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계절근로자 떠난 자리.. 농가는 다시 “하늘만 쳐다봐야 하나‘

제주방송 김지훈 2025. 3. 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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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땀과 눈물 뒤로한 이별 행렬.. ‘든든한 일손’이 남긴 공백과 불안
지난해 9월말, 제주고산농협과 계약하고 베트남에서 입국한 계절근로자들이 양배추 모종을 심기 전 농협 직원과 농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고산농협 제공)


“다시 하늘만 쳐다봐야 할까요.”

농촌 곳곳에서 이런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5개월간 감귤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농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이 속속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에 농민들은 안도와 함께 불안을 동시에 느끼는 모습입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건강히 돌아가세요.”

이 말에 담긴 진심 뒤에는, 동시에 “이제 남은 농사는 어떡하나”라는 막막함이 서려 있습니다.

23일, 농협 제주본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제주위미농협을 통해 5개월간 근무한 베트남 계절근로자 28명이 1차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감귤 수확철의 ‘든든한 일손’이 사라지며 농가의 불안감은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20명도 두 달 뒤 귀국할 예정이어서 제주 농촌은 또다시 ‘인력 공백’이라는 난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공공형 계절근로제로 숨통을 틔운 농가들이 다시 ‘하늘만 바라보며’ 일손을 기다리는 악순환에 빠질까, 한편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제주위미농협에서 5개월간 공공근로에 나섰던 베트남 계절근로자 48명 중 28명이 1차 귀국했다. (제주농협 제공)



■ 5개월의 노동, 베트남 계절근로자 귀국 행렬

베트남에서 온 계절근로자들은 이들은 지난해 10월 제주에 입국해 약 5개월 동안 감귤 수확과 농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이들 공공형 계절근로자는 E-8(계절근로) 비자를 통해 입국하며 체류 기간은 3개월이지만 연장제도를 활용해 최대 8개월까지 근무가 가능합니다.

올해 제주위미농협이 계절근로자로 일손을 지원한 농가는 총 2,527곳으로, 지난해 2,000여 농가 대비 26% 증가했습니다. 투입된 인력도 지난해 4,387명에서 올해 5,533명으로 늘었습니다.

■ '든든한 일손'이 된 계절근로자.. 농가 호응 이어져

위미농협의 성과를 계기로 제주 농촌의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주고산농협과 대정농협을 비롯한 6개 농협이 사업에 참여하며 외국인 근로자 유치 인원도 대폭 늘었습니다.

특히 올해 제주시에서는 고산농협·한림농협·조천농협이 베트남과의 협약을 통해 90명의 계절근로자를 확보했고, 서귀포시에서는 제주위미농협·대정농협·서귀포농협이 총 140명의 계절근로자를 유치했습니다.

제주고산농협과 계약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30대 중후반으로, 월동채소 수확기 동안 농가 지원에 나섰다. (고산농협 제공)

현재근 제주위미농협 조합장은 “공공형 계절근로자들이 맡은 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덕분에 농가의 일손 부족 문제를 크게 완화할 수 있었다”라며, “사업을 지속적으로 체계화해 외국인 근로자들의 안정적인 근무 환경 조성에도 힘쓰겠다”라고 밝혔습니다.

■ 계절근로제, '빛과 그림자' 공존

계절근로제는 농촌의 극심한 인력난 해소에 기여했지만, 운영상의 한계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농가는 근로자에게 일한 만큼 '일당' 형태로 임금을 지급하지만, 기상 악화 등으로 근무가 불가능한 날에도 농협은 최소 근무 일수에 맞춰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제주고산농협의 경우, 지난해 10월 투입된 30명의 계절근로자에게 최소 근무 일수 기준으로 26일 치 임금을 지급했지만, 비 날씨 등으로 실제 근무 일수는 16.5일에 그치면서 1,400만 원 상당의 손실을 감수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농협들은 농식품부에 계절근로자들이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건의한 상태입니다.

지난 2023년 12월, 제주위미농협과 계약한 베트남 공공근로 참가자가 수확한 감귤을 컨테이너에 채우고 있는 모습. (제주농협 제공)



■ '불법고용'의 유혹, 여전히 남은 과제

공공형 계절근로제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촌 현장에서는 여전히 미등록 이주민을 고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농번기 인력난이 극심한 농촌에서는 “누가 신고만 해도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잡혀가 버린다”라며, “하늘만 쳐다봐야 할 지경”이라는 농민들의 걱정이 여전합니다.

지난해 제주지역 농가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경로의 상당수가 반장, 지인, 다문화가정 등을 통한 ‘비공식 경로’라는 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계절근로제를 이용 중인 한 농민은 “기간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미등록 이주민을 쓰는 방안도 고민해야할 상황”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공공형 계절근로제가 농촌의 인력난 해소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남은 공백은 큽니다.

전문가들은 “계절근로제는 농촌 인력난의 해법이자 미봉책”이라며 “농가의 손실 부담과 미등록 이주민 고용 문제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농촌의 현실에 맞는 유연한 제도 운영과 근로자들의 안정적 근무 여건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라면서, “지금이야말로 계절근로제를 넘어선 지속 가능한 농촌 인력 시스템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농촌의 들녘은 다시 적막해졌습니다.

어제까지 구슬땀을 흘리던 ‘든든한 일손’이 떠난 자리에서, 농민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애타게 새로운 일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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