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꿀 빨고 청년은 독박?···전문가들 "청년에 긍정적인 측면도 봐야"
보험료율 올라 재정 고갈 15년 미뤄져
"과도한 정쟁화, 제도 안착·신뢰 방해"
18년 만에 성사된 연금개혁을 두고 30·40대 정치인과 차기 대권 주자들이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기성세대 협잡이자 미래세대 약탈”(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부모가 자식의 저금통을 털어 쓰는 격”(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86세대는 꿀을 빨고 청년세대는 독박을 쓴다”(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주로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연금개혁에서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 방안이 좌절되면서 청년층의 불만을 사고 있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청년세대에 불리하지 않으며, 정치인들이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높아진 소득대체율, 젊은 세대에 더 이익 측면
여야 합의로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모수(母數)개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보험료율(내는 돈)은 현행 9%에서 매년 0.5%포인트씩 8년간 인상돼 2033년 13% 도달 후 유지된다. 2028년 40%를 목표로 매년 0.5%포인트씩 인하됐던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올해 41.5%였으나 내년 43%로 오른다.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다.
인상된 소득대체율은 청년층에 혜택이 더 크게 돌아간다. 소득대체율 43%는 내년 이후 보험료를 내는 기간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50세 직장인이라면 연금 가입 상한 연령인 59세까지 앞으로 남은 10년 동안만 43%가 적용되고, 이전 가입기간은 그 당시 소득대체율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된다.
은퇴를 앞둔 59세는 딱 1년만 43%가 적용돼 혜택이 거의 없다. 반면 30세는 30년간, 20세는 40년간 소득대체율 43%가 적용된다. 가입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청년일수록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험료 납부가 끝나 연금 수급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보험료-소득대체율 인상 시기, 장년층 이익이지만
다만 보험료율은 8년에 걸쳐 천천히 인상되는 반면 소득대체율은 내년 납부하는 보험료부터 바로 적용되기 때문에,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장년층이 적은 돈을 내고 그 기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도 청년층도 8년간 적은 보험료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인 데다, 장기적으로 보면 내는 돈에 비해 더 많이 받아간다. 월 309만 원(가입자 평균 소득)을 버는 직장인이 내년부터 40년간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25년간 수급한다고 가정할 때 총 보험료는 1억8,762만 원, 총 연금액은 3억1,489만 원으로, 받는 돈이 1억2,000만 원 이상 많다.
물론 연금 도입 초창기에 소득대체율이 70%에 이르렀던 과거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현재 청년세대가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을 감안해, 청년들이 이해할 측면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오히려 연금으로 노후 소득 보장성을 강화해야 청년들이 부모를 책임지는 ‘사적 부양’ 부담이 경감된다는 의견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보험료 인상 외에 궁극적으로 미래세대 부담을 더는 다른 방안은 없다”며 “불필요한 정쟁화는 제도 안착이나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금 고갈 대비하되 너무 걱정 말아야
연금 재정 고갈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연금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기가 2056년에서 2071년으로 15년 늦춰졌다. 재정 안정성이 높아졌다는 건 청년세대를 위한 개혁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약속도 법에 명시했다.
2071년 기금 소진 예측은 기금운영수익률을 5.5%로, 다소 보수적으로 상정했을 때다. 1988년 기금 설치 후 연평균 수익률은 6.82%, 지난해 연간 수익률은 15%였다. 수익률이 올라가면 연금 고갈이 더 늦춰진다. 하지만 지금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기금 소진 이후 청년들은 30%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오히려 연금개혁을 안 하는 게 이득이지만 연금 지속가능성 확대에 동참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은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주는 개혁을 두고 청년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석 교수는 이어 “모수개혁은 구조개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지 그 자체로 완결판이 아니다”라며 “연금개혁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계속 고치고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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