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숲’이라더니, 양수댐 짓는다고 11만여그루 나무 벤다

김양진 기자 2025. 3. 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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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잣 생산지인 풍천리에 들어서는 양수발전소… 숲 망가뜨리고 생계 위협에 주민들은 반발
2025년 3월14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이곳에서 양수발전소가 완성되면 기존 도로가 지나가던 계곡은 물에 잠기게 된다. 이설도로 공사는 기존 깊고 우거진 숲을 베어내면서 진행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5년 3월14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가리산(해발고도 1050m) 서남쪽 골짜기를 따라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던 옻샘계곡에 흙탕물이 흘러내려왔다. 흙먼지를 풀풀 일으키며 굴착기들이 산을 깎고 있고, 12t 덤프트럭들이 베어진 나무를 부지런히 실어나르고 있었다. 공사장 한쪽에는 ‘대한민국 국유림 100대 명품숲’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불안하게 서 있었다.

“이거 저희가 세운 거 아닙니다. 나라에서 세운 거지.” 풍천2리 주민 곽인섭(68)씨가 이 모순된 현장을 꼬집었다. 이 숲에서 “지난가을·겨울 내내 베어낸 나무들을 가득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다녔다”고 주민 안옥순(72)씨가 귀띔했다.

이곳은 가리산과 대룡산(899m) 골짜기를 따라 춘천시와 홍천군을 잇는 56번 국도의 일부분(3.1㎞)에 대한 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2026년 1월 착공 예정인 양수댐 건설공사(공사비 1조4천억원)로 이곳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2025년 3월14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이곳에서 양수발전소가 완성되면 기존 도로가 지나가던 계곡은 물에 잠기게 된다. 이설도로 공사는 기존 깊고 우거진 숲을 베어내면서 진행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0대 명품숲’ 나무 베고 짓는 댐

“수십 년째 누가 건드린 것도 없이, 이 산은 그대로예요. 그런데 생태자연도 1등급이라고 보존가치가 높다고 했던 산을 2~3등급이라고 바꿔놓더라고요.” 풍천2리 마을 총무 이창후씨가 벌거숭이가 된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2019년 3월 풍천리는 고자리·산막리(충북 영동군), 도평리(경기 포천시)와 함께 양수댐 사업지로 선정됐다. 5개월 뒤 시행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홍천군은 환경부에 ‘이곳이 그렇게 가치 있는 산이 아니다’라며 ‘생태자연도 이의신청’을 했다. 야생생물, 식생, 지형 등 수많은 정보를 종합해서 개발이 금지되는 엄격한 보존 지역인 ‘1등급’으로 유지됐던 곳이 3일 동안 조사한 이후 2~3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주민들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산양, 수달, 하늘다람쥐 등이 이곳에 서식한다는 사실을 사진과 동영상 등의 근거로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댐 건설에 또 다른 제동장치인 산지전용(산을 개발하는 일) 문제는 산림청이 해결사로 나서줬다. 2023년 1월 산림청은 ‘규제혁신 추진 방향’을 통해 ‘양수댐 건설’을 꼭 집어서 ‘산지전용 입지 기준을 완화한다’고 발표했고 관련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가리산은 경사도가 가파르고 숲이 깊게 우거진 산이다. 이런 산은 특유의 환경에 적응한 야생동식물 서식지인데다 환경훼손 위험, 산사태 우려가 커서 벌목 등 산림 개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한수원 자료를 보면, 2028년 3월까지 진행되는 도로 이설공사로 7385그루, 2032년 12월까지 이뤄지는 댐 공사로 11만7336그루의 나무가 베어진다. 댐 공사만으로 훼손되는 가리산 깊은 숲 면적은 10.41㎢(유역 면적, 해발고도 300~700m 일대)에 이른다.

“공사하면 안 되는 곳에다 환경부·산림청 등 관계 기관들이 각종 특혜를 줘서 ‘합법’을 만들어주고 공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거죠.” 박성율 목사(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가 설명했다. “발전소·송전시설·변전시설은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해 진행되는 국가사업이고 국가기간산업이라는 틀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이 프레임이 굉장히 강해서 ‘전원(발전시설) 개발사업은 못 막는다’는 웃긴 신화가 형성돼 있어요. 터전을 빼앗기는 주민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이해할 때까지 소통해야 함에도 ‘너희들은 그냥 이거 받아들이면 돼’라는 식으로 폭력적, 강압적, 개발 위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거죠.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로 주민들이 쫓겨나는데 이주대책이나 보상 문제는 최종 사업 결정(실시계획인가) 뒤에야 얘기하도록 하고 있어요. 앞뒤가 바뀌었죠. 개발 만능주의 시대에 절차적 정의는 무시하고 국책사업을 빨리 진행되게 하려고 만들어진 법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거예요.”

정부·지자체 등 관계 기관의 ‘규제 완화’

양수댐이 건설되면 풍천리 주민 51가구가 수몰되고, 남는 100가구가량은 10년 공사 (공사 후 담수 기간 3년 포함)를 견뎌내야 한다. 홍천군의 양수댐 사업 선정 과정부터 7년 넘게 매일같이 선전전을 하고, 매주 홍천군청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 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다. 2024년 7월15일 홍천군청에서 열린 ‘끝장 토론회’에 이어 일주일째 농성을 벌이던 60~80대 주민 7명은 경찰에 연행돼 법원에서 벌금 200만~300만원씩 총 18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토론회 과정에서 홍천군이 ‘양수댐 사업신청을 취소해도 설치인가 이전이라 홍천군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법률자문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자 주민들이 “우리를 속여왔다”며 반발이 격렬해졌기 때문이다. 홍천군은 그간 주민들에게 “이미 시작된 사업이라 홍천군이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터다. 풍천2리 부녀회장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안옥순씨가 말했다. “300만원이면 쌀이 15가마니예요. 이런 동네에 그런 돈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뭘 부수길 했나요? 경찰, 군청 직원 250명이 와서 사지를 바짝 들어서 끌고 나갔어요. 우리 앞에서는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공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뒤로는 댐 공사에 필요한 절차를 계속 진행하는데, 주민이 할 수 있는 건 뭔가요?” 이에 대해 홍천군 담당자는 “아직 양수발전소 실시계획인가가 나기 전이라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인가가 나는 대로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50살쯤 됐을 텐데…. 잣나무는 40~50살이 되면 잣이 많이 달리면서 힘을 쓰기 시작하죠. 100살이 넘어서까지 잣을 달아요.” 잣 채취 일을 하는 이창후씨가 이설공사 현장에서 쓰러진 잣나무를 가리키며 안타까워했다. 2020년 기준 홍천군 잣 생산량은 122만㎏(전국 생산량의 62%)에 달하는데, 가리산이 그 핵심 생산지다. 풍천리 주민 80%가량이 가리산에서 잣 생산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가리산은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이 잣 수백㎏은 쉽게 딸 수 있다. 그런데 양수댐 공사로 사라지는 숲의 상당 부분이 잣나무 숲이다. 더욱이 양수댐이 건설되면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지고, 기온이 올라갈 수 있어 잣 생산에 치명타가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잣은 우리 동네가 먹고사는 쌀독이에요. 1년에 많을 때는 20억~30억원도 수익이 난 적이 있어요. 잣은 홍천이고, 홍천에서는 풍천리예요.” 주민 박시현(82)씨가 말했다.

이날 마을회관 옆 비닐하우스에 모인 주민들도 저마다 맺힌 억울함, 분노, 걱정을 토해냈다. “댐이 지어지면 잣이 어떻게 되는지 군에서 연구해보고 양수댐을 짓든지 해야지, 멋대로 결정하고 알아서 살라 하면 되는 건가요?”(이창후씨) “주민들이 찬성·반대로 나뉘어서 7년째 갈라져서 서로 욕하고 싸워요. 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는 게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요?”(72살 주민 엄성철씨) “벌써 산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았는데, 이걸 10년을 더 한다고 해요. 그래놓고는 마을에 운동기구를 놓아주고 파크골프장을 만들어준다고 해요. ‘보상을 바라고 저런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보상을 원하고 무슨 시설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살던 대로 살겠다는 거예요.”(박시현씨) “마을 가운데 찻길로 나무를 실은 큰 트럭이 쌩쌩 지나가는데 바람이 엄청나요. 노인들은 길가에 서 있다가 막 자빠져요.”(73살 주민 박영식씨) “한수원과 군에서는 양수댐을 만들어서 경제 활성화, 관광 활성화, 주민 피해 최소화를 한다고 해요.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인 것은 밝히지도 못해요. 양수댐이라는 게 국가에 도움이라도 된다면 모르겠어요. 그것도 아니잖아요.”(곽인섭씨)

2025년 3월14일 강원 홍천군청 앞에서 풍천리 양수발전소 반대 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비효율로 20년간 신규 착공 없던 양수발전소

한수원이 ‘양수발전소’ ‘천연 축전지’라고 소개하는 양수댐은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용하는 수력발전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하부·상부댐 2개를 만든 뒤 야간에 전기를 써서 인위적으로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낮에 낙차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발생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수요가 많을 때 공급하는 구조다. 그런데 물을 끌어올리는 데 전기를 100% 써도, 그로 인해 생산되는 전기는 70%대 수준이다. 현재 경기 청평, 경남 밀양, 전북 무주, 경남 산청, 강원 양양, 경북 청송, 경북 예천 7곳(16기)에 양수댐이 설치돼 있는데, 해마다 1천억원 이상 적자를 내는 까닭이다. 2020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한수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4~2019년 양수발전소 적자 규모는 7736억원에 이르고 하루 평균 발전시간도 2시간54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 때문에 1996년 입지가 결정된 예천양수댐(2002년 착공) 이후 20년 동안 신규 착공이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윤석열 정부 들어 총 9개 지역에서 양수댐 건설이 다시 추진됐다.

한수원 홍천양수사업소 담당자 ㄱ씨는 이날 한겨레21을 만나 “주민 협의는 홍천군 쪽에서 담당한다. 양수발전소는 한번 가동하면 풀로 가동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 가동 특성 때문에 필요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 중 사용이 적은 밤에 아깝게 버려지는 전기를 양수발전소로 가져와 물을 끌어올린 뒤 피크시간대에 물을 흘려보내 전기를 만드는 일종의 천연 축전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목적상 적자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가적으로 보면 꼭 필요한 시설이라 공기업이 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수발전이 낙차를 이용하는 구조적인 특징 때문에 산 정상부에 들어설 수밖에 없어 대규모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점, 또 물을 오랫동안 가둬야 하는 방식 때문에 그 피해가 미래 세대에 대물림된다는 점은 쉽게 간과된다. 정준화 양양군번영회장은 2006년 준공된 양양 양수발전소의 피해가 여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양수댐은 물을 가두기 때문에 썩은 물 찌꺼기가 생깁니다. 이걸 방류하니 그때마다 양양 남대천 하류까지 썩은 찌꺼기로 생태계가 교란되고 하천 바닥의 돌을 들춰보면 하나하나 시꺼멓습니다. 한수원이 거액을 들여 대책을 몇 차례 세웠지만 피해는 여전합니다. 엄청나게 많았던 뚜거리(꾹저구), 은어 같은 민물고기들도 보이지 않아요. 저 댐이 있는 이상 영원히 이럴 겁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은 남는 전기 활용 정책 기조를 기존 양수발전소 대신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등으로 바꿨다. 일본도 기존 댐을 이용한 양수식 발전으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BESS 도입은 기술력 부족의 이유로, 기존 댐 이용은 기관 간의 협의 문제 때문에 외면받는다. 홍천군 주민설명회(2024년 7월)에서 한 주민이 “(가리산 북쪽) 소양강호를 이용해 양수발전을 하면 안 되느냐”고 묻자 한수원은 “소양강댐은 관리 주체(수자원공사)가 달라 법리적 문제가 있어 어렵다”고 답했다.

박성율 목사는 “환경파괴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하기보다 법령을 바꿔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밀어붙이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양수발전소 사업지가 주민 설득, 토지보상 문제 때문에 산촌·농촌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라며 “농촌 지역 농지·대지는 헐값으로 판정되고, 그 돈으론 원주민들이 이전처럼 살 수 없다. 헌법상 계약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받는다”고 꼬집었다. 서울 사람들이 쓸 전기 때문에 시골 지역이 피해를 보는 ‘에너지 정의’ 문제를 제기한 건데, 이에 대해 한수원 담당자 ㄱ씨는 “민원 이해관계, 보상 문제 등 비용 문제가 (양수댐) 입지 선정에서 중요한 문제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정의는 어디에?

수몰 예정지에 사는 김옥배(81·풍천1리)씨는 생계를 좇아 홍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살다 풍천리에 뿌리를 내렸다. “쌍자리골에 살다가 화전 정리(1970년대 국가 주도로 화전민을 강제로 집단이주시킨 사업)를 한다고 해서 쫓겨나 풍천리에 온 게 53년 전이에요. 여기서 아이 다섯을 키웠어요. 산에서 나물 뜯고 약초 캐고, 남의 농토 부쳐서 살았죠. 도지(논 빌린 대가로 내는 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옥수수 외상으로 사다가 정부미를 사서 먹였죠. 지금 집은 허가가 안 난 집이라 보상이 안 된다고 하고 땅만 60평인데, 이게 얼마나 하겠어요. 이주비라도 주면 고맙죠. (수몰되지 않는) 풍천2리 회관 쪽으로 가서 살고 싶어요. (양수댐) 반대하지요. 그래도 찬성하는 주민들 미움 받을까, 말은 안 해요. 서낭당에 음식 해놓고 실이랑 문창호지랑 새로 해다가 서낭님께 매일 치성드려요. 마을 사람들 몸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요.”

김 할머니 치성은 올해가 마지막일까. 양수댐 공사가 시작되면 김 할머니가 살던 집도, 서낭당도, 서낭당 주변 아름드리 돌배나무·물푸레나무 신목(神木)들도 모두 수장된다. 도시 사람들 편안하게 전기 쓰게 해준다며 벌어지는 일이다.

홍천(강원)=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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