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절 영국에 기밀 제공한 소련 KGB 고위 간부 별세
KGB 런던지부장 때 영국 MI6에 기밀 제공
‘배신’ 드러난 1985년 영국에 망명 후 정착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현 러시아) 정보기관 KGB 요원으로 일하며 영국에 기밀 정보를 건넨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 전 KGB 런던지부장이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5년 영국으로 망명한 고인은 이후 평생 영국에 거주했으며, 생애 말년인 2007년 영국 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고르디에프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한 해 전인 1938년 10월 당시 소련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KGB의 전신인 소련 비밀 경찰 NKVD 요원이었으니 부자가 대를 이어 정보기관에 종사한 셈이다.
명문 모스크바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생 시절 이미 정보기관 요원 후보자로 뽑혀 독일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등을 익혔다. 1963년 KGB에 들어간 뒤 고르디예프스키는 형식상 외교관 신분으로 덴마크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일하며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968년 체코에서 소련의 억압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일명 ‘프라하의 봄’ 시위를 접했다. 소련이 내정 간섭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본 고르디에프스키는 소련과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그때부터 고르디에프스키는 덴마크에서 활동하던 영국 정보기관 MI6 요원들과 비밀리에 접촉해 ‘소련 체제 약화를 위해 서방과 협력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심했던 MI6도 결국 그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이렇게 해서 고르디에프스키는 해외 근무를 마치고 1978년 소련으로 돌아갈 때까지 MI6에 민감한 정보를 제공했다.

고르디에프스키의 배신 정황은 소련이 CIA에 심어둔 첩자에 의해 처음 포착됐다. 그가 KGB 런던지부의 정식 지부장으로 승진한 직후인 1985년 5월 갑자기 본국 소환령이 떨어졌다. MI6는 고르디에프스키에게 “모스크바로 가지 말고 영국에 망명하라”는 권유를 했으나 그는 일단 본국으로 돌아갔다. KGB는 고르디에프스키를 상대로 엄격한 심문을 실시했으나 그가 정말 배신자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고르디에프스키는 해외 근무를 포기하고 국내에서만 일하는 조건으로 일단 풀려났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1985년 7월 고르디예프스키는 KGB 감시 요원의 눈을 피해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러시아·핀란드 접경지역에서 영국 측 요원들과 접선한 그는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고난도의 작전 끝에 핀란드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고르디예프스키는 노르웨이를 거쳐 무사히 영국에 도착했다. 소련 당국은 뒤늦게 그를 반역죄로 기소했으며 궐석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영국에 정착한 고르디예프스키는 2005년 영국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버킹엄 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당시 69세이던 고르디예프스키에게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훈장’(Order of St Michael and St George)을 수여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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