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반드시 지켜낸다”…교대 인력 없이 밤샘 사투

백경열 기자 2025. 3. 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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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안면 백자마을 진화 현장 가보니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서 25일 마을로 최근접한 불길의 확산을 막은 한 소방대원이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벗어놓은 소방복.

25일 오후 1시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마을 인근 산에서 바람을 탄 불길이 밭과 민가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의용소방대 등 진화 인력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시뻘건 불길이 산 능선을 따라 계속 밀려 내려왔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산의 형체를 가렸다. 소방헬기가 날아와 연신 물을 뿌렸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과 안계리에서 지난 22일 발생한 불은 의성군 옥산면·점곡면을 거쳐 결국 안동까지 넘어왔다. 강풍을 타고 북동쪽으로 20㎞ 이상 불길이 이동했다. 안동 다른 지역으로 불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소방당국이 최후 저지선을 꾸린 곳이 이곳이다. 40가구, 70여명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70대 이상이다. 전날 밤에도 불길이 마을 코앞까지 번졌지만 진화대가 사력을 다해 막았다. 물을 맞은 불길은 사그라진 듯싶다가도 강풍이 불면 ‘좀비’처럼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이 마을 김영화씨(74)는 전날 황급히 몸을 피했다가 충혈된 눈으로 다시 마을을 찾았다. 그는 “지금 잠이 오게 됐나. 걱정이 돼서 1시간도 못 잔 것 같다”면서 “바람이 많이 부는데 언제 마을을 집어삼킬지 몰라 마음이 안 놓인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과 강원 춘천 등에서 지원 온 소방대원들은 15m 소방호스로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불을 향해 물을 뿌렸다. 한 소방관은 “바람이 거세지면서 전날 진화가 이뤄진 지역 곳곳에서 불길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이곳을 반드시 지켜낸다는 각오로 최대한 접근 가능한 곳까지 진화 인력이 들어가 불을 끄고 있다”고 했다.

오후가 되자 소방대원 9명이 마을회관 쪽으로 걸어왔다. 지쳐 보였고, 소방복과 얼굴 곳곳이 검게 그을렸다. 이들은 마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산불 확산을 막은 ‘별동대’였다. 2시간가량 특별 임무를 소화하고 식사를 하러 잠시 들른 것이었다. 이들의 점심은 밥에 만 어묵국과 미역국, 컵라면 등이었다. 대원들은 바닥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허기를 채웠다. 교대 인력이 없어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진화 작업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안동시 소속 산불예방진화대원 문동주씨(56)는 “전날 오전 10시쯤 투입된 이후 밤새 대기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쪽잠을 1시간 정도나 잤을까 모르겠다”며 “산청에서는 동료들도 희생됐는데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백자마을 주변에만 차량 66대, 인력 273명을 집중 배치했다. 안동시 공무원 427명과 헬기 10대도 투입됐다. 요양원 등 취약시설에 머물던 208명과 산불 위험 반경에 있는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만휴정 등 중요문화유산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산불특수대응단 등 전문 인력이 전진 배치됐다. 목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방염포를 덮고 물을 뿌렸다. 소방청은 “하회마을 등 주요지역 방어를 위해 대용량포방사시스템을 전진 배치했고, 대용량 및 원거리 방수 가능한 고성능 화학차를 선별 배치했다”고 밝혔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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