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안세영 신발과 라켓, 못 바꾸나 안 바꾸나 그냥 가나
벌써 7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개인 스폰서 허용 문제입니다.
지난해 8월 안세영(23·삼성생명)이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폭탄 같은 선언을 던져 파문이 커졌습니다. 진상 조사에 나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국가대표 선수가 라켓, 신발 등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용품을 각자 선호하는 브랜드와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도록 조처했습니다.
하지만 안세영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한배드민턴협회(회장 김동문)의 공식 후원사의 제품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협회 측에서는 아직 공식 후원사와 기존 계약이 유지되고 있어 다른 브랜드를 쓸 수 없도록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동문 회장은 대표선수들과 면담을 통해 협회 재정난을 이유로 대표선수들에게 일정 부분 양보와 희생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존 스폰서 용품을 사용하고도 안세영은 2025년 4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협회가 스폰서 전면 개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대표선수들은 반발 움직임까지 보입니다.
<사진> 전영오픈 남자복식에서 우승한 삼성생명 서승재와 김원호가 탄탄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요넥스 제공
최근 삼성생명(대표 홍원학) 소속의 안세영을 비롯해 서승재, 김원호, 김혜정 등 국가대표 선수 4명은 부모 명의로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서신에 따르면 지난 2024년 10월 31일 자 문체부 발표를 통해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 개인 후원(라켓, 신발)에 대한 부문이 허용됨을 인지한 뒤 협회의 방침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무런 발표가 없었다며 질의서 발송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선수나 부모들에게 개인 후원 계약 시행 시기를 답변해 달라고 요청하며 계약 지연으로 인한 계약금 및 후원금 지체에 대한 염려도 고민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안세영과 서승재-김원호는 전영오픈에서 나란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안세영은 여자 단식에서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고, 서승재와 김원호는 남자복식 금메달을 합작했습니다. 이같은 상승세로 몸값이 하늘을 찌르게 됐습니다.
질의서를 보낸 데 대해 한 배드민턴 전문가는 “국가대표 간판선수들이 이미 개별적으로 용품업체들과 계약과 관련한 접촉을 했거나 러브콜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협회의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진> 배드민턴 남자복식 기대주 김원호와 어머니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 딸 김아영도 배드민턴 선수다. 테크니스트 인스타그램
이 네 명의 선수 가운데 김원호와 김혜정의 어머니는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로 셔틀콕 2세입니다. 김원호의 어머니인 삼성생명 길영아 감독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현 협회 김동문 회장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김원호는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정나은과 혼합복식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김혜정의 어머니 정소영은 배드민턴이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1992 바르셀로나 대회 때 황혜영과 짝을 이뤄 여자 복식 금메달을 땄습니다.
어머니 세대가 국가대표였을 때도 개인 스폰서 계약은 맺을 수 없었습니다. 자식만큼은 개별 후원을 통해 명예와 함께 부(富)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건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배드민턴협회가 문체부 발표를 즉시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돈’ 문제입니다. 협회의 기존 후원사는 대표선수 개별 후원이 이뤄지면 기존 계약금에서 대폭 줄어든 금액을 후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뛰는 시카고 불스에 거액을 후원하던 N이라는 용품업체가 있다고 칩시다. 애초 조던을 비롯해 모든 선수가 N사 용품을 사용하도록 계약을 맺은 것이지요. 그런데 조던만 A사 농구화를 신는다면 N사로서는 굳이 시카고에 거금을 투자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배드민턴협회는 기존 용품 계약업체의 후원 규모가 줄어들면 다른 스폰서를 유치하고 문체부의 지원도 기대했으나 이도 저도 여의찮게 되자 과거처럼 대표선수들이 참아줘야 주니어 선수들도 육성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삼성생명 소속 대표선수들이 단체행동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다른 팀까지 확산할 조짐까지 있습니다.
<사진> 전영오픈 결승에서 보여준 세계 랭킹 1위 안세영의 여유있는 플레이. 요넥스 제공.
일단 배드민턴협회로서는 숨통을 틀 여지가 생겼습니다. 문체부가 24일 ‘전략종목 육성’ 차원에서 배드민턴을 비롯한 사격, 수영, 양궁, 펜싱 등 5개 종목단체에 연 최대 10억 원씩 최대 4년 지원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지원 사업을 통해 종목단체의 자생력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다시 ‘공’은 배드민턴협회로 넘어갔습니다. 협회 이사 경험도 전혀 없이 협회를 이끌게 된 김동문 회장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일부 측근 인사들의 의견만 청취하거나 특정 인물을 특정 자리에 앉히려고 밀어붙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규 스폰서 유치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개나 딴 김동문 회장의 ‘라켓’이 절묘한 포인트로 연결될 지 궁금하네요.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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