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판 ‘분서갱유’…동예루살렘 책방지기의 고난과 저항 [.txt]

임인택 기자 2025. 3.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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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서 세번째로 매력적 책방 ‘교육서점’
“테러 선동 책 판매” 이유로 수색·구금·출금
인권단체 도움받아 영상대화로 현실 고발
지난 3월10일 새벽 0시30분부터 1시30분(한국시각)까지 진행된 줌 영상 대화 ‘아흐마드와의 대화’에 한겨레 기자가 참여했다. 동예루살렘 현지 시각으로 오후 6시30분부터 아흐마드 무나가 전달 경찰의 서점 압수수색 및 체포·구금 과정, 소회 등을 말했다. 웨비나 갈무리

20일 동안 ‘서점 출입 금지’ 명령을 받은 한 남자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의 서점이다. 지난달 일이다. 남자가 말한다.

“4주 전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사복 경찰이 서점 두 곳에 4명씩 들어와서는… 배지를 보여주고 전화기를 뺏더라고요. 가게에 손님도 있었습니다. (…) 문을 닫고는 무례하게 책을 뒤지더군요. 1~2시간 뒤 (두 서점에서) 250권 이상을 압수해갔습니다.”

동예루살렘으로부터 아흐마드 무나(33)가 전해온 말이다. 경찰 급습 한달 뒤인 지난 9일 저녁 전세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영상 대화’(온라인 화상 프로그램 줌)를 통해서다. 기자는 한국시각 10일 0시30분부터 1시45분까지 ‘아흐마드 무나와의 대화’에 참여했다.

“웃긴 건 경찰들이 책 내용은 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구글 번역기로 영어, 아랍어로 된 제목을 번역하고, 팔레스타인 국기가 있는지, 상징이 있는지, 체포되는 소년 사진이 있는지 보고서 빠르게 결정해 쓰레기 봉지에 담더라고요. 우리는 한번도 겉표지(커버)로 책을 판단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아흐마드 무나와 그의 삼촌 마흐무드(43)는 두 서점에서 각기 체포되어 서예루살렘에 위치한 ‘러시아 컴파운드’에 갇혔다. 이 곳은 19세기 러시아 순례자들을 위해 조성된 단지로서, 당시 호스텔이 이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도 가두는 악명 높은 모스코비아 구금 센터가 된다.

경찰이 밝힌 최초 혐의는 “테러리즘을 선동·지원하는 내용의 책 판매”였다. 아흐마드가 말한다.

“또 슬픈 게 뭔지 아세요? 아니 웃긴데 슬펐어요. 감옥이 정말 꽉 찼더란 겁니다. 많은 사람들로요. 상태도 너무너무 열악했습니다. 끔찍하고 불쾌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죠. 변기가 다 보이게 있고, 화장지, 비누는 없어요. 베개도 없고, 엄청 얇은 담요 한장뿐이라 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 하는데 시간을 또 알 수가 없어요. 창문도 없어요. 너무 굴욕적이었습니다. 갇히고 조사받고 지낸 전 과정이 충격적이었어요. 미안합니다. 말이 많네요….”

수갑 찬 채 바짝 얼어 경계하는 표정 그대로 지난달 10일(현지시각) 국외 타전되었던 아흐마드는, 이날 75분 영상 대화에서 조금 웃었으나 더 분개했고 더 씁쓸해했다. 이날 대화는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을 알리는 비영리단체 ‘익스텐드(Extend)’가 기획했다. 이 단체 공동창립자인 작가 샘 서스먼이 사회를 봤다.

동예루살렘 살라딘 거리의 명소인 ‘교육서점’을 운영하는 마흐무드 무나(왼쪽)와 아흐마드의 2020년 5월 모습. 교육서점 인스타그램 갈무리

2월9일로 가본다. 동예루살렘의 번화한 살라딘(살라훗딘) 거리가 이 도시 전통의 서점 자리인지는 오래다. 1984년 마흐무드의 부친이 처음 문을 연 서점은 이제 세 곳이 됐다. 서점은 문학, 역사, 정치, 요리, 교육 관련 책들과 그림책들이 꽂혀 있고, 2층엔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이 서점들에서 대화하고 차 마시고 책 읽고 소일하는 게 일상이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관심 있는 국외 언론인, 외교관, 활동가, 학생들로 붐빈다. 론리 플래닛이 중동에서 세번째로 매력적인 책방으로 호명한 그 이름은 ‘교육서점(Educational Bookshop)’. 세계적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가족이 같은 거리에서 운영했던 문구·서점에서 상호를 땄다. 다만 ‘팔레스타인’은 떼야 했다. 법상 상표에 사용 금지된 단어였기 때문이다. 교육서점에 일대 전기가 찾아온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아랍권 내 최초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평화와 그 불만(Peace and its Discontents)’을 영어·아랍어본으로 판매한 1996년이다. 폭발적이었고 논쟁적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선 판금된 책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2월10일 ‘교육서점’을 운영하는 마흐무드 무나(왼쪽)와 아흐마드가 이스라엘 법정에서 수갑을 찬 채 대기 중이다. 검찰이 구금연장을 요청하며 심리가 진행됐다. 이 모습으로 둘은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AP 연합뉴스

그로부터 30년 뒤의 전기, 아니 위기는 이스라엘로부터 비롯한다. “서점은 변한 적이 없”(아흐마드)다. 사복 차림으로 서점을 급습한 이스라엘 경찰이 검은 비닐봉지에 책을 ‘수거’하고, 서점 바닥이 팽개쳐진 책들로 낭자하기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뱅크시, 노엄 촘스키, 조 사코 등의 책이 포함됐다. 경찰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주제의 선동이 담긴 책을 수없이 확인했는데, 그중에는 ‘강에서 바다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 제목의 어린이 색칠공부책도 있었다”고 밝혔다. (남아공 작가의 작품으로, 외신 기사엔 책이 “유대 국가를 거부하고 그 믿음을 아이들에게 선전한다”는 비판 댓글도 있다.) 혐의는 ‘공공질서 위반’으로 바뀌어 둘은 이틀간 구금됐다. 검찰의 구금연장 요청에 따른 심리차 둘은 묶인 채 법정으로 호송됐다. 이후 석방되나 조건이 벌금 외 닷새간 가택연금, 그리고 3주간 서점 출입 금지였다. 경찰은 여드레 구금을 요청했고 서점도 폐쇄하려 했다.

압수수색 1주 전, 마흐무드는 청중 22명 앞에서 출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가자 주민과의 인터뷰 및 수기를 담은 ‘가자의 새벽: 팔레스타인 삶과 문화 이야기(Daybreak in Gaza)’를 지난해 10월 영국서 공동 출간한 뒤 기획한 행사였다. 책에선 이스라엘이 가자를 침공한 2023년 10월 이후 상인, 작가, 예술가, 의료진, 활동가 등의 일상 생존기가 옛 역사와 서정적으로 얽힌다. 파괴됨과 동시에 지켜내고 회복하고 축성하는 가자인들의 삶과 문화, 유산을 생중계하는 격이다. 작중 유세프 알쿠리는 말한다.

“우리는 피에 굶주린 문맹 테러리스트로 표현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생명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을 맞이하고 먹이고 보호할 겁니다. 세계는 가자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절망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이길 방법을 찾아낼 사람들이죠. 가자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가자 지구를 점령하고 파괴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 가자를 실제로 재건할 때까지, 기억 속에서, 상상 속에서, 마음 속에서 우리는 늘 가자를 재건할 것입니다.”

이날, 망혼이라도 가자를 재건하겠다는 이들의 말을 듣는 청중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거개 가자 침공 이후 팔레스타인인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행사의 유일한 팔레스타인인, 마흐무드는 말한다.

“저는 문화적 정체성으로는 팔레스타인인이고, 지역 정체성은 예루살렘인, 종교적으로는 무슬림, 언어적으로는 아랍인입니다. 그럼 저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저는 인간입니다.”

이 간담회를 자신의 집에서 주재한 이스라엘 언론인 에타 프린스깁슨은 “우리 스스로를 ‘책의 민족(The People of the Book)이’라고 부르는 유대인으로서, 서점 급습이나 책 압수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그게 무엇을 초래할지 우리 역사가 말해준다”며 “이스라엘인들은 기계적으로 저쪽엔 평화를 위한 파트너가 없다곤 한다. (…) 정작 마흐무드와 같은 잠재적 파트너는 왜 체포할까?”라고 물었다. 출간 간담회로부터 딱 1주일 뒤, 행사 장소로부터 딱 1마일(1.6㎞) 떨어진 러시아 컴파운드에 마흐무드가 갇히고 쓴 글이었다.

마흐무드와 아흐마드가 법원 심리를 받던 지난달 10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브라질 등 대략 9개국 외교관들이 참관했고 전세계 시민, 작가와 단체가 항의·연대 발언을 내놓고 있다. 주이스라엘 독일 대사는 엑스(옛 트위터)에 썼다. “많은 외교관들처럼 교육서점을 즐긴다. 무나 가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주민이며, 토론과 지적 교류에 열려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교육서점에 대한 이스라엘 경찰의 압수수색과 서적 압수, 서점 주인에 대한 체포 소식이 알려진 뒤인 2월10일(현지시간) 서점이 지지자들로 가득 차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작가·출판인으로 명성을 얻고, 서점을 명소로 만든 덴 마흐무드의 팔레스타인 관점과 논리, 개방성, 영국 대학을 마친 영어 실력이 큰 몫을 한다. 그러나 맨 앞엔 책에 대한 애정이 꼽혀야 하겠다.

“(경찰 압수수색 때) 정말 마음 아픈 건 책에 대한 존중입니다. 책을 다루고 가져갈 적절한 방법이 있지만 헌 옷이나 신발처럼 쓰레기 봉지에 버렸어요. 전문적이지 않고 존중도 없는 거죠.” 마흐무드는 당시 상자를 경찰에 건넸지만 무시당했다고 한다.

마흐무드는 서점 행사나 에스앤에스(SNS)에서는 물론, 서구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할 때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책들을 추천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드, 소설 ‘사소한 일’의 아다니아 쉬블리,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202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받은 미국 작가 네이선 스롤, ‘내 이름은 아담’을 쓴 레바논 소설가 일라이어스 코리, 영국 언론인 이언 블랙, ‘아랍 부커상’을 받은 팔레스타인 시인·소설가 이브라힘 나스랄라 등이 호명된다.

‘말한다, 말한다, 또 말한다, 그러나 듣지 않는다’의 견고한 구조에서 그가 출판인으로 진력하는 ‘말하기’ 방식이다. 팔레스타인인의 영어 저작을 취급하는 팔레스타인 최초의 서점이란 점도 같은 맥락이다. 2016년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마흐무드는 “하마스 관련 책, 도발적 표지의 책은 이스라엘 당국이 꺼리고 (수입) 배송도 2~3주가 걸린다. 그러나 영어책에 대한 검열법이 없어 어떤 책도 압수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젠 이는 옛일이 되어버렸다. 이스라엘의 침공 다음달인 2023년 11월 ‘런던 리뷰 오브 북스’를 통해 마흐무드는 말한다. “딸들과 수다를 떨고 잠자리에 들게 하고 굿나잇 키스를 했다. 평범한 밤 아빠라면 누구나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특권인가 생각한다.”

이 또한 옛일이다. 그는 11살 딸 라일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서점에서 체포됐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기고 끝 단락에서 “사랑, 상실, 변화, 정체성에 대한 시의적절한 책”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서점에서 강력히 추천한다”라며 꼽은 단 한권이 파키스탄계 영국 작가 모신 하미드(54)의 ‘마지막 백인’(2022)이다. 피부색이 갈색으로 변한 채 깨어나는 백인 남성을 그린 소설로, 국내 번역본이 없다.

대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2007, 국내 2012, 왕은철 옮김, 민음사)를 볼 만하다. 작가의 이력이 진하게 배어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교육받고 미국 여성을 사랑하고, 금융자본 산업의 엘리트 전사로 일하던 파키스탄 출신 찬게즈가 ‘미국’과 ‘출신’을 새로 ‘발견’하는 여정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9·11 테러와 미국의 대응이 결정적 계기다. 주인공의 부유하는 의식과 감정선만큼이나 이 소설을 돋을새김하는 건 서사의 형식이다. 찬게즈는 일방으로 누군가에게 말한다. 자신의 제자가 미 정부요인 암살 모의에 연루된바, 작중 듣는 자는 찬게즈를 응징하려는 ‘미국’이다. 이러한 전복 불가의 위계 구조에서도, 찬게즈는 시종 상대, 즉 ‘절대자’ 미국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바야흐로 자신이 말할 차례라는 듯 말이다.

마흐무드의 ‘가자의 새벽’ 또한 살상 통계 수치에 가려진 ‘개별적 인간’의 발화를 통한 저항에 가깝다.

“2024년 4월8일. 5살 조카 오마르가 오늘 우리를 웃게 했다. 오마르는 지금 상황을 아이들에 대한 전쟁으로 여긴다. 자기 엄마한테 하는 말을 들었다. ‘적어도 어른들은 커피를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애들은 사탕 하나도 구할 수가 없잖아요. 이 전쟁은 어른들 상대가 아닌 거예요.’”

유대인으로 가득한 출간 간담회에서 마흐무드는 또 말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때 함께 훌륭한 대화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많이 하지 않지요.”

이달 10일 예루살렘에 사는 12살 팔레스타인 소녀 투카 가자위는 한달의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공책에 “선동적 진술”을 적고, 경찰차에 “우리는 이기거나 죽을 것이다”고 적힌 종이를 두었다는 이유로 경찰 체포돼 4일 구금당한 뒤다. 11일 오전 무나 가문의 교육서점은 한 차례 더 압수수색을 당한다. ‘선동적 책’이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번엔 사복 경찰 여섯, 제복 경찰 넷이었다.

지난 한달 비등했던 전세계 비판 여론조차 무력하므로, 어린이도,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도 무력하여 ‘확신하는 근본주의자’로 떠밀리는 것은 아닌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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