야 할 지질 자산이자, 교육·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남 합천군은 ‘합천 운석충돌구’의 지질공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질공원은 사람과 동식물의 터전인 지질·지형·경관을 보존하려는 제도로, 국가지질공원과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지질공원이 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자연공원법을 개정해서 국가지질공원의 법적 체계를 갖췄다. 또 유네스코는 2015년 세계지질공원을 공식 프로그램으로 정했다.

지방자치단체가 환경부에 국가지질공원 후보지 신청을 해서 국립공원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의 평가와 환경부 지질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적합 판정을 받으면 국가지질공원 후보지가 된다. 이후 2년 동안 지자체가 관리·운영·관광·교육 등 필수조건과 이행조건을 완료하면, 환경부에 인증 신청을 할 수 있다. 지질공원위 현장실사·심의 등을 거쳐 통과하면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게 된다. 국가지질공원은 인증 이후 4년마다 조사·점검을 통해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고 1년이 지나면 세계지질공원 후보지 신청을 할 수 있다.

‘합천 운석충돌구’ 위치도.

현재 제주도, 울릉도·독도, 강원평화지역, 한탄강, 백령도·대청도, 고군산군도 등 16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이 가운데 제주도,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 전북서해안권 등 5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돼 있다.

합천군은 올해 12월 국가지질공원 후보지 신청을 해서 2028년 인증받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또 2032년까지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받을 계획이다. ‘합천 운석충돌구’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 동아시아에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유일한 운석충돌구가 된다.

이를 위해 합천군은 전시관·체험관 등을 갖춘 거점센터를 내년 상반기 초계면에 개관할 계획이다. 또 운석충돌구를 둘러싼 산을 종주하는 탐방로 정비를 최근 완료했다. 모두 7개 구간에 28.8㎞인데, 각 구간을 연결하는 도로까지 포함하면 전체 길이가 33㎞에 이른다.

김진형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합천 운석충돌구는 매력적인 우주관광 자원이자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관광 주제”라며 “국책사업으로 합천 운석충돌구의 관광 개발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민진 합천군 담당자도 “합천 운석충돌구를 지질공원으로 지정해 교육·관광 산업에 활용하면 생활인구 유입 등 지방소멸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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