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이란 무엇인가 [김영민의 연재할 결심]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대다수가 동의할 만한 이념이랄 게 있을까. 민주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그것은 현대의 이념이다. 현대 이전 한국에서 그런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화사상이나 충효? 그것은 지나간 이념이다. 현대에 이르러 그것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아니, 한국 역사 전체를 관통하여 두루 합의해온 이념 같은 것은 도대체 없단 말인가?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어떤가. 이른바 ‘홍익인간’은 〈삼국유사〉에 나올 만큼 오래된 말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하늘 신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에 뜻을 자주 두고 인간 세상을 욕망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위태백(三危太伯) 지역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국 최초의 국가, 고조선 관련 사료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홍익인간. 이 말은 현재 통용되는 ‘교육기본법’에도 당당하게 나와 있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총칙 제2조 교육이념).” 여기서 홍익인간은 지나가는 표현이 아니라 한국 교육을 총체적으로 정의하는 이념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한국의 각종 정부 문서를 살펴보면,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일 뿐 아니라 한국 전체를 아우르는 건국이념의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 정신, 유교의 인(仁),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문교부 〈문교 개관〉, 1958).”
슈퍼맨, 배트맨 같은 홍익맨?
건국이념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미국은 건국한 지 200년이 훌쩍 넘었건만, 공론장에서 건국이념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경로로 이민을 와서 성립한 나라가 바로 미국. 그 미국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단일민족? 아니,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서 만든 나라다. 오랜 뿌리? 아니,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든 비교적 젊은 나라다. 공통된 종교?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나라다. 이러한 나라에서 건국이념은 자신들이 누군지를, 혹은 누구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건국이념에 대해 해석을 거듭하고, 그 해석에 비추어 자신을 이해하고 정책을 정당화하고 미래를 설계하곤 한다.
‘홍익인간’도 그와 같은 건국이념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많은 사람들이 홍익인간을 일종의 인간 유형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시인 김지하는 “홍익인간은 주체이면서 타자이고 신이면서 자연이면서 또한 인간인 새로운 인간(neo human)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홍익인간을 뭔가 엄청난 파워를 가진 인간 유형으로 보는 것 같다. 홍익인간이 슈퍼맨, 배트맨, 아쿠아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같은 슈퍼히어로쯤 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러다 여름 더위를 싹 날려보낼 슈퍼히어로 영화 ‘홍익인간’ 혹은 ‘홍익맨’이 개봉하는 게 아닐까.
고전 한문에서 ‘인간(人間)’이란 표현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을 뜻한다. 그러면 고전 한문에서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뜻하려면 무슨 단어를 써야 하나? 여러 표현이 있지만 그냥 사람 ‘인(人)’자를 쓰면 된다. 예컨대 〈성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려 있다. “중국 조정으로 하여금 해외에 이런 사람(人)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오. 하늘 위에는 몰라도 이 세상(人間)에는 둘도 없는 사람입니다(使中朝知海外有此人也. 所不知者天上, 人間則無雙).” 보다시피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인(人)’자를 쓰고, ‘세상’을 나타낼 때는 ‘인간(人間)’이란 단어를 썼다.

그러니 홍익인간은 슈퍼히어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밋밋한 이야기가 아닌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니, 마치 “잘 지내게” “기운을 내게” “건강하게” “무탈하게”처럼 맥빠질 정도로 당연한 말이 아닌가. 한 나라의 건국신화 혹은 건국이념을 이야기하는 데 “인간을 널리 욕보이겠다” “인간을 널리 혼내주겠다” “인간을 널리 밟아버리겠다” “인간을 널리 골려주겠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다”는 말은 무슨 이념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밋밋하고 싱거운 말 같다.
무슨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싱거운 말이기에, 홍익인간이 한국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이념이었을 리 없다. 실제로 현대 이전에 이 ‘홍익인간’이란 표현에 관심을 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조선시대 내내 이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전혀 주목받지 않았다. 그것은 현대에 와서 새롭게 발명된 전통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말 자체에도 한국을 지칭하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을 넘어선 세상 전체다.
세상 전체를 이롭게 하겠다니, 혹시 과대망상이 아닌가. 민족주의는커녕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주의)적으로 들린다. 아니, 세계시민적인 것도 아니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는 것은 특정 국가나 민족을 넘어서 다채로운 세계의 일원으로 활동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세계 속의 시민이 되겠다는 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이다. 세계 전체를 뭉뚱그려 대상화하는 말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에는 이처럼 민족의 시선도 아니고 시민의 시선도 아닌, 영웅적인 외부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세상)’의 반대말은 ‘천상’이니까.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보면 ‘홍익인간’이라는 말의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하늘 신 환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홍익인간’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늘 신의 목소리다. 주어가 하늘 신임을 생각하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다”는 말은 더 이상 밋밋하게 들리지 않는다. 하늘 신이 하늘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하필 저 아래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관심을 둔다니, 이건 특이하지 않은가.
알다시피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실린 단군신화에 처음 나온다. 왜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굳이 이 같은 신의 목소리가 필요했을까. 왜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이 필요했을까. 왜 이 세상 전체를 대상화하는 신의 관점이 필요했을까. 왜 자신을 다스릴 대상으로 간주하는 외부자의 권위가 필요했을까. 미개한 대상을 다스려주겠다는 식민적 외부자의 존재가 필요했을까.
한국의 정체성에 일찍 자리 잡은 그것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편찬된 13세기 후반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약 30년 동안 지속된 고려-몽골 전쟁이 끝나고, 원나라와 사대 관계가 수립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한국의 정체성을 각별히 고민한 것은 자연스럽다. 주변에 존재하는 강력한 제국을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자존감을 확보하려 든 것은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중국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욕망은 단군신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위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고 이름 붙였다. 요임금과 같은 시대다’라고 하였다.” 고조선은 중국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어! 단군조선은 무려 요임금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우린 너희만큼 역사가 유구해! 이런 태도는 식민지가 되어본 적이 없는 나라, 타이(태국)의 경우와 대조된다. 타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 역사가 수코타이 왕국(1249-1438)이 성립되는 13세기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 대해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단군신화는 중국 황제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최상의 권위, 바로 하늘을 끌어들인다. “하늘 신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에 뜻을 자주 두고 인간 세상을 욕망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위태백 지역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였다.” 이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늘 신의 목소리다. 그리고 하늘 신 환인의 아들은 실제로 부하들을 데리고 세상에 내려와서 문명 세계를 건설한다. 마치 발리나 미국의 건국신화가 외부 문명인들이 이주해와서 정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듯이, 한국의 건국신화 역시 외부(하늘)의 존재가 이주해와서 정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곰은 어두운 곳에서 마늘을 먹고 견딘 끝에 마침내 웅녀가 되었고, 환웅과 짝을 지어 단군왕검을 낳는다. 이 단군왕검은 어떻게 되었나? 무려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는데, 중국으로부터 기자(箕子)라는 이가 조선 땅으로 건너오자, 자리를 피해 결국 산신(山神)이 된다.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에는 아주 일찍부터 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의 정체성은 바로 그런 시선들과 길항(拮抗)하며 전개되었다. 단군신화는 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ditor@is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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