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끝났다…일본 엔화 상승 조짐에 커지는 엔 캐리 청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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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엔저시대
‘엔저(低)시대’가 저물고 있다. 일본 경제가 30년 넘게 이어진 장기 불황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엔화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 신호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저리의 엔화를 빌려 고가치 자산에 투자) 청산 우려도 고개를 든다.
19일 일본은행(BOJ)은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했다. 미국 관세 등 불확실한 대외 리스크를 고려한 정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결정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정책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며 꺾이지 않은 금리인상 기조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일본 채권시장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은행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기존 연 0.25%에서 0.5%로 인상했다. 예상보다 높은 경제 성장률과 꾸준한 물가 상승이 주요 배경이다. 일본의 지난 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기대비 3.2% 상승해 34개월 연속 2%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우에다 총재는 “현재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상태”라고 언급했다. 트럼프발 미국 경기 침체 우려에 안전자산인 엔화 수요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엔 캐리 트레이드 축소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은, 엔 캐리 자금 3조3771억 달러 추정
그러나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일시적으로 멈추면서, 금융시장의 급격한 충격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지난해 8월 5일 주가가 급락한 ‘블랙먼데이’ 때는 엔화 강세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미국과 아시아 주요 증시에서 일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며 주가가 하루에 많게는 10% 폭락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상업용 엔화 선물환 순매수 규모는 18일 기준 약 1조7000억 엔에 달한다. 시장이 엔화 강세를 예상하고 미리 대비한 것으로 진단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 흐름은 이미 시장의 예측 범위 내에 있어,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일본이 ‘아시아 최저 금리’ 지위를 벗어나면서 한·중·일 채권 시장의 자금 흐름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30년물 국채 금리가 지난 10일 처음으로 역전됐다. 한국 초장기 국채 금리가 일본에 역전당한 것은 2016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의 회복 신호이자 한국 경제의 저성장 진입 징후로 해석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간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해 11월 처음 역전됐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지만, 한국과 중국은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이었던 일본 보험회사가 앞으로 한국 국채도 덜 사고, 중국 국채도 줄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강세는 한국 경제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글로벌 유동성 축소로 인해 대외 수요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도리어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일본산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국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 이를 완화하는 원화 가치 상승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엔테크 투자자들은 차익 시현 나서
최근 엔화 강세로 인해 국내 ‘엔테크(엔화 투자)’ 투자자는 차익 시현에 나서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엔화 예금 잔액은 11일 기준 8884억 엔으로, 2023년 5월(7259억 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일본 금리 인상 기조가 살아있는 만큼, 엔화 자산을 모아가야 할 때라는 조언도 나온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단기 차익 시현보다는 포트폴리오의 일부(10% 수준)를 엔화로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엔화 가치는 상승할 가능성이 크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 급격한 시장 변동에도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자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엔화 가치는 기관이나 전문가에 따라 전망이 엇갈리지만, 강세 예측이 우세하다. 오는 12월 말 예상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노무라증권은 140엔, 모건스탠리는 141엔이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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