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음원차트 휩쓴 제니 “잘난 게 죄니?”

박세연 일간스포츠 기자 2025. 3. 23. 1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21세기형 음악으로 재구현

(시사저널=박세연 일간스포츠 기자)

1623년 출간된 영국 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는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와 함께 그가 남긴 5대 희극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400년 전 작품이 지난 3월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 중인 아티스트 제니를 통해 21세기형 음악으로 다시 구현됐다.

첫 번째 솔로 정규 앨범 '루비'의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 커버 ⓒOA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랙핑크 제니' 이상의 가치 입증

제니가 3월7일 발표한 솔로 정규 앨범 '루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앨범이다. 앨범명 '루비'는 제니의 영어 이름인 '제니 루비 제인' 중 가운데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졌다. 제니가 직접 앨범 프로듀싱을 맡아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무한한 음악적 가능성을 담아냈는데, 결과물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니는 솔로 앨범으로도 확고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며 기존 '블랙핑크 제니' 그 이상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번 '루비' 앨범은 YG엔터테인먼트와 완전체 계약만 맺고 각자 홀로서기에 나선 블랙핑크 멤버들이 개별 기획사에서 차례로 선보여온 솔로 결과물 중 하나다. 《아파트》로 글로벌 음악시장을 뒤흔든 로제를 비롯해 리사, 지수가 각자의 매력을 담은 음악과 퍼포먼스로 '개인기'를 보였다면 제니 역시 선공개곡 《만트라》를 비롯한 15곡에 온전한 자신을 담아내며 명반을 만들어냈다.

제니는 '루비'에 그만의 목소리와 시각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앨범에는 《인트로》를 비롯해 《라이크 제니》 《스타 어 워》 《핸들바》 《위드 더 아이이(웨이 업)》 《엑스트라L》 《만트라》 《러브 행오버》 《젠》 《댐 라이트》 《F.T.S》 《필터》 《서울 시티》 《스타라이트》 《트윈》 등 다양한 곡이 수록됐다. 차일디쉬 감비노, 도이치, 도미닉 파이크, 두아 리파, FKJ, 칼리 우치스 등 글로벌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곡의 매력을 더했다.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는 자신만의 개성과 색을 잃지 않은 채 당당하게 빛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니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며 그 누구도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을 노래한다.

"내 생각엔 내가 정말 좋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말 싫어하지 왜냐면 그들은 절대 제니가 될 수 없거든 근데 너 만나본 적 있어?" "얼마를 줘도 못 해 서커스짓 포즈 한 번에 만들어내지 모쉬핏 그들은 날 감당 못 해 난 값을 매길 수 없거든" "그래 내가 유죄야 잘난 게 죄니".

위풍당당한 태도와 넘치는 자존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런 가사는 제니이기에 가능하다. 한국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은 가사는 트렌디한 비트 속에서 제니 특유의 공격적이면서도 묵직한 래핑을 만나 유려하게 흐른다. 이처럼 자기애가 한도 초과한 도발적 가사의 노래에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대놓고 잘난 척하는데도 불호보단 호(好)의 감상이 쏟아진다.

제니의 거침없는 기세 속에서 '콘크리트'라 불리는 음원차트까지 흔들리고 있다. 지드래곤 《투 배드》, 조째즈 《모르시나요》, 아이브 《레벨 하트》 등 신곡들과 황가람 《나는 반딧불》, 우즈 《드라우닝》 등 스테디셀러 곡들이 굳건하게 롱런하는 멜론 차트에선 발매 열흘 만에 3위권에 진입했다. 음반 파워도 매섭다. '루비' 앨범은 발매 후 일주일 만인 3월13일 66만1130장 판매를 기록했다. 올해 발매된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앨범 중 최대 규모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애플 뮤직 '톱 앨범' 차트에선 K팝 솔로 아티스트 중 최초이자 최고 순위인 9위를 기록했고, 유럽 애플 뮤직 '톱 앨범' 차트에서는 2위를 차지하며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중 최고 순위에 올랐다. 이뿐 아니라 K팝 아티스트 중 유일하게 중국 애플 뮤직 '톱 앨범' 차트와 '톱 송' 차트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등 최초, 최고 기록을 쓰고 있다.

이 같은 기세에 힘입어 '루비'는 3월14일(현지시간) 공개된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톱100'에 3위로 진입했고, 《라이크 제니》(36위), 《핸들바》(41위), 《엑스트라L》(66위) 등 총 3곡을 싱글 차트에 올려놨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이어갔다. '루비' 앨범이 3월22일자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7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라이크 제니》는 '핫 100' 83위로 진입했다. 또 두아 리파와 협업한 곡 《핸들바》는 80위, 도이치와 협업한 《엑스트라L》은 99위에 올랐다.

이로써 제니는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3곡을 동시에 차트인 했고, '루비'에 수록된 《라이크 제니》 《만트라》 《러브 행오버》 《엑스트라L》 《핸들바》 등 총 5곡을 '핫 100'에 모두 진입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제니는 '핫 100' 차트에 가장 많은 곡(더 위켄드·릴리 로즈 뎁과의 협업곡 《원 오브 더 걸스》 포함 총 6곡)을 진입시킨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됐다.

첫 번째 솔로 정규 앨범 '루비'의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 콘셉트 포토 ⓒOA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내외 평단에서 '호평 일색'

평단도 호평을 쏟아냈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랩과 노래가 다 잘되는 만능 퍼포머로서의 특성을 음악에 잘 담았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운용하면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팝 사운드를 잘 가져왔고, 그 속에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며 "본인이 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한국인·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아주 사적인 이야기까지 밸런스 있게 담아냈다"고 평했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도 "제니는 YG 전통에 입각해서 아주 세고, 강렬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여성의 화법을 쓰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꽉 차 있고 화려하고, 제니 특유의 카리스마 강한 매력이 담겨 있다"며 "다음에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현 상태에서의 최고를, 정점을 찍은 앨범"이라고 말했다.

해외 평단 역시 '루비'의 완성도를 인정하며, 이를 통해 제니가 아티스트로서 성장했음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 음악 비평지 피치포크는 이 앨범에 평점 7.1을 부여하며, 《라이크 제니》에 대해 "터프한 소녀 사운드를 맹렬한 새로운 스타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음악 평론지 NME도 "자신을 향한 시선에 당당히 맞섰다"며 '루비'로 보여준 제니의 음악적 성취에 대해 5점 만점에 4점을 부여했다.

블랙핑크 제니의 국내 첫 솔로 콘서트 ⓒ제니 인스타그램

한편, 제니는 3월15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단독 공연 《더 루비 익스피리언스》에서 '루비' 앨범의 모든 수록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화려한 무대 연출을 최소화하고 오직 음악과 퍼포먼스에 집중한 제니는 "이번 앨범 그리고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걸 배웠다. 모든 게 다 낯설고 처음 시작하는 것 같다.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에게 큰 사랑을 받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