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멸종위기종? 그 뒤엔 생태계 붕괴 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2025. 3. 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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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캠페이너 연속 기고 ②]

[미디어오늘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지난해 8월 광주 북구 우치동물원에서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과일을 먹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지금,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속에 그린피스 캠페이너들의 고민과 해법을 지면에 소개합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 이슈가 언론계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서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연재는 총 7회에 걸쳐 진행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멸종위기종'을 검색하면 어떤 뉴스가 나올까? 지난 12일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오공이' 뉴스가 눈에 띄었다. 제주도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오공이가 왼팔의 뼈가 부러져,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골절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우치동물원은 세계 최초로 앵무새 인공 부리를 접합하고 뱀 턱관절 골절을 수술하는 등 진료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들의 치료를 지원하는 곳이다.

좋은 소식이다. 동물 복지를 위해 고난이도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수의사가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오공이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 다룬 멸종위기종 관련 뉴스 중 가장 널리 보도된 기사가 '원숭이의 골절 수술'이라는 사실은 깊은 고민을 남긴다.

지난 2월 말, 제16회 UN 생물다양성 협약 후속 회의가 로마에서 열렸다. 이 소식을 보도한 매체는 뉴스트리 등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며, 주요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전 세계 생물다양성 붕괴를 막기 위한 논의보다 원숭이의 골절 수술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 현실은, 언론 보도의 방향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야생생물의 개체 수는 약 73% 감소했다. 그 주된 원인은 서식지 파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 열린 UN 생물다양성 협약에서는 196개국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30x30' 목표를 포함한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를 채택했다. 우리나라 역시 국제사회와의 약속에 따라 30x30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UN 생물다양성 COP16을 앞두고 그린피스가 벌인 홀로그램 액션. 사람과 지구를 위해 생물다양성을 회복시키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그린피스

우리나라에는 산양, 삵 등 약 282종의 야생생물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국토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설악산과 지리산 같은 보호지역이나 생태등급 1등급 지역처럼 개발이 제한된 곳에서만 겨우 생존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보호지역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5일 중앙일보의 <[단독] 멸종위기 산양 277마리 떼죽음…지난 겨울 강원엔 무슨 일이> 기사다. 보도에 따르면, 보호지역을 둘러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울타리가 폭설 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산양들의 이동을 막았고, 결국 탈진한 산양들은 대거 폐사했다. 보호지역은 인근 생태계와의 연결성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생태통로 없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멸종위기종에게 죽음의 덫이 되고 있다.

'보호지역'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실태 지적 기사는 극히 일부다. 하지만 검색어를 '국립공원' 혹은 주요한 산 이름으로 바꾼다면, 보호지역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네이사의 삼림이 벌채되고 있는 장면. 국립공원 옆에 위치한 해당 농장은 오랑우탄, 프로보시스 원숭이 등 수많은 멸종 위기 종들의 서식지다. 사진=그린피스

우리나라 산양의 약 1/3이 서식하는 설악산에서는 지난해 케이블카 건설 논란이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산악 열차나 케이블카가 자연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주민 요구에 따라 추가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전국의 주요 산지에서 케이블카 사업이 우후죽순으로 추진되고 있다. 보호지역 내 야생동물들의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보호지역과 유사한 개념인 '그린벨트'의 경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개발제한구역 해제 가능 총량을 17년 만에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며, 환경평가 1~2등급 지역까지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2등급 지역은 원칙적으로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며,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공간 중 하나다. 이 규제 완화가 현실화된다면 보호지역과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들은 더욱 심각한 개발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이처럼 보호지역이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음에도, '멸종위기종'을 검색하면 여전히 가장 눈에 띄는 뉴스는 원숭이의 골절 수술 소식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사진=그린피스

미디어에는 Baby, Beauty, Beast를 총칭하는 '3B 법칙'이 있다.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종은 그중 Baby(귀여운 동물)와 Beast(위협적인 동물)의 요소로만 소모된다. 멸종위기종 관련 뉴스는 감성적인 이야기로 소비될 뿐, 정작 이들이 살아가는 서식지와 보호지역 문제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자. 보호지역은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보호지역이 무너지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며, 인간이 누리는 깨끗한 공기와 물을 비롯한 생태계 서비스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과학자들은 이번 세기말 인류를 포함한 생물종의 70%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멸종위기종은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자생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는 한 종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으며, 인류 역시 이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번 잃어버린 생태계는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보호지역의 확대와 체계적인 관리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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