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남자와 동거중입니다”...늙은 재벌의 ‘정부’가 된 그녀, 진짜 사랑 앞에 무너지다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149]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
남자는 어느 날 자기 애인을 계단에서 밀어버렸다. 여자가 자신을 떠난다고 한 다음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비장함도 없었다. 그저 잘 움직이지 않는 문을 열듯 손에 힘을 줘 쑥 밀었을 뿐이다.
남자는 계단 아래로 떨어진 여자를 보고 뛰어 내려왔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죽이는 건가 싶어 필사적으로 기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아파할까 봐 걱정했고, 그녀를 데리고 곧장 병원으로 갔다. 앞서 여자를 밀었던 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마치 여자가 우연히 실족해서 계단에서 굴렀고, 자신은 이를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는 운명의 짝을 만난 남녀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을 옆에서 보며 극심한 질투와 복수심을 느끼는 옛 연인의 표정을 담았다. 아무리 변심했다지만 그래도 한때의 연인인데 이 남자는 왜 여자를 죽음의 위기까지 몰아가는 것일까. 세 사람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그래서 여자는 노(老) 재벌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어떻게 출발한 관계인지는 정확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마 처음엔 어니스토(호세 루이스)가 레나의 금전적 필요를 채워줬을 것이다. 어니스토는 레나의 ‘감사하다’는 말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레나는 그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달랐지만, 어쨌든 둘은 연인이 됐다.
그러나 영화감독 마테오(루이스 호마르)가 나타나면서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애초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접었던 레나는 마테오를 만나 날개를 단다. 레나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도 필요 없었다. 그냥 서로 맞았을 뿐이다. 마테오는 레나의 매력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고 싶었고, 레나는 마테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즐거웠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간극이 없었고, 온도 차도 없었다.
그는 촬영 현장에 ‘메이킹 필름’을 찍는다는 명목으로 자기 아들을 투입하고, 해당 필름에서 감독과 배우가 나눈 대화를 파악하기 위해 독순술사(입술 모양으로 말을 읽어내는 사람)를 고용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레나가 그를 혐오하게 돼 이별을 통보했고, 이를 참지 못한 어니스토는 그녀를 계단 아래로 밀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칼럼에서는 다른 면을 짚어보려 한다. 바로 돈의 속성이다.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큰돈을 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본전을 찾고 싶어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백만장자 어니스토는 레나를 사랑해서 그녀에게 돈을 펑펑 썼고, 레나가 자기와 연인 관계를 유지할 땐 이를 돌려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데서 충만감을 느끼며 보상받은 것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어니스토는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추잡한 훼방꾼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철저히 레나의 입장에서 반성해본다면, 그녀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자기 운명을 스스로 꼬아버리는 선택을 내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체절명의 시기, 내 앞에 놓인 남의 호의에 주저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크나큰 금전을 거리낌 없이 내준 사람은 진정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 천사일 수도 있지만, 어니스토일지도 모른다. 그 호의엔 아무런 차용증도 붙지 않고, 법적 구속력도 없어서 그저 취하기만 해도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순간, 그 호의는 당신의 영혼을 어떤 식으로든 할퀴어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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