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밥이 끓는 동안
기자 2025. 3. 23. 20:57
밥이 끓는다 현재는 끓는 밥이다
배부르지 않다 맛볼 수도 없다
뚜껑을 열어볼 수도 없다
현자들은 현재만을 살라고 충고하지만
현재를 살아볼 도리가 없다
지금은 끓고 있을 뿐이다
끓고 있는 지금 내가 먹는 것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허공이다
허공만이 실재라는 듯이
현재는 허기다 주린 배로 사냥에 나선
피에 젖은 발톱이다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부러진 날개다
지금을 먹을 수 없다 죽을 지경이다
현재는 끓고 있는 창세기다
백무산(1955~)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밥이 끓고 있다. 한 톨의 볍씨가 밥상에 오르는 것은 온 세계가 함께 참여하는 일이자, 거대한 순환의 과정일 것이다. “현재는 끓는 밥”이라서, “배부르지 않다 맛볼 수도 없”고 “뚜껑을 열어볼 수도 없”다. 시인은 ‘현재성’ ‘지금, 여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밥’을 통해 되짚어보게 한다. 현자들은 “현재만을 살라고” 하지만, ‘지금, 여기’의 삶 자체가 지옥이다. 당장 먹고살 수가 없다. 소수가 다수의 삶을 볼모로, 과거로 끌고 가려고 한다. 지금 시인이 먹고 있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허공”이다. “허공만이 실재”라는 듯.
끓고 있는 것은 밥만이 아니다. 오늘 광장은 끓고 있는 현재이다. 모두가 “죽을 지경”이지만, 죽을힘을 다해 광장을 만들고 장엄한 빛들로 채워가고 있다. 현재는 계속해서 “끓고 있는 창세기”다. 일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은 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힘이자 순환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뜨거운 현재이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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