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여당도 제1야당도 아닌 세계를 꿈꾸며 [.txt]
결선투표제 부재 등 ‘양시앵 레짐’
민주당·국힘당 공생관계 가능케 해
완전비례대표제 등 제도 개혁 절실
먹고사는 일만큼 읽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기는 한데, 지난 12·3 계엄날부터 무슨 뉴스 읽는 기계처럼 살다 보니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방금 읽은 뉴스를 이해할 겨를도 없이 다음 뉴스가 쏟아진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는데 난데없는 법원의 윤석열 구속 취소, 검찰의 항고 포기, 윤석열 석방이라는 3연타가 날아든다. 그 와중에 극우는 착실히도 발호한다. 나날이 대담해지는 헌정 파괴 극우 세력은 위헌적 계엄을 옹호하고 법원을 습격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며 세를 결집해 여당인 국민의힘을 빠르게 극우화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을 전제로, 앞으로 치러질 대선에서 극우화된 내란 세력의 재집권을 어떻게 막을지 고민하는 이들 중 여럿은 강력한 헌정수호 연합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호소한다. 그런데 어쩐지 허전하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양당제 국가다. 이 나라의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은 언제나 민주당 아니면 국민의힘이었다. 즉,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겨도 국민의힘이 제1야당인 이 세계관은 그대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은 결선투표제의 부재,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 원내 교섭단체 기준 20석이라는 제도적 ‘삼중 철벽’이 만든 구조적 양당제하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를 양분 삼아 대선을 이기면 여당, 져도 제1야당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왔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의 ‘앙시앵 레짐’, 아니 ‘양’시앵 레짐이다. 이 ‘양시앵 레짐’이 지속되는 한, 광장의 시민들이 힘을 모아 내란수괴 윤석열을 탄핵해도 내란동조 세력인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계속 제1야당의 위치를 유지하며 사사건건 사회개혁의 추진 과정에 훼방을 놓고 호시탐탐 대권을 노릴 것이다.
심지어 이것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다. 국정농단을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2017년의 촛불광장에서 그 누구도, 탄핵 세력 자신조차, 감히 윤석열을 통한 탄핵 세력의 재집권을 점치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양시앵 레짐’의 삼중 철벽 속에서 끈질기게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하며 민주당에 대한 반감과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감정에 편승해 화려하게 부활했고, 이제는 위헌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 윤석열을 감싸며 내란동조 세력을 자처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더 불평등해졌고,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더욱 심해졌으며, 주류 정치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를 외면하거나 아예 조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변호사로서 지난 10여년간 늘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현장에서 싸워온 류하경 변호사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 지난해 10월에 출간한 책 ‘불온한 공익’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소수자 정치가 사회와 의회에서 너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권자들의 사적 감정이나 무시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 정치를 위해 설계된 정치 제도 때문이다.”
탄핵 세력의 부활이라는 악몽은 한번으로 족하다. 우리가 2025년의 응원봉 광장에서 다시 만들 세계는 극우화된 국민의힘이 더 이상 여당도 제1야당도 아닌 세계, 내란 세력이 부활할 수 없는 세계다. 그 새로운 세계는 탄핵 세력의 생명줄인 ‘양시앵 레짐’을 지키는 삼중 철벽 제도의 해체에서 시작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죽은 표가 되도록 강제하는 낡은 제도를 이제는 모든 표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새로이 개혁해야 한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첫째, 모든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정당과 후보에 투표해 자신의 정치적 존재와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총선에 완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민주당이 싫어서’ 같은 이유로 극우 정당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한편, 각 정당이 분명한 노선, 정책, 인물로 떳떳하게 경쟁해 득표율만큼 의석을 얻게 한다. 셋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교섭단체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없애 비교섭단체 국회의원을 사실상 ‘6두품’으로 만드는 폐단을 끊어낸다.
혹시라도 완전 비례대표제로 인해 극우 세력의 국회 진입이 더 용이해지는 게 아닌지 걱정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자. 모든 정당이 득표율만큼 정직하게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면 굳이 극우 정당에서 계속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민주당 견제를 위한 유의미한 선택지가 여럿이라면 굳이 ‘민주당이 싫어서’ 극우 정당을 지지할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정치 개혁은 국민의힘이 누려온 ‘여당 아니면 제1야당’이라는 기득권을 해체함과 동시에 소수정당의 정치적 공간을 열어젖힘으로써 내란 세력에 맞선 크고 작은 헌정수호 세력의 명분 있는 대대적 결집을 촉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정말로 내란동조 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해 시급히 필요한 것은 결선투표제 도입, 완전 비례대표제 도입, 교섭단체 기준 완화 혹은 폐지라는 극우 척결과 헌정 수호를 위한 3대 정치개혁의 추진이다. 이것이야말로 다수 헌정수호 연합 구축의 강력한 명분이 되어 내란 세력 재집권을 원천 차단하고 제7공화국 개헌을 통한 사회대개혁 추진의 정치적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신의 한 수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지금,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2025년의 응원봉 광장에 모인 우리는 2017년의 촛불 광장이 달성하지 못한 ‘양시앵 레짐’ 해체의 과업을 마침내 이뤄내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낼 수 있을까. 정말로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광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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