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최고 실적은 잠시 잊어라"…전기차·관세전쟁 정면돌파 선언
"작년에 잘됐으니 올해도 잘될 거라는 기대를 할 여유가 없고 잘 버티자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피해갈 수 없는 불확실성과 도전에 위축되지 말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자."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역대 최고의 실적을 거뒀지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위기'를 강조했다. 정 회장이 등장하기 전 상영된 영상에서는 BYD 차량과 공장 영상과 함께 '신흥 경쟁사들의 발전'이라는 문구가, 테슬라 공장 영상과 함께 '기술 혁신의 가속화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문구가 송출됐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매출 175조2312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판매량 기준 글로벌 3위 완성차 그룹의 '맏형'임에도 전년 대비 매출 7.7% 성장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위기를 강조한 것은 글로벌 완성차 시장이 저가 전기차를 무기로 한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부상, 테슬라와 화웨이를 위시한 자율주행 기술 경쟁 격화라는 환경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관세전쟁 격화까지 더해져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은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위기에도 현대차그룹은 올해를 그룹 도약을 위한 기회의 한 해로 보고 있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위기라는 한자에서 보듯이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면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기회는 전기차의 대중화다. 중국 완성차 브랜드들이 2000만원대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아의 'EV3'다. 기아는 지난해 EV3를 유럽에서 3만5000유로(약 5500만원) 가격으로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가격 경쟁에 뛰어든 바 있다. 이는 BYD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콤팩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 등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가격이다. 지난 1월 스페인 시장에서 BYD의 초저가 모델 '돌핀'을 제치고 전기차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기아는 EV3의 성공에 힘입어 이보다 작은 크기의 EV2와 EV4를 출시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이달 스페인에서 열린 '2025 기아 EV 데이'에서 EV2를 3만5000유로 이하의 가격으로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의 ID.1, 테슬라의 모델Q 등 미국과 유럽 업체들도 전기차 가격 경쟁에 참전하고 있는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해당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자율주행 분야에서의 전화위복도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자회사 모셔널의 시범 주행을 이어가는 한편 구글의 로보택시 서비스 '웨이모' 6세대에 아이오닉5 공급을 확정한 상태다. 모셔널의 경우 현재 라스베이거스와 피츠버그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송 사장은 EV 데이를 통해 "모셔널은 곧 미국 주요 도시로 대상을 확대해 완전자율주행 실현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식 자율주행'으로 불리는 '엔드 투 엔드' 방식의 자율주행 개발에도 시동을 걸었다. 현대차그룹의 첨단차량플랫폼(AVP)본부는 최근 이 같은 방식의 자체 자율주행차량 개발 프로젝트 'XP2'를 시작했다. 2026년까지 '페이스카'를 소량 생산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후 현대차그룹 양산차에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대응에 대해서도 글로벌 완성차들보다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시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마련했다. 지난해 일부 시험생산을 시작한 HMGMA는 올해 3월 중 준공식을 개최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강화를 통해 각 완성차 업체에 "미국에서 팔려면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HMGMA를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정책 등에 따라 전기차 캐즘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이미 하이브리드차량을 혼류 생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같은 노력은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달 2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는 필요한 해결책'이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통해 "현대차 CEO는 1월 14일 미국에 대한 대한 투자가 잠재적인 관세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라고 말하면서 조지아주에 새로 건설된 130억달러 규모의 공장을 홍보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모범사례'로 현대자동차를 콕 집어 소개한 것이다.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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