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조은아]“차 없는 거리 500개 신설” 교통몸살 앓는 파리, 차 줄이기 실험

조은아 파리 특파원 2025. 3. 2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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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차 없는 거리’ 신설 찬반 논란
몽마르트르 주변 주차장 300곳 폐쇄… 보행자 전용 도로 500곳 추가
대기오염 줄이고 쾌적한 환경 조성
“차 없으면 불편” 주민 불만도 상당… 66% 찬성표 나온 투표, 참여율은 4%
교통 억제, 2선 파리 시장 인기에 타격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인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도로에 13일(현지 시간) 철제 구조물이 주차 공간을 막고 있다. 파리시는 주차 공간을 없애 진입 차량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 몽마르트르 언덕을 13일(현지 시간) 찾았다. 몽마르트르의 상징인 사크레쾨르 대성당 주변을 중심으로 기존에 주차장이었던 공간엔 철제 구조물이 들어서 있었다. 운전자들이 주차하지 못하게 아예 막아버린 것. 그러다 보니 성당 주변에서 열리는 행사 차량 등만 오갈 뿐 일반 차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주차 공간이 확 줄다 보니 차량 없이 무거운 짐을 손수 들고 언덕을 오르는 인부들도 보였다.》

파리시는 최근 몽마르트르 언덕 진입 차량을 줄이려 주차장 약 300곳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녹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차 없는 도로 만들기’, ‘녹지화’ 사업의 일환이다.

관광객들은 차가 없으니 통행하기 편해졌다며 환영한다. 프랑스인 관광객 다니엘 보조 씨는 “매일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이 하루 종일 찾아오니 차가 계속 들어온다면 우리가 제대로 구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 주거지역에 붙은 현수막. ‘몽마르트르는 분노한다. 불필요한 공사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하지만 언덕 위 주민들이 사는 건물 곳곳엔 ‘몽마르트르는 분노한다’, ‘파리시는 우리를 속이고 있다’란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태어나 40년을 살았다는 장 베즈마르 씨는 “나무를 심어 환경을 가꾸는 건 좋지만 주민들은 차 없이 출퇴근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지하철은 언덕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용하기 힘들고, 비싼 택시를 부르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 10년 넘는 ‘자동차와의 전쟁’

파리시의 차 없는 거리 정책은 몽마르트르 언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리시는 이미 몽마르트르 언덕을 포함해 약 300곳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했다. 앞으로 추가로 500곳을 더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도심 내 교통량을 줄여 대기오염을 해소하고 시민들이 통행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파리시가 교통 체증으로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워낙 관광객이 많은 데다 노후한 건물 공사로 도로 통행이 제한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파리에선 좁은 골목에 관광객, 차량, 공사 자재들이 뒤섞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교통정보 분석 기업 인릭스에 따르면 지난해 파리 교통 체증 시간은 97시간으로 추산됐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105시간), 미국의 뉴욕(102시간), 시카고(102시간), 영국의 런던(101시간) 등에 이어 6위였다.

이 때문에 중도 좌파인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2014년 취임 뒤 10년 넘게 ‘안티(anti) 자동차’ 정책을 내놨다. 센강 주변 일부를 보행자 전용 도로로 바꿨다. 파리시 도로 대부분의 차량 통행 제한 속도를 시속 30km로 낮췄다. 도심 내 진입 차량을 막으려 카풀 운전자를 위한 차선도 추가했다. 지난해엔 도심 일부 구역의 교통을 아예 제한했다.

이달고 시장의 끊임없는 ‘자동차와의 전쟁’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받았다. 대기 질 평가 기관인 에어파리프에 따르면 2013∼2023년 파리의 미세먼지 농도는 45% 감소했다. 특히 파리 주변인 일드프랑스보다 파리 도심에서 더 큰 감소세를 보였다.

시민들의 자동차 보유도 줄었다. 프랑스 일간 라크루아에 따르면 파리에서 자동차를 보유한 가구는 1990년 46%였지만 최근에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시민들은 자동차 대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66% “차 없는 거리 찬성” vs “시민들, 파리시 홍보에 참여 안 할 것”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 주민들 사이에선 반감이 크지만 파리 도심에 거주하는 시민들일수록 교통 억제 정책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파리시청 앞에서 만난 주민 카트리넬 불리쇼타 씨는 “파리 내에선 주차 공간을 찾기도 쉽지 않고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려 해도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쥐스틴 로스 씨는 “차를 없애고 도심을 녹지화하면 파리를 돌아다니기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며 정책에 찬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파리시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의식했고, 23일 차 없는 거리 정책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달고 시장은 소셜미디어에 “이번 투표를 통해 파리 시민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파리의 대응과 오염과의 싸움, 집 인근 생활환경 개선을 추진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며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파리시가 발표한 투표 결과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한 시민의 약 66%가 차 없는 거리 500곳 신설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파리시는 다음 달부터 구별로 차 없는 거리로 적합한 도로 5∼8곳을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앞으로 3∼4년에 걸쳐 완성한다는 목표다. 거리당 조성 비용은 약 50만 유로(약 8억 원)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이번 투표가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주민들은 필요성을 못 느끼고 무심하기만 한 정책을 파리시가 밀어붙이려 투표에 부쳤다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 139만1000명 가운데 겨우 4%인 5만6500명만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파리시가 이전에 실시했던 주민투표에 비해 현저히 낮은 투표율이다. 지난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주차요금 3배 인상에 대한 투표율은 5.68%였고, 개인 전기 스쿠터 이용 금지에 대한 투표율은 7.45%였다.

파리시 의회의 우파 정치그룹인 ‘샹주 파리’의 넬리 가르니에 의원은 AFP통신에 “파리 시민들은 파리시의 홍보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투표 과정에서 어떤 거리가 차 없는 거리로 바뀌는지 등 자세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투표가 끝난 뒤에야 시가 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적합한 도로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은 본인이 사는 지역의 도로가 영향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채로 투표를 해야 했다.

● 파리 시장도 정치적으로 타격받아

자동차 줄이기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계속되다 보니 이달고 시장도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사실 이달고 시장은 해외에선 인기가 많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2월 이달고 시장을 그해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명 중 한 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 명단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메달을 여러 개 딴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등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적 평판과 달리 국내에선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르몽드는 “이달고 시장은 프랑스에서 인기가 없다”며 “지난해 12월 발표된 정치인 지지율 순위에서 이달고 시장은 최하위를 차지했다”고 짚었다. 자동차 억제 일변도 정책 탓에 이달고 시장은 ‘독불장군’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프랑스 시장조사기관 입소스의 브리스 탱튀리에 부소장은 르몽드에 “이달고 시장은 파리 시민들의 감정을 무시하고 동정심조차 갖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린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며 “엄청난 수준의 적대감을 낳았다”고 평했다.

이미 2선을 달성한 이달고 시장은 내년에 열릴 시장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지난해 11월 말 선언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친환경 정책을 중시하는 ‘녹색 정치’는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프랑스는 “이달고 시장은 라파엘 글뤽스만 유럽의회 의원과 함께 사회적, 민주적, 생태적 세력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 한다”고 소개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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