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유튜브 촬영까지…'스몰 브랜드' 인큐베이터로 뜨는 동대문
(上) 옷 떼다 팔던 시대는 끝…'K패션 성지' 생태계 바뀐다
공유 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
원단 구입 쉽고 촬영 장소도 지원
"패션 디자인에 최적화한 인프라
동대문 같은 곳 세계 어디도 없어"
MZ 취향 맞춘 디자인으로 승부
美 진출 2000아카이브스 등 탄생
"뛰어난 독창성, C커머스 못따라와"
국내 의류 제조·판매의 ‘메카’로 불리던 동대문패션타운이 중소·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키우는 패션 클러스터로 변신하고 있다. 북적이던 상권에서 상인들이 빠져나가 공실률은 여전히 높지만 K패션 브랜드를 꿈꾸며 이곳에 둥지를 트는 디자이너 오피스가 점차 늘고 있다. 제조 중심의 한국 패션산업이 디자인, 브랜드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3일 패션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류·신발 상표 등록은 지난해 9593건을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4년 4167건에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2023년에는 1만1067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급격히 늘어난 영향이다. 반면 의류 제조업체는 2020년 3만477곳에서 2023년 2만6885곳으로 3년 새 10% 이상 급감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의류 생산기지가 이동해 국내 의류 제조업 경쟁력과 생태계가 약해진 탓이다.
동대문 제조·판매 밸류체인은 전자상거래(e커머스) 중심의 소비 패턴 변화와 C커머스(중국 e커머스) 등장 등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최근 젊은 신진 디자이너가 남은 인프라를 활용해 창업에 나서고 있다. 이곳에서 트렌드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시제품을 디자인한 뒤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하고 무신사 등 패션 플랫폼에 입점해 판매한다. 이런 디자이너 브랜드는 C커머스가 복제할 수 없는 독창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며 의류산업 패러다임이 제조에서 콘텐츠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의류 제조'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 대변신
디자이너 오피스 빠르게 증가…국내 브랜드 10년새 2배
지난 21일 한때 국내 ‘패션 1번지’였던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과거 가장 임대료가 높았을 입구 매장부터 비어 있었다.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쇼핑 상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동대문 상가건물 32곳 중 3분의 1 이상은 공실률이 두 자릿수에 이른다. 하지만 뒤이어 찾아간 인근 현대시티타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의류 도·소매업체와 창고가 있던 공간은 패션 디자이너 사무소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에선 패션 디자이너, 창업가, 젊은 모델, 사진사들이 복작대며 24시간 꿈을 디자인하고 있다.
◇ 변화에 맞춰 변신하는 동대문
동대문은 한국 패션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1960년대 평화시장이 들어서면서 섬유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1990년대엔 ‘두타’ ‘밀리오레’ 등 패션 쇼핑몰이 들어섰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옷을 사기 위해 몰려들며 최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대 들어선 온라인 쇼핑몰을 차리고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사업이 주목받았다. 동대문에서 의류를 사입해 이른바 ‘택갈이’를 하고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로레알그룹에 6000억원에 매각된 ‘스타일난다’가 대표적 사례다. 이후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가 뜨고, 최근 중국 e커머스마저 침투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독창적인 디자인·브랜드 역량 없이 의류를 떼다 파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시대 흐름의 변화 속에서 동대문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빈 상가를 패션 공유 오피스가 채우기 시작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입점해 디자인·생산·유통 전 과정의 기획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 스튜디오 1·2호, 카페24, 스파크플러스, 서울패션허브, 패션큐브 등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19일 밀리오레 7층에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제2캠퍼스’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무신사는 10일 동대문종합시장 4층에 동대문의 두 번째 무신사 스튜디오를 열었다. 한 의류업체가 빈 상가 공간을 창고로 쓰던 곳이다. 1~3층에는 대부분 50~70대 상인들이 의류 원자재 등을 취급한다. 이들 상인도 젊은이가 늘어나는 걸 환영하는 분위기다. 1층에 있는 60대 원부자재 상인은 “20대 젊은이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근 분위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했다.
◇ 서울디자인창업센터 등 조성
동대문 공실이 늘어난 것은 역설적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이 사무소를 낼 수 있는 배경이다. 원부자재 상가 등 패션 클러스터로서의 장점은 살아 있는데 임대료는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패션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디자이너들은 공용 공간에서 디자인하고, 아래층 원단 가게에서 원단과 단추, 지퍼, 실 등을 구매해 샘플 제품을 제작한다. 언제든 사진과 유튜브 촬영이 가능한 모델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 지역에 패션 브랜드 론칭을 위한 모든 인프라가 압축된 동대문 같은 곳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며 “동대문 디자이너들이 대체지가 없다고 입 모아 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탄생하는 ‘스몰 브랜드’는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고 고유의 디자인 콘셉트를 보유한 것이 특징이다. C커머스(중국 e커머스)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지닌다는 평가다. 대중적인 브랜드들과 달리 고유 ‘팬덤’을 형성하며 성장한다. 최근 K패션으로 각광받는 디자이너 브랜드 ‘마뗑킴’이 대표적 사례다.
무신사가 2018년 만든 무신사 스튜디오 1호점은 브랜드 산실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입점한 ‘2000아카이브스’는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뉴진스, 에스파, 르세라핌 등 걸그룹이 찾는 브랜드로 입소문이 났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인기가 높다. ‘가든익스프레스’는 자연을 담은 색감을 디자인에 풀어낸 브랜드다. 코오롱 출신 디자이너가 퇴사 후 동대문에서 창업해 주요 패션 플랫폼에서 많이 찾는 브랜드가 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20대 디자이너와 60대 원자재 상인이 함께 일하는 이색 풍경이 동대문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동대문을 기반으로 탄생한 패션 브랜드들이 K패션을 주도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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