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의 법칙’부터 ‘가짜투표지’까지…부정선거론 검증 가이드
선거 때마다 일부 낙선 세력의 불복 논리로 재야를 떠돌던 ‘부정선거론’이 12·3 내란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빌려 계엄 옹호 진영의 핵심 세계관으로 떠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중심으로 거대한 범죄 집단이 지난 두번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결과를 조작하였고, 야당과 사법부가 한패를 이루어 의혹에 대한 수사와 검증을 거부하는 통에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극우 성향 언론과 유튜브에서 재생산된 문제 제기는 지난해 12월12일 대통령 담화와 11차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을 거치면서 세를 키웠다.
지난달 20일 열린 한국방송(KBS) 시청자위원회 회의에서는 복수의 시청자위원으로부터 “공영방송이 나서서 부정선거 의혹을 다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이 부정선거 문제에 눈감고 있다’는 불만과 달리, 오래전부터 수많은 보도가 있었으며 최근에도 선거 조작 주장에 대한 양질의 검증물이 앞다퉈 나왔다. 케이비에스 시청자위 회의 이튿날 방송된 ‘추적60분: 선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 계엄의 기원 1부’부터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광장의 음모론 2부 대통령과 부정선거’(3월4일), 에스비에스(SBS) ‘뉴스토리 부정선거 실체 보고서’(3월7일) 등 지상파 다큐멘터리와 한겨레21(2월22일)과 뉴스타파(3월7일) 등 매체의 기획기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언론은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을 직접 취합하는 것은 물론, 선관위를 찾아가 투·개표 과정을 시연하고 대법원 판결문을 재검증하거나 미국 대선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며 부정선거론이 합리적 의혹이 아닌 ‘망상적 음모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입증했다. 한겨레가 그 내용을 종합하여 주요 쟁점별로 요약해봤다.
수상한 투표지들: 형상기억종이, 일장기, 배춧잎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선거무효소송을 내면서 제기한 의혹이다. 민 의원은 당시 자신의 지역구 사전투표함에서 수상한 투표지가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이것이 선거 조작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기표 뒤에 반으로 접은 흔적이 없이 빳빳하거나(형상기억종이), 투표관리관 날인이 뭉개져 찍히거나(일장기), 녹색의 비례대표 정당 투표지가 겹쳐 인쇄되거나(배춧잎), 투표지 가장자리에 잔여물이 남아 있는 등 불량 투표지가 수천장씩 나왔다는 것이다.
이를 곧장 가짜 투표지로 연결짓는 논리도 비약이지만, 실제 투표지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의 경우, 다수는 관외 사전투표함에서 발견되었다. 자신의 주소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는 관외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는 투표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는데, 이때 지역구 투표지의 경우 접지 않아도 봉투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대로 넣는 경우가 많다. 그 밖에도 투표지를 완전히 접지 않고 구부려 투표함에 넣는 등 투표지에 접는 자국이 없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여럿이다.
이런 사실은 당시 민 전 의원의 대법원 소송 과정에서도 이미 검증된 사안이다. 민 전 의원 쪽에서 추천한 전문가로 투표지 감정에 참여했던 신수정 충북대 목재종이과학과 교수는 빳빳한 투표지를 현미경으로 살핀 결과 육안으로는 알 수 없는 미세한 접힘 자국이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인쇄 상태와 용지의 상태를 볼 때 민 전 의원이 지목한 ‘위조 투표지’ 122장에서 조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테면 ‘일장기 투표지’는 투표관리관이 도장에 추가로 잉크를 묻혀 뭉개진 것으로, ‘배춧잎 투표지’는 인쇄 과정에서 겹쳐 출력된 것으로, 잔여물은 관외투표봉투를 개봉하는 과정에서 투표지 가장자리가 같이 잘린 것으로 설명된다. 선거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조작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개표 시스템 해킹과 투표함 바꿔치기
외부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해킹해 수치를 조작하고, 사전투표함에 가짜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다는 의혹이다. 선관위는 21대 총선 뒤 민 전 의원의 의혹 제기에 2020년 5월28일 기자들 앞에서 ‘사전투표 및 개표 공개시연회’를 열고 투표지 분류기, 심사계수기, 노트북 등을 분해했다. 이들 장치에는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랜카드는 물론 랜카드를 연결하는 단자조차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부품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표 현장에는 선관위 직원과 각급 공무원, 시민 참관인은 물론 직접적인 선거 이해관계자인 정당 참관인까지 수많은 감시의 눈이 있다. 2020년 공개시연회 당시 김판석 선관위 선거국장은 “투·개표 관리는 선관위, 공무원, 금융기관직, 일반 시민 등 30만명의 참여 아래 이뤄진다. 단언컨대 이런 환경에서 선거 부정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선거 관리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조작·관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22대 총선부터는 분류기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하고자 수검표를 실시했고, 선관위는 검표 결과 ‘한 건의 분류기도 오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부정선거론자들은 개표 전에 사전투표함을 따고 투표지를 조작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사전투표지가 담긴 투표함은 정당 추천 선관위원과 경찰이 동행해 전국 각지 선관위 내 보관실로 이송된다. 투표함은 봉쇄용 잠금 핀과 입회인이 모두 서명한 특수 봉인지를 통해 이중으로 봉하고, 보관실 출입은 지문이 등록된 선관위 직원만 가능하다. 자석과 열선 감지에 24시간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감시된다. 투표함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면 이 모든 보안을 뚫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일을 해치웠다는 말이 된다. 지난 22대 총선 때는 서울시 은평구의 한 선관위 시시티브이에서 사전투표함에 투표지를 넣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투표 조작 장면이라는 낭설이 돌기도 했는데, 해당 영상은 선관위 직원과 정당 선거위원들이 관외 사전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정상적인 절차였다.
사전투표·본투표의 통계적 착시: 대수의 법칙
부정선거론의 ‘수학적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이른바 ‘대수(큰 수)의 법칙’이다.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다. 주사위를 10번만 던진다면 1이 다섯번 나올 수도,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1이 나올 확률은 2분의 1 혹은 0으로 이론적 확률(6분의 1)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주사위를 10만번 던지게 되면 실제 1이 나온 경우는 6분의 1에 가까워지게 된다. 표본이 커지면 특정한 통계적 경향성에 수렴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은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양당 간 득표 격차를 근거로 최근의 투표 결과가 대수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고, 이는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조작됐다는 주장을 편다. 예컨대 본투표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10%포인트 앞섰다면, 사전투표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대략 10%포인트 비슷하게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는 모두 몇만∼몇십만 단위의 큰 수이니 유사한 경향성을 공유해야 하는데, 실제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본투표를 지고도 사전투표에서 크게 이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니 인위적 개입의 결과가 아니겠냐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대수의 법칙을 잘못 적용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전투표에 참여한 사람들과 본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이 무작위로 분류됐다면 두 표본 모두 비슷한 경향성을 띠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실제 투표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추적60분’에서 “대수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표본이 무작위로 뽑혀야 한다. 유권자들이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면 사전투표, 뒷면이면 당일 투표, 이래야 무작위로 나뉜 것인데, (실제 선거는) 환경 자체가 대수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성별과 연령, 정치 성향에 따라 사전투표와 본투표 선호도가 갈린다. 진보 성향 유권자일수록 사전투표, 보수 성향 유권자일수록 본투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20대 대선 결과에 방송사 출구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대수의 법칙’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던 방송인 김어준씨의 이른바 ’케이(K)값’에도 적용됐던 논리다. 김씨 역시 당시 미분류표와 분류표의 통계적 경향성이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고연령층일수록 미분류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미분류표와 분류표 역시 무작위 표본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 조작 가상 시나리오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민경욱 전 의원은 대법원 소송 당시 부정선거의 큰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성명불상의 특정인이 ①투표 단계에서 전국적으로 조작된 투표 결과 수치의 대강을 확정한 다음, 서버 등을 통해 사전투표 수를 부풀린 뒤 위조된 사전투표지를 다량 제조하여 사전투표함에 투입하였고, ②개표 단계에서도 투표지 분류기와 서버 전산 조작을 통해 당일 투표지에 대한 개표상황표 수치와 결과 공표 수치를 조작하여 목표한 결과 수치에 접근시켰으며 ③개표 후 증거 보전 이전에, 선거소송에 따른 재검표 검증에 대비하여 다량의 위조된 당일 투표지와 일부 관내 사전투표지를 급조하여 기존 투표지를 대체해 투입하였다.”
그러나 ‘피디수첩’은 민 전 의원의 말대로 일이 굴러가려면 ‘성명불상의 특정인’은 다음과 같은 미션을 흐트러짐 없이 완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1대 총선 기준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어느 후보를 얼마만큼의 표 차로 당선시킬지 얼개를 사전에 확정하고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이들 지역구마다 당선에 필요한 가짜 투표지만큼의 유령 유권자를 만들어 선거인명부를 조작한 뒤
―253개 지역구의 출마자 숫자와 이름, 각 시도군구 선거관리위원회 청인, 3508개 투표관리관 직인, 수백만개의 큐알코드가 담긴 가짜 투표지 수백만장을 각각 인쇄하여
―선관위 시시티브이와 지문 등록 등 보안 체계를 모두 무력화한 뒤 사전투표함에 조작된 투표용지를 넣고 개표 당일에는 수십만의 공무원, 시민, 정당 참관인의 눈을 피해 목표한 수치에 근접한 투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터무니없는 규모의 프로젝트에 대해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이렇게 평했다.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그런 일이 있으려면, 우선 거대한 범죄 단체가 있어야 하고 가담한 사람은 몇만명은 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선거 조작을) 해놓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몇년 동안 그중에 단 한 사람도 내부 고발도 하지 않고, (이건) 투명인간이라도 불가능하지.”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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