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민 살어질까?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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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감을 마치고 회사 밖을 나가는 새벽, 전혜원 기자(거의 늘 마지막 마감자이다)에게 말했다.
"지난 2주간,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
시사주간지를 만들면 삶의 단위는 주 단위로 쪼개진다.
그렇게 숨 가쁘게 한 주 한 주 흘러가다 어느 순간, 딱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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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감을 마치고 회사 밖을 나가는 새벽, 전혜원 기자(거의 늘 마지막 마감자이다)에게 말했다. “지난 2주간,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
시사주간지를 만들면 삶의 단위는 주 단위로 쪼개진다. 세상의 흐름도 일주일이라는 틀을 통해 정의된다. 이를테면 지난해 12월3일부터 시간은 이렇게 흘러왔다.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주,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된 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주, 서부지법 폭동이 일어난 주, 윤석열이 체포된 주, 윤석열이 석방된 주···.
그렇게 숨 가쁘게 한 주 한 주 흘러가다 어느 순간, 딱 멈췄다. 윤석열 탄핵심판 변론 절차가 마무리되었을 때였다. 선고를 앞두고 모두가 숨죽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윤석열이 탄핵된 주’를 채울 여러 계획을 잡아놓고, 많은 이들이 다소 멍하게 기다렸다. 그게 1주, 2주를 지나 3주 이상에 다다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더 이상 참지 못한 숨이 터져 나온다. 모두 피로해졌다. 기자들 사이 탄핵 선고에 관한 온갖 ‘받(미확인 정보 지라시)’이 떠돌다 이제는 그조차 지쳐서 잠잠해질 지경이다. 뉴스 제목 앞머리에 뜨는 ‘속보’ 두 글자만 봐도 쿵쾅대던 가슴은 양치기 소년에게 질린 마을 사람들처럼 어느새 둔감하고 심드렁해졌다.
주중 선고를 기다리다 ‘애순이(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이름)’나 보고, 또 선고를 기다리다 ‘금명이(애순이의 딸 이름)’에 몰입하면서 삶의 한 토막, 두 토막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번 주도 끝내 선고가 안 날 듯하니 또 〈폭싹〉 다음 4편에 초조한 주말을 의탁할밖에.
현실도피 하려 드라마나 보다가 또 슬퍼지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애순이는 1951년생, 관식이는 1950년생. 통계학적으로 일반화했을 때 그 부부가 지금 우리 곁에 살고 있다면 낮지 않은 확률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순이는 관식이가 사준 꽃 핀을 머리에 꽂고, 어쩌면 충무김밥 같은 걸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씩씩하고 앙칼지게, 관식이는 허리춤 높이 크로스백을 메고, 한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손에 태극기를 쥐고서. 한 사람의 세계관과 생애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과 정치사회적으로 동의하는 것 사이 간극이 얼마나 크고 막막한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재미난 드라마를 보면서도 현실도피에 실패하게 되는 시절이다.
‘살민 살어진다(살면 살아진다).’ 〈폭싹〉에 등장하는,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던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 순응, 인내, 팔자론으로 이어지는 이 말의 수동성과 보수성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참 내치기 어려운 문장이다. 돌멩이처럼 얹힌 게 있는 사람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고 염치없이 흘러가는 지금의 이 세월을 표현하기에, 이 말만큼 찰진 말을 또 찾기가 어렵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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