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황폐화’ 실행에 옮기나

정인환 기자 2025. 3. 23. 16: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3 가자의 참극]네타냐후가 휴전 협상을 깬 세 가지 이유… 미국·이스라엘 강대국 주판놀이에 전쟁 532일, 주민 4만9천여 명 숨져
2025년 3월19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외곽에서 한 소녀가 짐 가방을 끌고 피란길에 오르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다시 숱한 목숨이 스러진다. 인도적 구호품 반입조차 차단된 봉쇄된 땅으로 여지없이 폭탄이 날아든다. 굶주린 이들이 다시 피란 짐을 꾸린다. 사방이 막힌 채다. 어디라고 안전할까? 죽음의 음습한 기운이 도처에서 다시 스멀거린다.

2025년 3월18일 이른 새벽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공습을 재개했다. 이튿날엔 지상군 병력까지 투입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틀 새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어린이 183명을 포함해 43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월18일 공습에 앞서 내놓은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전쟁의 책임은 하마스에 있다?

“이 전쟁의 책임은 하마스에 있다. 지난 2주간 이스라엘은 하마스 쪽이 입장을 바꿀 것을 기대하면서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윗코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마스는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래서 하마스를 겨냥한 군사행동을 재기하도록 명령했다.”

따져보자. 미국과 카타르·이집트의 중재 속에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1월15일 3단계 휴전안에 합의했다. 1월19일 발효된 1단계 휴전 기간 42일(6주) 동안 하마스는 생존 인질 25명과 사망 인질 8명의 주검을 이스라엘 쪽에 넘겼다. 이스라엘 쪽도 팔레스타인 수감자 약 1900명을 풀어줬다. 총성이 멎으면서 피란길에 올랐던 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복귀했다. 막혔던 구호품 공급도 재개됐다. 평화는 지독히도 더디 왔다.

합의에 따라 1단계 휴전 발효 16일 뒤부터 2단계 휴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차일피일 미루며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막판까지 시간을 끌던 이스라엘 쪽은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무슬림의 금식월 라마단과 유대인 명절 유월절이 끝나는 4월 중순까지 1단계 휴전을 연장하자는 게다. 대신 2단계 휴전 때 풀어주기로 한 인질의 절반을 먼저 풀어달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하마스는 이를 거부했다.

1단계 휴전 기간은 3월1일 종료됐다. 이튿날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를 막았다. 인도주의적 구호품도 반입을 금지했다. 가자는 다시 철저히 고립됐다. 윗코프 미국 중동 특사가 내놓은 ‘새로운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쪽이 제시한 1차 휴전 연장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마스 쪽은 “이미 합의된 휴전안이 있는데 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냐”고 반발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스라엘은 차츰 ‘위협’ 수위를 높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왜 휴전을 깼을까? 세 가지 분석이 유력하다. 첫째, 처음부터 휴전을 원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어 휴전안에 합의했지만, 언제든 합의를 깰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애초 합의안에 따르면, 휴전 2단계에 하마스는 남은 생존 인질을 모두 풀어주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수해야 한다. 6주에 걸친 1단계 휴전 기간에 이스라엘군은 무기고를 채우고, 전열을 정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5년 3월19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에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내리자 주민들이 피란 짐을 꾸려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극우 진영 절대 지지 필요한 네타냐후

둘째, 미국의 ‘변심’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강조하며, 이스라엘 쪽에 ‘민간인 피해 최소화’ 정도만 주문했다. 취임식(1월20일) 전까지 휴전안에 합의하라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을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2월4일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가자지구를 미국이 접수해 개발하겠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집트·요르단 등 주변국은 물론 아랍권 전역이 반발하자 슬그머니 주장을 거둔 그는 이스라엘 쪽이 사전에 ‘전쟁 재개’를 통보하자 ‘청신호’를 보냈다. 브라이언 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3월18일 시비에스(CBS) 방송에 “하마스는 휴전 연장을 위해 인질 석방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택했다”고 말했다.

셋째, 이스라엘 내부 권력다툼도 중요한 변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3월 말 의회(크네세트)에서 예산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의회 내 극우 진영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데, 이들 모두 가자지구 휴전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파의 공적’인 로넨 바르 신베트(국내 담당 정보기구) 국장의 해임을 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바르 국장은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테러와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 정부의 ‘정보 실패’ 문제를 조사 중인데, 최근엔 네타냐후 총리 보좌진이 카타르 정부에서 금품을 받은 의혹도 캐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3월19일 타미르 파르도 전 모사드(대외 담당 정보기구) 국장의 말을 따 “네타냐후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하마스가 새 제안을 거부한 것은 이스라엘이 기존 합의안을 폐기하려 했기 때문이다. 1단계 휴전 기간을 연장하고 인질과 수감자 교환을 지속하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장은 항구적인 휴전에 대한 보장 없이 인질만 빼내려는 속셈일 뿐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언론인이 함께 참여한 탐사보도 전문매체 ‘+972’는 3월18일 이렇게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새 제안을 거부할 것이란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고집한 것은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음식과 물, 연료와 전기, 의약품 등을 모두 끊기 위해서였다”고 짚었다. 이어 “이제 미국의 전면 지원 속에 집단살해적 공격을 재개했다. 이번엔 전쟁의 목적이 더욱 뚜렷해졌다. 바로 가자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월4일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힌 ‘가자지구 접수론’을 실행에 옮기는 모양새다.

“전체 사망자의 33%가 여성”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딸린 ‘동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점령지 팔레스타인 관련 독립국제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3월13일 제출한 ‘2023년 10월7일 이후 젠더에 기반한 이스라엘의 체계적 폭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위원회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과 위해는 산발적으로 벌어진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차별적 폭력이자 범죄”라며 “이스라엘군은 점령군이란 압도적 지위를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탄압을 자행했다”고 덧붙였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쟁이 15개월째로 접어든 2025년 1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줄잡아 4만6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가운데 4만717명의 신원이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2만4천여 명이 여성, 어린이, 노약자다. 희생자의 59%에 이른다. 확인된 사망자 가운데 여성은 모두 7216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18%를 차지했다. 2023년 10월 한 달에만 여성 1213명이 숨지면서 ‘사상 최악’ 기록을 경신했다. 어린이는 전체 사망자의 33%에 이른다. 위원회는 “사망자 가운데 15%가 소녀”라며 “종합하면 전체 사망자의 33%가 여성”이라고 짚었다.

2023년 11월12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알리말 지역에서 여성 노인 할라 압드 알아티가 가족들과 대피 도중 목숨을 잃었다. 위원회가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분석해보니, 알아티는 어린 손자의 손을 붙잡고 있었고 손자는 투항을 상징하는 ‘흰 깃발’을 들고 있었다. 일행이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총성이 울렸고, 알아티는 그대로 쓰러져 숨졌다. 저격병이 쏜 총알이 그의 이마에 박혔다. 사건 당시 주변에는 이스라엘군이 ‘작전 중’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스라엘군은 의료시설도 무차별 공격했다. 산부인과를 포함한 모자보건 시설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원회는 “이스라엘군의 의료시설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임기 여성 54만여 명이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한 산부인과 의사는 위원회 쪽에 “가자지구에서 출산하는 건 중세시대에 출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기초적인 출산용품도, 고혈압이나 임신중독증에 처방할 약품도 없다. 그렇다보니 출산 전후 산모 사망과 유산, 사산 등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 3월19일 이스라엘군 탱크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3월19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살피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임산부·수유기 여성 15만 명, 필수 영양분 부족

이스라엘의 봉쇄 속에 굶주림이 만연하면서,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2024년 1월 “15만5천 명에 이르는 임산부와 수유기 여성이 필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취약해진 상태”라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위원회는 막 출산을 마친 여성의 말을 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성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그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532일째를 맞은 2025년 3월19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4만9547명이 숨지고, 11만271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