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내란’ 15번 언급에도 계엄 위법성 판단 안해… 尹선고방향 안갯속

김태언 기자 2025. 3. 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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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을 앞두고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한 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2025.3.24. 공동취재

헌법재판소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 소추 사유 중 하나인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내란 행위에 대한 공모·묵인·방조에 대해 “적극적 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자료는 없다”고만 판단했다. 계엄 선포의 위법성이나 국무회의의 적법성 등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한 총리 소추 사유 중 ‘내란 공모’는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와 직접 연관된 부분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쟁점으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헌재가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 선고기일과 선고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계엄 위법성’ 판단하지 않은 헌재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2025.3.24. 대통령실사진기자단

40쪽 분량의 한 총리 탄핵심판 결정문 중 ‘내란 행위’에 대한 판단은 1쪽에 불과했다. ‘내란 행위’ ‘내란 수사’ 등 내란 관련 언급도 15번만 나왔다. 우선 헌재는 한 총리의 사전 공모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한 총리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불과 약 2시간 전 무렵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듣게 됐을 뿐 그 이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할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국무회의에 대해서도 헌재는 “한 총리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회의 소집을 건의한 사실은 인정되나 여기서 더 나아가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하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이후 국무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는 소추 사유도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헌재는 한 총리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봤고, 국무회의 성립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도 확정하지 않은 것이다. 한 총리의 ‘내란 공모’ 사유가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 사유와 연관돼 한 총리에 대한 헌재 결정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방향을 유추할 수 있을 거란 법조계 전망이 무산된 셈이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재가 윤 대통령 사건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으로 보인다”며 “한 총리가 계엄 선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본 이상 계엄의 적법성을 정면으로 다룰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절차적 쟁점 판단도 尹 선고 때 나올 듯

법원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지난 1월 26일 구속기소 된 지 41일 만, 1월 15일 체포된 후 52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2025.3.8. 뉴스1

헌재가 이날 12·3 비상계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서 비상계엄의 첫 사법적 판단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때 다뤄지게 됐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형법상 내란죄 소추 사유 철회’, ‘검찰 수사기록 증거 채택’ 등 절차적 쟁점에 관한 판단도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때 내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회 측은 한 총리 탄핵심판에서도 “헌법 위반 여부만 따지겠다”며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철회했다. 다만 한 총리 측은 ‘내란죄 철회’를 각하 사유로 주장하지는 않았고, 헌재도 이날 선고에서 별다른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이 “내란죄는 탄핵소추안의 70% 이상을 차지해 이를 삭제한 소추안은 중대한 사정 변경”이라며 각하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 선고 때는 헌재가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 탄핵심판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기록이 증거로 채택됐는데, 헌재는 이에 대한 판단도 내놓지 않았다. 윤 대통령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은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부분도 헌재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가 계엄의 위법성과 절차적 쟁점 등을 모두 세세하게 따지기 위해 윤 대통령 선고를 다음 달로 미룰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재판관들 사이에서 계엄 선포 및 국무회의의 위헌·위법성에 대한 판단이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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