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우리 동네 아저씨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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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는 자주 갈 수 없는 그 '우리 동네'에,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동네의 봉사단체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우리의 사무실이 자신의 사무실인 것처럼 척척 걸어들어와 탕비실에서 물건을 찾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기도 하며,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별이 된, 우리 동네 아저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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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 | 소설가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른 매화꽃 벌써 떨어지고, 산수유 노랗게 피어났다. 이렇게 화창한 날이 되면, 너무나 반짝여서 눈이 시릴 정도로 좋았던 어떤 날들을 까닭 없이 떠올리곤 한다. 가장 특별하거나 뜻깊은 날들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이렇게 오래 기억될 줄 몰랐던 어떤 순간들이 벼락같이 찾아와 마음을 내려앉게 한다. 어쩌면 마음의 강을 떠돌던 무의식의 편린들이 무슨 연유로든지 기슭에 떠올라 그대로 박혀버린 것이리라.
살아본 적은 없지만, 살았던 것만큼 자주 오가던 동네가 있다. 마음을 기울이고 정을 주었으니 그곳을 ‘우리 동네’라고 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자주 갈 수 없는 그 ‘우리 동네’에,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도 있거니와, 이 아저씨란 호칭은 그의 나이나 외형을 떠나, ‘키다리 아저씨’와 같이 호의를 담은 것이다.
그는 참으로 목소리가 컸다. 키는 자그마했지만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는 그의 호탕한 목소리는 우리를 곧잘 놀라게 했다. 동네의 봉사단체 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우리의 사무실이 자신의 사무실인 것처럼 척척 걸어들어와 탕비실에서 물건을 찾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기도 하며,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농담을 좋아하는 분이었으나, 봉사에 있어서는 농담이 없었다. 그는 아주 긴 시간 봉사단체에 속해 있었고, 어떤 봉사의 현장에도 빠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단지 꽃을 심고 나무를 자르더라도 어디에선가 나타나 이런저런 말을 얹고 손을 보탰다. 봉사단체들이 모이거나 행사가 있거나 하다못해 동네 누구 집에 일이 생겨도 나타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야유회, 체육대회같이 신명 나는 일에는 두말할 것 없다. 말하자면, 그는 동네 토박이였고, 좋은 봉사자였고, 유쾌한 ‘오지라퍼’였다.
동네 문화는 고사하고 이웃사촌의 문화도 사라져 가는 시대다. 그럼에도 그와 같이, 여전히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나는 그런 따뜻한 분들을 무척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아무 실익도 없는 봉사를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연휴를 통째로 내어 기부 행사를 하기도 하며, 동네 어르신들을 챙기거나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다. 추운 날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땡볕 아래서 거리의 잡풀을 뽑기도 하면서, 이 세상이 여전히 살아갈 만한 곳이게 한다. 나는 그분들을 진정 좋아했고 마음 깊이 존경한다. 아저씨 또한 그분들 중 한 분이었기에, 이 찬란한 봄날 콧등 시큰하게 기억해 보는 것이다.
그와의 이별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떠나기 일주일 전 걸려 온 전화가 마지막이 되었다. 너무 슬픈 것은 슬프다 말하기 어렵다. 다만 묵묵히 이별을 견디는 것이다. 그를 좋아하던 사람도, 좋아하지 않던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들 저런들 아무 상관 없다고, 그는 너털웃음을 지을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코코’라는 영화에선 우리가 망자를 기억하는 한, 그의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고, 가끔은 살아있는 듯 착각도 하면서, 그가 떠난 먼 길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별이 된, 우리 동네 아저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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