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뢰가 생명…국가신용등급 방어에 총력전 펼쳐라 [쓴소리 곧은소리]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5. 3.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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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감국가’ 지정이 던진 경고…탄핵 정국 속 불확실성 심화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사례 반면교사 삼아, 한국도 전략적 대응 나서야

(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3월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종합지수(JCI)가 장중 7.1% 폭락했다. 국가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시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스리 물야니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의 해임설이 돌면서, 강력한 재정 규율을 유지해온 그의 실각이 정부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을 흔들었다.

비슷한 사례는 프랑스에서도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Moody's)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프랑스의 재정 악화와 정치적 분열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프랑스의 정치적 교착상태는 지난해 말 내각 불신임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더욱 심화됐고, 무디스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효율적인 예산 관리를 어렵게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신용등급 강등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과 맞물려 발생한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가 장기 성장 둔화와 정치적 갈등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 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병환 금융위원장(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 신용등급 강등 위험 없을까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경제적 펀더멘털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도 평가 요소로 고려한다. 특히 국가신용등급은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률과 직결된다.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은 조세수입에 달려 있고, 조세수입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장률은 2023년 1.4%, 2024년 2.0%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5%에 불과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조차 "1%대 성장이 한국 경제의 실력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신용평가사들은 순환적인 경기 변동보다는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중시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대라고 평가받지만, 이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적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이어져 잠재성장률을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수 기반을 약화시키고 사회보장비용 증가를 초래해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저성장이 고착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정치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2011년 8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것도 민주·공화 양당이 부채한도 협상에서 극단적 대립을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역시 정치적 교착상태가 주요 원인이었다. 한국도 최근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요인이다.

최근 S&P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정부 관계자들과 연례협의를 마쳤다. S&P는 "계엄 사태로 인해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지만, 국가 시스템이 빠르게 회복돼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시점에서 그렇다'는 의미일 뿐이다. 경제 성장 둔화와 정치적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언제든 한국도 신용등급 강등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도 변수다. 미국 에너지부는 최근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했다. 또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한국보다 큰 대만과 일본을 제쳐놓고 한국을 콕 집어 '비관세 장벽' 폐지를 요구했다. 모두 범상치 않게 보인다. 시장논리로 풀거나, 기업이 대처하기 힘든 정치적 대응의 영역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경제적 요구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 질서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정치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밸류체인 재편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경제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외 변수를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유럽 및 아시아 주요국과의 경제 협력 다변화도 필수적이다. 만약 한국이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다면, 경제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이는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한번 강등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 한국도 신용등급 방어를 위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우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부실이 누적되고 있는 부문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고, 규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신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신용등급 방어는 단순 경제 문제 아냐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탄핵 정국 속에서도 정부는 정치적 안정과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국제사회에 한국 경제의 신뢰도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정치 리스크를 신용등급에 반영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신용등급 방어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져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신용등급이 하락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 정부와 기업, 정치권 모두가 신용등급 방어를 위한 전략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한국 경제의 생명선인 국제 신뢰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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