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권력이 엎어지자 책도 덮였다… 도서관 흥망성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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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더럽힘 없이 유지하는 것은 누구의 접근도 막을 때만 가능하다. 책이 그렇지 않은가? 너무 많은 사람이 만지면 페이지는 부스러지고 잉크와 금박은 퇴색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다름슈타트 도서관에서는 헨델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육필 악보를 포함한 책 40만 권이 공습으로 사라졌다.
책 뒷부분에 저자들은 도서관이 디지털 혁명을 쫓아가는 데만 힘쓸 것이 아니라 도서관의 고유한 강점을 살리는 데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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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지식 저장고인 도서관
권력 교체 땐 역사 뒤안길로 소멸
◇도서관의 역사/앤드루 페테그리,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 지음·배동근 장은수 옮김/800쪽·4만8000원·아르테
오스트리아 멜크에 있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아드소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부제는 ‘도서관: 파손되기 쉬운 역사(The Library: A Fragile History)’다. 고대 아시리아의 점토판 도서관부터 오늘날의 디지털 도서관까지 도서관의 역사를 정리했다. 두 저자는 각 시대 도서관의 성쇠, 특히 쇠(衰)에 주목한다. 보존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 도서관이었지만 쇠락 또한 그 운명이었다.
첫 페이지부터 독자는 1575년 신성로마제국 황실 도서관장으로 임명된 블로티우스의 탄식과 마주하게 된다. “사방에 곰팡이가 슬고, 두루두루 썩어 있었다. 죽은 나방과 좀 천지에다 거미줄은 빽빽했다.”
많은 도서관이 파괴로 그 명을 다했다. 1524년 독일농민전쟁 때 농민군은 수도원 도서관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현대에도 이런 일은 반복돼 1992년 보스니아 국립도서관이 세르비아 민병대의 목표물이 됐다. 그러나 도서관이 죽어 갈 때는 피살보다 자연사가 많았다. 도서관을 세우고 관심을 쏟은 권력자가 떠난 뒤 도서관들은 서서히 먼지 속에 묻혔다. 어떤 시대의 지배자든 전 시대가 물려준 지식의 유산과 그 기념물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도서관의 전설이 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불타서 사라졌다는 전설을 남겼지만, 저자는 고대 도서관들을 사라지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유지의 어려움이었다고 설명한다. 고대의 파피루스는 습기에 약했고 주기적으로 다시 베껴 써야 했다. 이후 동물 가죽을 가공한 튼튼한 양피지가 등장했지만 이번엔 너무 튼튼한 게 문제였다. 사람들은 이전 책의 페이지를 긁어낸 뒤 새 책으로 만들었다.
종교개혁 기간에 신구교 양쪽은 상대방의 책을 파괴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6세의 통치 기간에 가톨릭 서적이 파괴됐고, 가톨릭 군주인 메리 여왕 시절에는 개신교 책이 사라졌다.
전쟁도 인명만큼 많은 책을 희생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다름슈타트 도서관에서는 헨델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육필 악보를 포함한 책 40만 권이 공습으로 사라졌다. 뮌헨 도서관도 책 80만 권을 잃었다. 1980년대 소련의 한 교회에선 독일 책 250만 권이 발견됐고, 대부분은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독일도 가해자였다. 러시아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1억 권의 책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책 뒷부분에 저자들은 도서관이 디지털 혁명을 쫓아가는 데만 힘쓸 것이 아니라 도서관의 고유한 강점을 살리는 데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책이 넘쳐 나는 시대일수록 독자가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는 더욱 중요하다.”
역사학자인 두 저자는 인쇄술 초기 이전에 나온 유럽 출판물을 조사하는 국제약식서명목록(USTC)의 창립위원과 부소장으로 활동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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